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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영화가 동성애를 이야기하는 3가지 방식

[헤럴드 생생뉴스 2006-02-08 08:26]  


동성애는 오랫동안 조롱과 멸시,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동서를 막론하고 공식적 언어에서는 삭제됐으며 율법의 체계에서는 격리됐고 때로는 강력한 처벌을 받던 사회적 타자(他者)였다.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났던 타자는 대개 ‘괴물’로 귀환했다가 다양한 형상과 양상으로 탈바꿈하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재의 권리를 점진적으로 취득하게 된다.
아카데미 시상식(3월 5일)을 앞둔 미국 영화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3월 1일 국내 개봉)과 일본 영화 ‘메종 드 히미코’, 1000만명 돌파를 앞둔 한국 영화 ‘왕의 남자’ 등 3편의 작품은 각 사회의 대중예술이 동성애를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흥미로운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 낯설거나 혐오스럽고 무서웠던 것을 비로소 납득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제 나름대로의 ‘번역’과정이 필요한 법. 익숙한 장르에 기대 이야기하거나(브로크백 마운틴), 관객을 대리하는 평범한 주인공의 눈으로 관찰하거나(메종 드 히미코), 몇 겹의 상징과 수사를 두른다(왕의 남자).


▶‘브로크백 마운틴’=이 영화는 두 말 할 것 없이 뛰어난 멜로드라마다. 남성 동성애자(게이)는 이성애자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존재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사랑에 행복해하고 아파하는 연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동성애는 비로소 이해할 만한 삶의 한 방식이

된다.

1960년대 와이오밍 주의 산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카우보이로 고용돼 우연히 만난 두 사내 애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 그들은 고립무원의 산지에서 비바람과 싸우던 어느날 밤 만취해 섬광처럼 관계를 가진다. 이렇게 브로크백에서 쌓인 1년간의 짧은 기억은 그들이 산지를 떠나 세상에 내려온 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일을 하는 20년간을 지배한다.

1년에 두세번 며칠 동안 기쁘게 만났다가 가슴 저미는 이별을 반복하던 그들의 삶과 행복은, 아버지의 아들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부여된 사회적 의무와 결코 공존할 수 없다. 로미오가 원수집안의 딸이기 때문에 줄리엣을 만나서는 안되는 것처럼 그들은 ‘성’이 같기 때문에 서로를 사랑해서는 안된다. 이안 감독은 로키산맥의 서정적인 풍광과 멜로드라마라는 이중의 장치를 통해 게이의 낯설고 불편한 관계를 보통사람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비극적 사랑으로 만들어낸다.

▶‘메종 드 히미코’=‘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국내에도 열혈팬을 거느린 이누도 잇신 감독의 신작 ‘메종 드 히미코’에서는 젊고 정상적인(이성애자인) 여주인공을 게이 커뮤니티 속으로 밀어넣어 관객을 대신해 그들의 세계를 관찰하고 체험한다.

오래전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게이 아버지를 증오하던 사오리(시바사키 고우). 어느날 젊은 남자의

부름을 받고 늙고 병든 아버지가 기거하는 게이 실버타운 ‘메종 드 히미코’(히미코의 집이라는 뜻의 불어)를 찾아간다.

아르바이트 삼아 찾았던 이곳에서 사오리는 게이의 희로애락과 그들을 향한 사회의 부당한 편견을 경험하며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고 아버지와도 화해에 이른다.

동성애를 인정하거나 용납할 수 없었던 여주인공과 함께 관객은 서서히 성장하고 타자의 세계를 이해해간다.


▶‘왕의 남자’=‘왕의 남자’에는 동성애 코드가 편재해 있지만 동성애 영화는 아니라는 묘한 모순이 성립하는 작품이다.

동성애가 몇 겹의 상징과 수사를 통해 말해지기 때문이다. 공길(이준기 분)은 실제가 아니라 ‘놀이판’ 곧 무대에서만 장생(감우성 분)의 파트너이고 여자다. 연산군이 공길에게 요구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라 놀이다.

놀이판에서만 연산군은 공길을 ‘수태할 수 없는 자궁’이자 ‘어머니의 상징적 대리자’로서 마음껏 희롱하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대들의 가상적인 역할극이 실제의 권력암투에 휘말려 피바람을 부를 때, 그래서 상징과 실재의 교란이 일어날 때, 장생과 연산의 사랑도 불현듯 놀이판을 벗어나 동성애의 묘한 뉘앙스(연산이 공길에게 입맞추는 장면)를 보여준다.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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