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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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2006-03-31 14:01:34
+0 988



발길 2005-12-19

아까 저녁참에 현진에게 전화를 했다. 현진은 옥탑에 사는데 며칠 전 강추위 때문에 수도가 모두 터졌다는 소리를 들어 조금 걱정이 됐기 때문.

"어디니?"
"모텔요."

수도도 얼고, 변기도 깡깡 얼어버린 옥탑방이 너무 추워서 친구랑 모텔에 와서 술을 한 잔 하고 있단다. 지 여자 친구가 요즘 많이 바쁘다며 지금 전혀 안 취했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이미 흠뻑 술에 취해 있었다. 괜히 짠한 생각이 들었다.

"잠 잘 곳 마땅치 않으면 형네 집에 와서 추위 피해도 돼. 물론 니가 무서워서 안 오겠지만."
"히히... 갈께요. 형네 집 간 지도 정말 오래 되었네."

하긴 너뿐이겠니. 우리집에 사람들이 온 지 꽤 되는 성싶다. 남자들은 일단 밤의 야수로 돌변하곤 하는 내가 무서워서 오지 않는 걸 테고, 여자들 역시 내가 남자라서 오지 않는 걸 테고. 아니면 마음의 걸쇠 걸어놓은 지 꽤 돼서, 그게 무서워서 그리들 발길을 끊은 건지도. 종종 고립이 무서워 발길 왕래가 잦길 바라면서도 정작 발길 먼지가 쌓이는 게 무서운, 요놈의 고질적인 변덕.  

그래도 말야, 더 늙으면 내가 뭘 바라겠어. 파티를 여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그 말이지.


산책

산책에 대한 욕망 때문에, 숫제 그 욕심 때문에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나는, 평소에는 움직이는 걸 싫어하다가도 타고난 체력 때문인지 한 번 걸으면 대책 없이 걷는 걸 좋아한다.  

걸으며 이야기하는 것, 그게 전부다. 언젠가도 말했듯이 '성교'를 의미하는 라틴어 '코이레coire'는 '함께 여행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성교한다는 건, 나란히 함께 걸으며 여행한다는 것. 성교性交의 '交'는 사귀다는 뜻을 지니며, 두 사람의 종아리를 겹쳐놓은 모양에서 연원한 단어.

나중에 돈이 생기면 닥치는 대로 해외 여행을 다녀야겠단 욕심은 사실 성교를 하겠단 욕심, 그 발치에 드리워진 검고 단단한 웃음의 그림자일 터. 담배, 커피, 그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면 족하지. 조용히 교감할 수 있는 침묵 속에 드러난 수줍은 미소.

헌데 이조차도 욕심이 과한 모양이다. 몇 년째 혼자 걷다 하늘 바라보는 일로 낙을 삼고 있으니.



Chris Rea | The Blue Cafe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