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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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04-01-13 02:50:27
+1 1049
구두를 갈아신으며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브레히트처럼, 혹은 망명길에 알프스 산자락에 쓰러져 죽은 벤야민처럼 그렇게 고고한 척 살 수는 없겠지만, 훌쩍 어디론가 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단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웅덩이처럼 고여버린 내 일상의 변함없는 잔물결들을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저 역시 헌 구두 밑창을 갈고 구두끈을 질끈 조이고픈 그런 욕망. 훗, 지금 난 행여나 당신이 뒤에 남긴 미망의 흔적 때문에 심상이 어지러워져 있을까 당신을 위무하고 있는 겁니다.

어제밤, '이것들을 조져?'하고 긴 칼을 뽑아놓은 채 잘 닦인 남자의 몸인 양 어루더듬다 이제 막 항해에 나선 저 배에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피식 웃고 말았지요. 실은 구두 밑창을 가방 속에 챙겨넣었을 당신을 생각하니 말 섞고 부대끼는 일이 희극적인 일이 되고 말더군요.

열대의 밤은 여기보다 더 고적할 것 같아요. 난 당신에게 '고전' 한 묶음 들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당신은 점잖게 나무랐지요.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어찌 톨스토이를 펴들고 앉아 있겠냐고. 당신 말이 맞아요. 그래도 열대의 밤, 바호밥나무 밑에 그리 길지 않을 당신의 여행담을 묻어놓고 오는 일 꼭 잊지 말기 바래요.

아프리카 와인 술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더이다. 한때 그곳에서 금기의 술이었던 전통주인 야자와인, 한국에 다시 돌아올 때 꼭 가져오기 바랍니다. 난 당신에게, 이곳 환락의 게이 커뮤니티를 잊지 않도록 종종 선물을 보내드리지요.

열대로 떠나기 전 날, 지금 여긴 잿빛의 눈발이 뜨덤뜨덤 나립니다. 블랙 오르페우스를 듣고 있어요. 눈물의 주책이 과잉된 요즘의 난, 당신을 송별하지 않는 게 나을 듯해요.




들리는 곡 : Aziza Mustafa Zadeh - Black Orpheus

알자지라 2004-01-13 오전 03:29


웹진 : Roger Casement, 검은 일기의 비밀 :
target=_blank>http://chingusai.net/bbs/view.php?id=webzine&no=64



예전에도 이곳에 링크 걸어놓긴 했는데, 갑자기 로저 캐즈먼드의 일기장이 생각나 옮겨 놨습니다. 개인적으론 작년에 쓴 글 중 가장 마음에 와닿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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