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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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 2012-06-23 00:10:22
+4 875
우연히 인터넷 예고편에서 보게된 두결한장을 오늘 메가박스 개봉관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30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궁금했던 저는 혹시나 나에게 많은 공감을 주지 않을까란
기대반 설레임반으로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뭐! 영화관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주위을 둘러보니 남자 혼자 보러온 사람은 저뿐이었지만
영화관 불이 꺼지고 영화 보는데 집중하다보니 왠지 영화 캐릭터들의 에피소드가 마냥 저를 이야기 하는것 같아서 주위 사람들 신경쓰이지도 않더군요.
그래서 평소엔 잘 집중하지 못하면서 엄청 신경써서 영화에 몰입했습니다.  
특히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친구사이 누구누구를 연상 시킬만큼 흡사해서 혼자 커피 마시면서 영화 보다가 웃다가 죽는줄 알았습니다.
몇년전 하늘나라로 간 스파게티나 형 생각도 나고  영화의 장면장면이 제가 알던 곳이라서
더 마음에 와닿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병원은 뭐.. 한장면만 봐도 어딘지 알겠더군요.
그리고 영화의 티나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죄지은것도 아닌데 자꾸 죄송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모습이 안쓰럽고 다소 답답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제 환자들 생각도 나고 얼마전 만난 HIV 감염자도 생각나면서 그 환자한테 더 잘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습니다.
얼마전 만난 HIV 감염자는 누가 봐도 게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이 얘기해줘서 알았는데 가방이 보통 남자들이 잘하지 않는 누가봐도 여성 취향의 가방이라서 이반이라고 조금만 의심한다면  알아차리겠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HIV 감염자라고 그에게 통보했을때 그 삶의 무거운 눈빛. 올것이 왔다는 상념에 젖은 표정
을 보면서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해 후회스럽고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본인은 동성애자라고 예기하면서 굉장히 저한테 미안해 하더군요
피 뽑으러 오는 간호사나 병실 치우러 오는 아주머니한테도 미안해하구 사실 전 속으로 본인한테 제일 미안하지 뭐 큰 죄를 저질렀냐고 따지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에 저도 모른채 하며 그사람을 타 병원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어느덧 저두 이제 수련의 생활이 끝나가고 다시 공부를 더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원래 하고 싶었던 분야에 더 매진하기로 했습니다. 거기다가 정책 관련 대학원도 준비 중인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하던대로 함 해보렵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삶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착각할 때 무수한 폭력이 저질러지는게 아닐까? 라며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영화였습니다.
전 나름 열심히 살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장남으로 동생들 학비 해준다고 나름 고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동생들은 자리를 잡아가면서 제가 학비한다고 매달 부쳐주던 돈은 그냥 제 통장에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았더군요,
본인의 인생에 더이상 간섭말라는둥 시집,장가간다고 과거에 저한테 가지고 간 돈은 까맣게 잊어버리더군요.
나름 고생해서 학비 마련해준 저를 몰라주는 동생들한테 섭섭하기도 하고 동생들이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 제가 집안에 할일은 다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족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이
드는 2012년 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가족에게 할만큼 했으니 이젠 제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제 제 자신에게 더 투자하면서 제가 꿈구는 삶을 살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게이 라이프를 즐기면서 살아야 겟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의사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게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게이가 아니라면 이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여간 제 삶을 돌아보고 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영화엿습니다.
다음엔 애인이 생겨서 같이 영화관 가야겠어요..^^
* Designer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7-22 22:08)

막걸리마신고양이 2012-06-23 오전 01:41

많은 분들이 두결한장을 예찬을 하시니 저도 이제 그만 망설이고 보러 가야겠네요

웹툰 두결한장 작가 박희정, 예전 사랑했던 사람이 한 번 보라고 빌려줬던 호텔아프리카를 계기로 좋아하게 됐었는데 - 참고로 금요일마다 포털사이트 네X트 웹툰에 연재중 - 역시 그림체가 아름답더군요 개성있는 캐릭터들 하며...티나형 닉도 보이구요

재원님
HIV 감염인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해준 거에 대해서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오히려 그냥 넘기신게 잘 하신 일 일 수 도 있어요
위로어린 따뜻한 말이 때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도 있거든요 -> 이 말 이해하실까요?!

아무말 없이 그냥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는 게 그게 더 힘이 될 수 도 있거든요
저같이 동정받는 거 절대 싫어하는 HIV 감염인은요
그러면서 한 편으론 위로 받고 싶어서 미쳐 죽는 HIV 감염인이지만요 ㅎ~;;;

아무튼 두결한장 보러 고고씽~해야겠습니다 ><






damaged..? 2012-06-23 오전 02:24

사려 깊고 따뜻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_^

친구 사이/지보이스를 아시는 분께는 '우리 얘기'가 들어가니 '두결 한장'이 더 재미있고 와닿겠지만,
다른 게이분들, 그리고 더 넓게는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분들께도 '남 얘기'같지 않고
이성애자분들께도 '나하고 다르지만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로 남길 빕니다.
다큐랑 극 영화를 막론하고 앞으로 나올 모든 성소수자 영화가 그러길 바라구요.

말씀하신 HIV 감염인분은 가슴 아프네요.
감염인도 더 이상 움츠러들 필요도 없고, 영화 '종로의 기적'에 나오듯 일상 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한데
게이든 아니든 아직은 인식이 공포, 좌절, 죄스러움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같네요 ㅠㅇㅠ
비록 재원님께서 이번에는 아웃팅의 두려움 등 때문에 그 분께 마음을 모두 보여드리지 못하셨지만,
앞으로는 누구보다도 '돌봄'을 실천하는 의사 선생님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b
(외울 것도 산더미같지만, 피 보고 살 째는 걸 어떻게들 하시는지...
의사, 수의사, 간호사 선생님들 모두 대단하세요~! @ㅁ@;)

동생분들을 마치 부모님처럼 챙기시고 보살피셨다니 진심으로 존경스럽네요 ㅜ_ㅜ
설사 지금은 그 도움을 당연시하시거나 잊으셨더라도
재원님이 아니셨다면 모두 지금의 자리에 계시지 못하셨을 테니
정말 큰 일 하신 거고, 복 많이(!) 받으실 거예요 ^^
(이성애자들은 결혼하고 자식 낳으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죠)

그리고 '제가 게이가 아니라면 이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말씀, 100% 공감하는 명언입니다.
사회가 정해놓은--그리고 종종 불합리하고 부정한--'상식'이나 '조건'의 색안경을 벗고
사람이랑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저도 제가 게이인 게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워요.
우리 모두 'gay'라는 말의 원래 뜻대로 즐겁게 삽시다~! ^0^/

박재경 2012-06-23 오전 02:50

재원 잘 살고 있지?
동생들이 재원이를 많이 서운하게 했구나
다 사람들이 그렇단다.....
가족들이라고 다른 것은 아니야 특히 형제들은 말이야

그래도 언제나 돌아오면 받아 주어야 하는 것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몫인거 같아

두결한장 후기 멋진데~~~ ㅎㅎ

재원 2012-06-23 오전 03:08

당연히 이해합니다.
저 또한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며 사는 사람이니까요.
나이가 들면 자신감이 더 생길것 같았는데 자신감 보다는 제가 모자라다고 자각하는 부분이
더 많아서 인간들은 죽을때까지 배우면서 사나 봅니다.
하여간 6월 마지막주 친구사이 때 뵈어용..^^
좋은 댓글 써준 damaged 님 & 막걸리 마신 고양이 님 & 박재경님께 감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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