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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utnews 2005-10-19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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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마포FM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엘 양장점’에서 만나는 8명의 언니들
첫사랑의 추억과 이별의 아픔, 백수의 넋두리를 넘어 역사이야기까지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대중매체에서 이반은 일반의 시선으로 ‘보여진다’. 이반은 그렇게 타자화된 존재다. 주류 미디어에서 홍석천이 누더기 같은 상처를 입으며 동성애자 최초로 ‘방송 시민권’을 획득했지만, 이반은 아직 일반화되지 못한 존재다. 신문, 방송… 주류매체라면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보여지기만’ 했던 레즈비언들이 스스로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레즈비언들이 만든 라디오 방송이다. 게다가 인터넷도 아닌 공중파다. 서울 하늘에 ‘레주파’가 쏘아올려진 것이다.


왜곡된 언론 보도, 대응도 지겨워라~


레주파는 ‘레즈비언 주파수’라는 뜻. 한국 최초로 레즈비언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8명의 ‘언니’들이 모인 제작팀이다. 이들은 ‘언니들의 맞춤방송’을 모토로 <엘(L·레즈비언) 양장점>이라는 1시간짜리 음악 프로그램을 만든다. 수요일 밤 12시, 마포구 일원에서 FM 주파수 100.7MHz를 맞추면, <엘 양장점>의 ‘디자이너’(DJ) 청명(27)씨의 목소리가 귀에 감긴다. <엘 양장점>은 금세 레즈비언 사회에 입소문이 퍼졌다. 수요일이면 레즈비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엘 양장점>을 놓치지 말라는 글이 올라온다.

지난 9월20일 서울 마포구의 소출력 공동체 라디오 ‘마포FM’ 녹음실. 프로듀서 치키스(29)씨가 음악을 흘리자, 청명씨가 대본 읽기를 멈추고 한마디 한다. “어쩌면 기존의 운동 방식과 다르다고 할 수 있죠. 왜곡된 언론 보도에 대해 하나하나 대응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요. 이젠 당신들은 당신들 맘대로 떠들라는 거예요.”



그동안 동성애자들은 성적 소수자를 ‘몰이해’하는 언론에 쉬이 상처받았다. 불과 두달 전에도 문화방송 뉴스가 청소년 동성애자를 탈선한 양 묘사했다며 10여개 단체가 항의성명을 낸 터였다. 동성애자들은 알맹이 없이 선정적인 신문과 방송을 강력히 비판했지만, 미디어는 관음증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시시포스의 노동 같은 ‘공격’과 ‘방어’가 이어지고 있다.

레주파는 지난 4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과 RTV, 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 여성영상집단 움이 기획안 ‘주파수 엘을 잡아라’는 미디어 교육에서 결성됐다.

“라디오에 대한 매력이 있었어요. 라디오는 끼리끼리 모이는 커뮤니티성이 강한 매체이고, 무엇보다 아우팅의 위험이 없잖아요. 원래 영상 작업을 좀 했었는데, 라디오도 한번 해보자고 해서 시작했죠.”

청명씨에게 14주 동안의 교육은 레즈비언의 눈으로 보고 레즈비언의 입으로 말하는 연습 기간이었다. 텔레비전 드라마 <대장금>을 동성애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만든 실습 작품 ‘대승미’를 떠올리며 스태프들은 까르르 웃었다.

“우리가 보기엔 장금(이영애)이와 한 상궁(양미경)에서 레즈비언의 관계를 느낄 수 있었거든요. 우리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거라고 할까. 그래서 장금이 대신 레즈비언 주인공인 승미를 내세웠죠. 하하.”

이들에게 황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마포FM에서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배정받은 것이다. 8명이 스태프로 들어갔다. 이소라 못지않은 목소리를 가진 청명씨가 DJ를 맡고, 나머지 7명은 작가와 엔지니어, 프로듀서를 돌아가면서 맡기로 했다.

“<엘 양장점>은 레즈비언의 목소리를 전해드리는 방송입니다. 자, 그럼 우리 역사를 만들어볼까요?”

8월10일 청명씨의 청명한 목소리로 첫 전파를 띄웠다. 첫 곡은 게리 할리웰의 와뚜와리송 <라이드 잇>(ride it)이었다. 첫 방송은 무사 통과. 그러나 2주째 녹음에서 초유의 방송사고가 났다. 방송 시작 2~3시간을 앞두고 녹음을 끝냈는데, 그만 파일이 사라져버린 것. 밤 12시부터 약 10분 동안 ‘공백’이 흘렀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청명씨는 애드리브만으로 예정에 없던 생방송을 했다. 1시가 돼서야 제대로 된 방송을 내보냈다.


