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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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잡지 일다에서 퍼왔습니다. 위안부 누드사태에 대한 정말 제대로 된 시각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상업주의도 민족주의도 둘 다 죽일 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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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 ‘위안부’ 누드, 모두가 공범
    
성폭력 피해자를 눈요기로 만드는 사회

조이여울 기자
2004-02-13 19:40:35  
탤런트 이승연씨를 모델로 한 ‘위안부’ 테마 누드화보집과 관련해 취재를 하면서 머리 속에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맴돌았다. 사람들은 어떻게 ‘위안부’와 누드를 연결시킬 수 있느냐며 경악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사실 어떤 면에서 이 사건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문화적 맥락을 바탕에 깔고 있다.

무엇이 ‘정신대’ 할머니를 모욕하는가

몇 년 전 ‘나눔의 집’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이 떠오른다. 그 할머니는 아침마다 근처에 있는 버려진 땅에 가서 밭을 일구셨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이제 보금자리를 찾았으니 먹고 살 걱정은 없는데, 왜 힘든 밭일을 하시는지 여쭈었다.

할머니는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게 살았잖아. 끌려가지만 않았으면 정말 훌륭하게 살았을 텐데. 그래서 사람들 앞에 우리가 그런 일 겪었어도 떳떳하다는 거 보여주려고. 내가 이렇게 늙었어도 열심히 일하면서 산다는 걸 사람들이 보면 우리에 대한 생각이 바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 할머니께 “할머니,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평생을 살아오셨고 이제 역사의 증인으로 살아가고 계시는 할머니들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당당하고 멋진 역할 모델이에요”라고 말씀 드렸지만, 고개를 끄덕이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아파 보였다.

역사에 영원히 묻힐 뻔 했던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린 분들, 지금도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일본대사관으로 향해 시위를 벌이는 분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앞장 서 계신 분들, 그 분들이 왜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과거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의 공식 사죄를 받아내지 못해서 만도 아니다. ‘정신대’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아직도 그 분들에게 모욕과 고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분들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과 직결되어 있다.

강간은 ‘선정적인 것’?

여성들이 겪는 성적인 피해는 우리 사회에서 ‘선정적’인 이슈로 둔갑해버린다. 성인용 잡지들에 맨날 등장하는 소재가 ‘강간’이다. "강간당한 소녀의 수기", "00양 두 번 당했다", "벌거벗긴 채 오랄 강요" 등 ‘자극적인’ 제목을 앞세우고 말이다. 각종 스포츠 신문 등 황색언론들에서 타 언론보다 성폭력 사건을 유독 많이 보도하고 있는 것 역시 이 같은 현상을 반증한다.

숱한 애로영화에 ‘강간’ 장면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포르노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컨셉 역시 ‘강간’이다. 사실 이번 ‘위안부’ 테마 누드 프로젝트도 그러한 맥락에서 기획된 발상이다. 제작사 측은 성폭력이 남성들을 자극하는 ‘성적 판타지’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유명 여성모델을 벗기는 것이 언제나 돈이 된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성인영화 사이트나 비디오숍에 가면 이미 <위안부>, <정신대>라는 제목의, 혹은 이를 소재로 한 애로물들이 널려있다.

성폭력은 피해자들로 하여금 인생 전반에 걸쳐 지독한 고통을 겪게 만드는 범죄이지만,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 속의 ‘강간’은 소위 ‘야한 것’, ‘자극적인’ 것이다. 피해자 여성에게 ‘불쌍하다’ 정도의 시선은 보낸다 하더라도, 한편으론 악랄한 범죄를 한낱 재미, 혹은 눈요기 감으로 바라보며 피해자의 몸을 성적인 대상으로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잔인한 시선

성폭력 피해자를 ‘성적으로 대상화’시키는 시선 속에서 과연 어떤 피해여성이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폭력이 성적인 폭력이 아니었다면, 그 분들이 젊은 이들 앞에서 ‘수치스럽다’, ‘당당하지 못하다’라는 말씀을 하실까? 만약 성폭력 피해자를 성적으로 대상화시키는 문화가 지금처럼 난무하지 않는데도, 성폭력 피해자들의 신고율이 2-3% 수위를 맴돌까?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피해는 특정한 시기에 그치지 않았다. 할머니들에게 그 시절의 경험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 역시 치욕적이고 혹독한 것이었다. 할머니들이 나서서 증언하기 전까지 우리 정부조차 진상규명을 하지 않았었다. 게다가 그 분들의 상처를, 그 분들의 인생을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만드는 사회의 시선은 얼마나 가혹하고 잔인한가.

한 사람의 영혼을 말살시키는 범죄라는 성폭력, 그 상처도 치유하기 어려운데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자들은 2중, 3중의 피해를 겪게 된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이 지독한 고통의 가해자는 누구인가. 성폭력 범죄를 선정적인 아이템으로 선정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눈요기 감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 기꺼이 동조하고 있는 사람들 전부다.

지금 ‘위안부’ 테마 누드에 대해 분노하면서 민족의 문제를 상업적으로 팔아먹었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실제론 이 같은 기획 프로젝트가 나오는 데 일조한 공범일 수 있다. 이제 화살을 자신에게로 돌려 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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