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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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2004-03-11 10:19:05
+3 781
봄이 온 지 몰랐었다.


겨우내 소화 불량 걸린 것처럼 내리지 않다가 미친듯이 내려 버린 눈

허리 다독이시는 농민들의 깊은 한숨이

때 늦은 삼 월의 심통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좀 더 수월하게 넘겨보자며 머리 쥐어짜며 수강신청을 할 때에도

미처 봄이 온 지 몰랐었다.


다 늦어 어둑해진 교정에서 책을 바리바리 가슴에 안고

선배들을 좇아 졸졸거리는 걸음을 띠는 앳된 신입생 무리를 보았을 때도

책더미를 한아름 안고 새로 잡은 도서관 사물함의 열쇠를 다부진 표정으로 잠그는

복학생의 결연한 모습을 보았을 때에도

신입생들을 유혹하는 동아리들의 현란한 신입 회원 모집 대자보를 보았을 때도

몰랐었다.


수업을 마치고 쫓기듯 학교 문을 나설 때 문득 불어오는,

낯설은  따뜻한 바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피부에 오소소 돋았을  때

비로소 봄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꺼운 외투를 벗어야 된다는 것도,

새로운 어수선함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도

교정 곳곳에서 발견되는 낯설음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꽃은 언제나 피려는지 모르겠다.

그런 핑계라도 생긴다면 봄이 왔노라고, 향기라도 맡아보라고

봄을 싫어한다는 친구놈의 옷자락이라도 끌고 창문이라도 열어볼 일이다.  


여기저기 소란스러운 꼼지락들,

동중정.

내일은 일어나서 환기라도 시켜야겠다.






천박여왕 2004-03-11 오후 21:56

봄이 오면...우리 회장님 가슴에도 꽃이 펴야 할텐데...
그리고 지지리도 안팔리는 것들의 가슴에도 아름다운 장미는 못 되더라도,
수수한 들꽃이라도 피웠으면 좋겠건만....

황무지 2004-03-12 오전 06:09

ㅠㅠ..... 지지리도 않팔리는 것들.. 에 비수 꽂혔수다~~~ 커이~커이~~

사하라 2004-03-13 오전 03:06

행여나 봄날이 시큰둥하게 느껴진다면
입맛으로 깨우쳐봐.
텁텁한 입속을 상큼하게 각성 시키는 쌉싸름한 봄나물 맛을 한번 보라고...

반갑잖은 황사가 지분덕 거리걸랑 어디 풀장에라도 가서 혼자 헤엄을 쳐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물속에서
잠깐동안 벌거벗은채 우주에 잠겨있는 자신을 느껴보라고...

물을 가르고 나가는 속도감과 등을 타고 흐르는 땀이 느껴지도록
여유있게도 부지런히... 팔과 다리를 동작시켜봐.
그 짜릿할것도 따분할것도 없는 운동감이, 일상의 사소함을 싫지않게 만들어 줄꺼야.

다행스럽게도 그런 옛기억이 하나라도 있다면
정말 바보같을만큼 순수하게 누군가를 좋아라..했던때를 가만히 들쳐보라고..
시시하게 느껴지는 시작이었지만
뜻밖에 조그만 사람의 마음하나를 건네받았을때 얼마나 큰 기쁨이 되었던가를 생각해봐.

늘 똑같아 뵈는 봄날의 개강도, 아무런 관심이 안가던 사람도,
보여지고 만져지는 존재가 될때
예기치 않은 새로운것 기쁨이되어 다가올꺼야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봄에는 풋내나는 돌나물 생무침이 제격이더라.
입맛으로 봄을 느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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