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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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즈베 2005-11-03 09:50:42
+5 1457
  며칠만에 먹는 생김치다. 지퍼락에 갓 담근 포기 김치 하나를 꺼내 도마 위에 올려놓고,
먹기 좋게 듬성 듬성 썰었다. 그리고 큰 줄기 하나를 입안에 가득 넣었다.
소금에 저린지 얼마 안돼 풀이 덜 죽은 배추의 아삭 아삭함과 진한 멸치 젓에서
나오는 양념의 깊은 맛.
내가 생김치를 사랑하는 이유다.
두달 만에 어머니가 택배로 부쳐주신 김치를 먹는 중이다.

나이 스물이 넘도록 김치는 집에서 담가 먹는 음식으로 알았다.
가끔 동네 김장철에 한 포기씩 맛 보는 이웃 아줌마들의 김장 김치 빼곤
사먹는 김치는 먹어본 적이 없다. 재래시장에서 반찬 가게에서 보이는 김치를
호기심내 먹어 보곤 했다. 김치치고는 꽤나 달디 달았다.
달디단 김치는 제맛이 아니라는 우리 엄마의 지론 때문에 내 간사함 입은
시장 김치와의 인연을 끊어야 했다.

스물이 지나 집을 떠나 학교 기숙사에서 살면서 서울 김치를 맛봤다.
그전부터 나는 서울 사람들은 상당히 게으르고, 음식도 못하고, 그래서 아침을 많이
걸른다고 생각했다. 다 우리 작은 집 식구들 때문이다.
물론 우리 작은 어머니 흉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기숙사의 김치 맛은 더 정이 안갔다.
그래도 적응력 빠른 나 하이에나는 먹어야 산다는 생각으로 잘도 먹었다.

그래서 서울 생활 8년째. 내가 서울 김치에 어느 정도 무감각 해질 만큼
엄마의 김치 맛에 나도 점점 무뎌져 갔다. 몇 달 만에 집에 내려갈 때 마다
달라지는 김치 맛에 나는 엄마의 미각이 둔해진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 입맛이 집안 식구들 중에서 까다롭다고 생각하기에 - 사실 내가 입맛이 까다롭긴 하지만, 말없이 잘 먹는 편이다. 말을 한 경우는 정말 맛이 없다는 증거다.
집안에서야 먹기 싫은거 편하게 말하지 않은가? -  내가 김치 맛을 볼 때 눈치를 보는
편이다.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기에 무엇인가 부족했던 부분을 미리 말씀하신다.
뭐 배추가 별로 안좋았다거나 고추가 안좋다거나 그런 등등.
아마도 그 김치는 별 이상이 없었을 것이다.
순간 순간 달라지는 내 방정맞은 입맛이 문제다.

  그래 사람이 원하는 맛이 항상 똑 같은 것이 아니다. 자기 입맛에 항상 맞은
식당을 찾아 가지만 처음에는 좋았는데 갈 수록 그 맛이 안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그 집 맛에도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그 사이 사이 먹어왔던 다른 맛들 때문에
입맛이 변하거나 바뀌거나 순간 순간 감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우리 이반들의 고귀한 식성하나는 변하는 법이 없다마는.

오늘 나는 생김치와 함께 우리 형 몫으로 온 신김치 한 포기를 모두 돼지김치찌개에
넣었다. 신김치는 우리 냉장고에서 그리 반기는 품목이 아니다.
빨리 해치우는게 속 편한다. 게다가시큼한 냄새가 찌개용으로 제격이었다.
참기름으로 돼지 고기와 김치를 볶았다.
볶으면서 한 5년 뒤에 엄마에게 김치 만드는 법을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뭐 대충은 그 과정을 보아 온 터라 알고는 있지만.
맛을 내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 때도 변한 내 입맛이 엄마를 다그칠줄 모른다.
그래도 엄마가 담그는 김치가 좋다.

중국 김치 때문에 말들이 많은 데, 김치를 사서 먹든 직접 담가 먹든 상관할 바는 아니다.
그것보다 김치 좀 먹자.
라면 시키면 달디 단 단무지 나오는 것 보다 김치가 더 좋지 않은가.
왜간장이나 달디 단 단무지의 달콤한 맛은 우리 입맛은 아니다.
입맛이 근대화,다국적화 되어도 내 입맛을 놓치지는 말자.


쫄깃한맛 2005-11-04 오전 01:23

우리도 근대화 다국적화 되어도 남자 맛은 제대로 알고 먹자...

가람 2005-11-04 오전 02:56

우리 어머니 김치는 내가 거의 동을 내지만, 바깥 김치는 영 손이 별로 안 가더라고요.
나도 김치 만드는 법을 배워야겠어.
음.. 근데 우리 어머니 김치하는 걸 보면 아주 중노동이던데.
흠. 우리 없을 때 어떻게 혼자 다 담그시는지.

우쭐하지마 2005-11-04 오전 05:10

어머니는 다른이름을 가지고 있지.... 이름하여 아줌마 아줌마는 뭐든할 수 있지...
김치담그는 것 쯤이야...내아들 내딸 내자식 입에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천하장사가 된단다..

주딩이만 고급 2005-11-04 오전 08:46

언제한번 친구사이 김치 담그기 벙개 함 때려볼까?
워낙 손맛 걸출한 인물들이 한두명이 아니잖겠어?
음...근데 나두 김치는 담가본 적이 없구나.
집에는 김치냉장고가 있어서 항상 맛있지만 내집에만 오면 쉬어빠져버리는 김치...
워나기 집김치 아니면 친척집 김치도 못먹는 나로서는 음식점 김치야 물론 사절...
참...돈두 못버는 것이 혼자 살려면 입이라도 싸구려야 할터인데...흑...

김치가마시써 2005-11-04 오후 22:31

김치가 맛있는집...뭐 물론 배추포기로 담근 김치는 아니더라도.. 겉절이가 맛있는 집...
그런집이 몇군데 있지요... 인사동에 밀밭집도 맛있구... 사동면옥도 맛있구...
반찬이 김치한가지 나오는집은 대부분 겉절이 김치를 많이 하더라구요...짱깨집만빼구요.. 전라도식 젖갈듬뿍 들어간 그런 김치 싫어하는 분들도 많이 있던데... 난 전라도식 김치가 조터라... 먹고나면 김치먹고 난 것 같아서 조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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