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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재우 형 덕에 핑크로봇, 영로와 함께 반지의 제왕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엽기적이었다.

반지의 제왕이 시작되자마자 15분쯤 흘렀을까, 극장 좌석이 편안한 침대라도 되는 양 스르르 자고 있지 않은가. 아라곤이 마침내 왕의 자리에 등극하고 사우론이 궤멸될 즈음 꿈속에서 반지를 찾아 헤매던 우리의 골룸 전재우 씨는 그제서야 부스스 일어나더니 에필로그 화면을 흘겨보며 한 마디 했다. 그때 막 옆에 있던 영로는 감동의 물결이 눈샘을 뚫고 나왔는지 훌쩍거리고 있었다. 프로도가 호빗 친구들과 작별하는 순간이었다.

전재우 : 쟤, 대체 어딜 가는 거야? 그리고 영화가 왜 이렇게 지루해.

그의 목소리는 뚜.렷.뚜.렷 극장 안에 울려퍼졌다. 에필로그의 지루함을 못견딘 그는 핸드폰을 켜는가 하면 음료수를 연속해서 홀짝였다. 이윽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 밖에 나왔을 때 전재우가 말했다.

전재우 : 근데 프로도 걔, 어디 간 거야?
아라곤 : 그건 말이지.... 지금 여기는 중간계잖아. 반지의 제왕은 계가 여러 개로 나뉘어져 있고....
전재우 : 체! 잘난 체 하기는. 야, 밥 먹으러 가자.
아라곤 : -.-


파김치 소개팅

친구사이 사무실에 파김치 형이 도착했다. 12월31일 날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벙개를 때린 그. 아무도 오지 않으면 홀로라도 벙개자리를 지키겠노라 하소연을 했던 그였다.

저렴하되 더욱 화끈하게 송년회를 하자며 재우 형과 핑크로봇이 미리 가서 '부침개'를 준비할 요량으로 먼저 재우 형네 집으로 떠났다. 어제 송년회는 재우 형네 집에서 열렸다. 재우 형은 먼저 떠나며 말했다.

전재우 : 야, 니네들 올 때 맥주랑 폭죽도 사 와라.

그래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카탄 게임도 하고 사무실에 있는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윽고 재우 형네 집에 갈 즈음 파김치 형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F였다.

소개팅시켜주겠다는 전화였다. 그러자 그는 망설임도 없이, '너네들한테 미안하구나'쯤 되는 위선적인 얼버무림도 없이, 단호하게 '소개팅할 땐 가서 뭐라고 이야기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거였다.

벙개를 때린 것도 그였고, 12월 31일 날 벙개하는 게이들은 참 구리다는 말도 한 것도 그였고, 그 때문에 카탄 게임도 해주고 맥주도 같이 마셔주었건만, 전화 한 통에 망설임도 없이 '이럴 땐 가서 뭐라고 하는 거니?'하고 말하는 그.

그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총총걸음으로 소개팅 자리로 가버렸다. 심지어 그는 나중에 소개팅 한 머슴애와 함께 송년회 파티에 오라는 전화에 대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파김치 : 얘, 어떻게 소개팅하는 날에 데려갈 수 있니?


송년회

재우 형네 집에서 조촐하게 시작된 송년회 파티는 1월 1일로 넘어가는 그 시각 카운트 다운과 함께 폭죽을 터뜨리는 것으로 그 화려한 피치를 올리더니 나중에 사람들이 더욱 몰려 막판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북아현동 시스터즈를 비롯 그 자리에는 마지막 초인종을 누른 모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게이들이 모여 있었다. 웃음이 피었고, 술잔이 오갔으며, 끼와 질펀한 음담패설이 작열했다.

만리녀, 용 등은 나중에 고스톱을 치기도 했는데, 마지막으로 온 모군이 사람들 성화에 자리에서 일어나 목청을 뽑아 독창을 했다. 어떤 엘레강스한 노래였는지는 나도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꽤 엘레강스한 노래가 갑자기 흘러나와 시끌법적하던 분위기 위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이 쿡쿡거리며 웃기 시작했는데, 모군의 팬클럽 회장인 영로가 존경하는 눈으로 모군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그도 못 참았던지 한 마디 픽 던지고 고스톱 치는 방으로 도망갔다.

"집에 장독대 뚜껑 열어놓고 왔네."


에필로그

새벽 5시쯤 사람들이 재우 형네 집에서 잠들기 시작했다.
술 먹고 안 취하기로 유명한 라이카군이, 사람들이 벗은 자기 등짝을 관람하는 것도 모른 채 쿨쿨 자고 있다가 슬며시 일어나 시골집에 가야 한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고고하기로 유명한 아라곤과 핑크로봇, 집이 가까운 모군이 지하철 시간에 맞춰 재우 형네 집을 나섰다. 술에 잔뜩 취한 아라곤은 핑크로봇의 부축을 받으며 걷고 있었다.