숨은 그녀 찾기, 세종실록을 읽어주다


사고는 쳤지만, <엘 양장점>은 ‘평범한’ 음악 프로그램이다. 애청자들은 인터넷 카페에 ‘900일을 축하해달라’며 신청곡을 올리고, DJ는 첫사랑의 추억과 이별의 아픔, 백수의 넋두리를 전한다. 중고생들이 일반 FM 라디오에 사랑 고백 같은 편지를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른 것은 이들이 레즈비언이라는 것, 성 정체성뿐이다.

물론 <엘 양장점>에는 레즈비언의 시선이 담겨 있다. 레즈비언에게 ‘유익한’ 정보도 가득 차 있다. <엘 양장점>이 첫 회 ‘숨은 그녀 찾기’ 코너에서 소개한 봉씨 부인은 조선시대 왕궁에서 암약하던 레즈비언이다. 청명씨가 목소리를 가라앉혀 세종실록을 읽어줬다.

“요사이 듣건대 봉씨와 궁궐의 소쌍이라는 사람을 사랑하여 항상 그 옆을 떠나지 못하게 하니, 궁인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빈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를 같이 한다고 하였다. …그 보수적인 조선시대, 언니의 행각이 자자하여 역사에까지 기록되고 있는 봉씨 부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종의 둘째 며느리죠.”

동성애 커뮤니티 사이트인 ‘이반시티’에서 정기적으로 퀴어뉴스를 만드는 등 인터넷 미디어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레즈비언 방송이 공중파를 타는 것은 <엘 양장점>이 처음이다. 공중파는 다르다. 인터넷은 듣고 싶은 사람이 일부러 찾아가야 들을 수 있는 미디어지만, 공중파는 무작위로 대중들에게 뿌리는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캐나다·이탈리아에 이어 지난해 프랑스에서 <핑크TV>라는 유료 채널이 개국했다. 개국 첫 방송으로 동성애자들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는 45분짜리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낸 데 이어 토크쇼,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편성하고 있다. 위성과 케이블로 볼 수 있지만, 이 역시 따로 신청한 사람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서울 마포에서 라디오만 켜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엘 양장점>은 더욱 의미가 깊다. 레즈비언에게 공공적 전파송출권이 허용된 역사적 사례라고나 할까.

“공중파는 비 성적 소수자들도 들을 수 있잖아요. 우리 방송을 들으면서 ‘레즈비언이 이렇게 사는구나, ‘일반’과 다름이 없구나’ 하고 느끼겠죠. 그래서 우리가 더 공중파에 들어오려고 한 거예요.”

청명씨는 지난 8월10일 첫 전파를 쏘아올린 이래 10월5일 9번째 방송을 마쳤다. 레주파는 곧 2기 후배들을 받아 자신들이 받았던 라디오 제작 교육을 돌려줄 셈이다.





‘해적방송’에서 ‘소수자 라디오’로

공동체 라디오의 세계적 흐름에 한국도 동참

공동체 라디오는 민중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자주관리 미디어’다. 최초의 공동체 라디오는 1940년대 남미 볼리비아 광산 지역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영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타이,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활성화돼 있다. 간단한 소출력 장비로 전파를 쉽게 쏘아올릴 수 있어, 처음에는 사회적 반항아들의 ‘해적방송’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해적방송의 ‘투쟁’으로 합법화된 미디어인지라, 공동체 라디오는 소수자적 정체성을 강조한다. 영국을 보면, 그 다양성을 실감할 수 있다. 레체스터 지방의 ‘테이크오버 라디오’는 어른들은 최소한의 지도만 하고 8~14살의 어린이들이 직접 제작하는 방송이다. 하번트의 노인들을 위한 ‘에인절 라디오’, 글래스고의 아시아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라디오 아와즈’도 있다. 노팅엄의 ‘라디오파자’는 민간기관인 아시아여성프로젝트와 함께 소수민족의 사회·문화적 장벽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는 문화 프로그램을 편성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출력 라디오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8개 사업자가 올해 상반기부터 시범방송을 시작했다. 가청취권이 반경 1~2㎞로 소규모 지역 중심의 커뮤니티 라디오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대구의 ‘성서FM’처럼 이주노동자 콘텐츠를 대거 편성하는 경우도 있다. ‘마포FM’은 커뮤니티 콘텐츠를 기본으로 홍익대 앞 예술인들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많이 편성했다. 여기에 성소수자 프로그램인 <엘 양장점>을 주 3회 곁들였다. <엘 양장점>은 수요일 밤 12시에 방송되고, 금요일 밤 12시와 토요일 밤 9시에 재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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