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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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안종주 기자께.

한 번 내놓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한 번 내친걸음을 되돌려 서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욱 입장 바꿔 생각해 보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쯤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누구에겐가 모를 아쉬움이 남는 요즘입니다. 이번 한겨레 기사 건을 계기로 감염인과 함께 살고 있는 저도 정말 사심없이, 아니 적어도 우리 식구들을 사랑하고는 있는가 반성의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이미 감염된 사람은 인권이 없는가?

2004년 1월 8일 한겨레신문에 안종주 기자가 쓴 “여성동성애 에이즈감염 첫 확인, 감염자 일부만 조사... 더 있을수도”라는 제하의 기사에 대해 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발표한 “에이즈 기사 유감”이라는 논박에 대한 반론에서 안기자는 자신의 글은 “이 땅에 에이즈가 확산되는 것을 막아 단 한 명이라도 감염인이 덜 나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이 기사는 나름대로 에이즈 예방에 공헌한 것이 된다”고 쓰고 있습니다. 또 단 한사람이라도 감염을 막아 생명을 구하는 것이므로 “이 기사야말로 매우 인권적인 것”이라고도...

물론 안기자의 이런 긍정적인 예측대로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혹 다른 누군가는 이 기사를 보고 “보아라! 또 동성애다. 이번엔 여성동성애까지 로구나.” 에이즈 발생 초창기에 그랬던 것처럼 역시나 에이즈는 동성애자들의 질병이라는 확신을 더 굳히고, 동성애자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따라서 동성애자만 없다면 에이즈는 당연히 박멸되는 것으로 지독한 오해를 한다면, 그러므로 이성애자인 나는 에이즈와 무관하고 감염인들은 모두 죄의 결과로 병을 얻었으니 함께 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로 성변태 정도로나 생각하게 된다면... 그리하여 세계적으로 이성을 통한 전파가 더 우세한 이 때, 우리나라의 감염율이 작년 같은 기간에 대비하여 50%를 육박하고 있는 이 때에 자칫 이성애자들의 에이즈에 대한 불감증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인권 가운데서도 생명권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라고 쓰셨지요? 옳습니다. 그렇다면 감염인들은 비감염인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감염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이나 편견쯤은, “동성애 곧 에이즈”라는 오해가 굳어져 이 땅 감염인들의 설 자리가 더욱 더 좁아져 생존을 위협받는 이런 정도의 오해쯤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에이즈 걸린 죄로?

이미 아시겠지만 죽음에는 물리적인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숨은 쉬고 있으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면... 걸어 다니는 바이러스 덩어리라든가, 나의 안위를 위해 없어져 주어야 할 사람쯤으로 취급당한다면 그는 사회적으로 이미 죽은 자입니다. 비감염인에게 생명이, 인권이 지켜져야 한다면 이는 감염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가 진리인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감염인은 이미 에이즈 걸려 죽을 목숨이니 그의 인권은 무시되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쉬운 내 탓이요!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이 말은 왜 안기자에게 반박하는 감염인과 동성애자들만이 들어야 하는 말입니까? 안기자의 기사에 대해 감염인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을 때 그들이 왜 나를 향해 반대 의견을 이야기 하는가 생각해 보셨나요? 붓의 힘을 휘두를 수 있는 기자의 입장이므로 한번 더 나를 살피고 입에 쓴 그러나 몸에 좋은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면 좋은 일 하자고 만나서 서로에게 마음에 상처를 내는 일은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연구조사에는 목적이 있다.

본 설문조사는 한국에이즈퇴치연맹에서 주도하여 동성애자들의 에이즈예방과 권익에 쓰이기 위한 목적으로 비공개를 원칙으로 진행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이성애자의 부분이 배제되고 동성애자 감염인들의 부분이 강조된 결과가 나왔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안기자는 “설문에 이성애자 부분의 통계가 없는 것을 나에게 왜 이성애 부분의 언급은 하지 않았냐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다면 이는 내 책임이 아니라 연구조사팀이 설문지 작성을 잘못한 것이다.”라고 항변하고 있는데 모든 연구조사에는 목적이 있으며 설문지의 내용은 신뢰도가 보장된 범위 내에서 얻고자 하는 정보나 목적에 맞도록 작성됩니다. 더욱이 올바른 연구자라면 이것만으로도 불충분하여 연구결과를 발표할 경우 선의의 피해자를 막고 응답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연구의 제한점을 밝히고 또 연구가 일반화에 문제가 있다면 이 역시도 밝히려 노력합니다.