4호선을 타고 집에 가던 아라곤인 나는 마침내 아침 8시쯤에나 집에 당도할 수 있었다. 내 집은 수유리인데, 자다 일어나면 당고개고, 다시 갈아타고 잠을 자다 일어나면 미아리삼거리인 시계추놀이 하기를 몇 번 하다가 마침내 집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 왕의 귀환인 것이다.

아, 1월 1일의 아침치곤 참 화려하군, 하고 속으로 되뇌며, 라면 하나를 맛있게 끓여먹고 잠에 들었다.

황무지 2004-01-02 오전 07:34

체... 조신이고 나발이고... 어짜피 방구석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 할 거였으면..
마지막 송년회에 참석 할 걸.. 놓쳤군요........

뭐.. 그 덕분에 좋아라~ 한 건.... 오늘 하루 종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산책 시켜준 울 집 강아지.. 팔팔이 뿐이네요... -,,-;;

골룸 2004-01-02 오전 07:59

흠... 거짓정보를 남발하는 가짜 아라곤은 허위날조된 사실을 바로 잡지 않으면 그날 있었던 당신의 엽기적 행각을 담은 사진을 공개할 것이오..

* 뒷 이야기

1. 이쁜이,엠씨몸,헤븐 등 모두 잠든 사이에 열나게 설거지하고 먼저 퇴장함.
2. 뒤늦게 일어난 멤버들... 콩나물국 끓여먹은 후 마치 엠티라도 온 듯 방바닥에서 뒹굴며 텔레비젼 시청.
3. 송년회파티가 2박3일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낀 골룸은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바쁜 척하며 엉덩이 무거운 삼인방-차돌바우, 영로, 만리녀를 마지막으로 몰아냄.
4. 만리녀의 화끈한 뒷풀이... 인사동에서 영로와 골룸을 위해 한턱 쏨. (미안해 차돌바우... 우리끼리 먹어서...)
4. 라이카 대표님 신년 하례... 영로,만리녀,골룸 친구사이 사무실로 신년하례인사 올리러 감... 감동의 눈물을 흘린 새대표님께서는 이 날 인사를 온 영로들에게 올해 큰 자리를 하사하겠노라고 약속함.

아라곤 2004-01-02 오전 08:09

송년회 하느라 수고했어, 골룸. 어제 안 갔더라면 많이 외로웠을텐데, 많이 웃게 해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골룸 주제에 이제 왕이 된 아라곤에 반말을 하는 건 좀 골룸스럽지? 그리고 만일 내 사진을 공개한다면 나 역시 당신의 엽기적 행각을 담은 사진을 홈페이지 대문에 아예 달아놓고 말 거야. 흥!

차돌바우 2004-01-02 오전 08:21

정말 미워 ㅠ.ㅠ 나만 보내 놓고 밥을 사줬단 말이쥐 흑흑흑.
그럼 나중에 나만 따로 사주는고야? (x11)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 2004-01-02 오전 08:27

저의 부모님은 시골이라고 하긴엔 좀 뭣한 수원에 사시구요,
술이 도통 안깨 아버지가 으례 하시는 걱정을 술김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네요^^
어제 너무 즐거웠고 자리 및 음식을 준비해주신 골룸 형에게 제가 가진 반지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네요::$

핑크로봇 2004-01-02 오전 11:24

아아..부럽...
언젠가 나도 밥 얻어 먹어야지^-^

영로 2004-01-02 오후 14:06

마지막을 읽다 문득 언제나의 제 귀가때 모습이 가끔 떠오르는군요
보통은 지하철을 타고가면 졸더라도 내릴곳 다되서 일어나는데 가끔 안그럴때가 있습니다.
어떤때는 살짝 잠들었다 일어났더니 집 가기 바로 전 역이라서 내릴곳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두시간이 넘게 지나가 있었다던지 그런 경우가 참 많군요.
또 어떤때는 한정거장을 더 갔는데 내려서 반대쪽 선 타기 귀찮아서 한바퀴 돌아서 집에 간적도 있군요.
물론 위, 아래 상황이 혼합되서 있던 경우도 부지기수[笑]

엄우섭 2004-01-02 오후 19:17

그 자리에 나도 있었소? 없었소? 나도 모르겠소...ㅡ.ㅡ;;
주화입마에서 헤어나오니 지갑분실했더이다.. ㅠㅠ

골룸 2004-01-02 오후 19:52

1차 사진 갤러리에 올렸습니다. 몇가지 충격적인 사진은 2차분에 더 올리도록 하지요...

금영이 2004-01-02 오후 22:36

아 내 뱃살좀 어떻게 좀 해줘요..잉

poemtoon 2004-01-03 오전 01:12

잼있었겠다...부럽당ㅠㅠ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