본 조사연구는 애초에 사회 일반에 공개될 목적이 아니었으며 또 이성애와 동성애간의 비교조사연구는 물론 아니었습니다. 제기되는 문제는 안기자가 본 조사를 기사화하면서 이미 이것이 언론에 나갈만큼 일반화 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주지하고 있었고, 기사화 한 후 문제가 되자 설문조사의 주체가 되었던 퇴치연맹과 남서울대 측에 “미리 동의를 구하면 거절당할까 싶어 허락을 청하지 않았다.” 답변하였습니다. 연구의 자문위원이라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비공개 자료를 기사화 한다면 기자의 최소한의 기본적인 양심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인터넷상에는 잘못된 보도가 더 있다.

한겨레 신문지상에 보도된 내용 외에 인터넷상에는 감염인들의 삶에 대한 그릇된 내용이 더 있습니다. 감염인들의 경제적 상태를 지적하면서 “감염인의 17.4%만이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는 직업을 갖고” 있으며 “상당수 감염인들이 정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에 의존하며 생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쓰고 있는데 월 21만원-28만원의 정부보조금은 건강한 사람도 생계조차 유지하기가 불가능한 금액이며 이것마저도 상당수가 아닌 극소수의 감염인들만이 혜택을 받고 있는 실정임을 정말 모르십니까?

******여성동성애자의 에이즈 감염여부에 과학적 확인이 왜 필요한가?

여성동성애자들의 성행태로 에이즈가 전파될 수 있다면 이는 과학적인 검증절차가 우선 되어야 한다는 감염인과 동성애자들의 주장에 대해 안기자는 그렇다면 남성동성애나 이성애에 의한 전파로 이미 감염경로가 인정된 모든 감염인들에 대해서도 과학적 확인을 해야 하지 않느냐? 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에이즈 발생 초기에는 에이즈는 남성동성애자들간의 성관계를 통해 만들어 진다고 생각했었습니다. HIV가 발견되면서 에이즈는 동성애가 아니라 바이러스에 의해 전파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다면 바이러스에 의해 전파되는 에이즈가 남성동성애자의 성행태를 통해서 왜 쉽게 전파되는지는 이미 그 시기에 입증되어 에이즈전문가들에 의해 전파경로로 공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성동성애의 경우는 그동안 쉽게 전파가 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안기자가 여성동성애를 에이즈의 전파경로로 선언한다면 새로운 과학적 검증이 요구됨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얼마 전 호주의 한 어머니가 감염인인 아들에게 장기간 피부에 연고를 발라주다가 감염된 사례가 보고 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이런 행위들은 에이즈 전파경로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므로 역학조사가 실시되고 바이러스 유전자 염기서열과 같은 과학적 검증절차를 거쳐 전파경로로 확인된 일이 있었지요.

이 문제에 대한 좀 더 쉬운 예를 든다면 만약 누군가가 폐결핵이 피부접촉을 통해 전염된다고 주장한다고 합시다. 폐결핵은 지금까지 그 전파경로가 공기전염으로 밝혀져 있었으므로 전문가들의 역학조사 및 과학적 검증절차는 마땅히 선행되어야 하며 그 결과로 피부접촉이 입증된다면 비로소 새로운 전염경로로 발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한 방에 기거하는 친구의 폐결핵이 옮았다고 하면 이는 이미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통해 오래 전에 확인된 것이므로 그 역학조사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안기자가 제기해 놓으신 문제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따라서 여성동성애는 과학적 입증이 필요한 것이고, 이미 밝혀져 있는 전파경로에 대해서는 매 사례마다 따로 과학적 확인없이 인정해 줌이 가능한 것입니다.

******특종에 눈이 가리고 마음이 흐려져...

저는 감염인이나 동성애자들을 일방적으로 편을 들겠다든지 그들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안기자의 주장대로 에이즈 관련 책을 펴내고 기부금도 내고 감염인과 동성애자들도 거리낌 없이 만나고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줄곧 해 왔다는 노력을 부인하고 싶은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그러나 한편 이것으로 모든 잘못이 다 덮일 수는 없습니다. 간혹 우리가 마음이 흐려져 올바른 판단이 어려울 때, “나”라는 벽에 갇혀 분별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저 진정으로 마음을 다하여 “참 미안하다.” 사죄하고 바로 잡으면 되는 일인 것을요. 그동안의 노고와 감염인들에 대한 사랑이 이번 일로 손상되지 않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부족한 글을 올립니다.

2004년 1월 31일
에이즈119 대표 간호사 이미영.
cafe.daum.net/redribbo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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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