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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제가 눈이 떠진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전 평소 출근할때도 그 시간엔 일어나질 않아요 ^^;; 대략 8시에서 8시 30분 사이쯤 일어난답니다.

그 시간에 눈이 떠진다는 건, 어디 여행을 간다거나 혹은 답사. 아니면 꼴딱 밤을 샜거나 하는 정도의 사건이었죠. 저에게는...

글쎄요. 이번엔 긴장을 했었나봐요. 정확히는 설레이는 것 반, 긴장감 반.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전 날에도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구요.


아침 7시가 되서 눈을 뜬 상태로 멍하니 창밖만 빤히 쳐다 보고 있었더랬죠.

그렇게 30~40분은 그냥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던 것 같아요.


8시가 되고... 9시가 되고... 잠시 TV를보다... 누웠다... 앉았다.

'지금은 가야하는데... 갈 준비를 해야하는데...'

마음은 준비를 해야한다면서, 막상 제가 하는 행동은 멍~ 하니 앉아만 있었어요.


그렇게 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딴 생각만 하다.

점심때 쯤에서야 부리나케 급 준비를 했습니다.

'일단 가보쟈. 뭐가 됐든...'

다른 것 보다 사람들이 보고 싶었거든요. 만나고 싶어서.

'의상 코드가 누드 & 핑크 라고 했으니, 분홍색 티를 입고 가야하나? 가방은 가지고 오지말라고 했으니, 일단 두고 가고...'

혼자 핑크색 티를 입었다, 벗었다. 반복을 했더랬죠...

고2 수학여행때 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오라고 했던 것을 '수학여행가는데, 설마 다들 교복을 입고 오겠어?'

하는 아닐한 판단 착오로 인해 전체 인원중 달랑 3명만 사복을 입고 가는 인원에 속해버리는 엄청난 오류를 범한 적이 있었던 지라.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답니다.

그러다 설마.... 설마.... 하며, 평상시 입던대로 입고선, 청계천으로 향했는데,

아뿔사...

전 청계천 입구광장에서 제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어요..

제 눈에 보이시는 거의 모든 분들이 분홍색 티를 입고 계신거였죠..

게다가 전부 다 아주머니들이라는 사실에.....  뭘까? 저 아주머니들이 모두??? 다????

허걱!!


그래요.. 청계천을 따라 행사를 진행하는건 우리 외에도 많은 단체들이 있더군요..

제가 본건 [여성 일자리 창출]이라는 단체 행사였고, 우연히도 그 쪽 모든 아주머니들이 핑크색 티셔츠를 입고 계신것 뿐이었는데,

제가 혼자 오두방정을 떨며, 얼어버렸었더랬죠..ㅋㅋㅋㅋ

하마터면 그 자리에 모이신 모든 아주머니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드릴뻔 했습니다. ㅜㅜ





제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경.

한빛광장은 그야말로 시끌벅적했습니다. 그 규모에... 그리고 그 화려함에 잠시 어질어질 하기도 했구요.

처음 접하는 광경에 문화적 충격으로 잠시 정신이 몽롱해지기도 했었답니다.

이 대낮에 그리고 서울의 한 중심에 이 거대한 집단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도 되었었구요.


반가운 얼굴들이 한두명 보이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릴때쯤.

고민하며 아침에 멍때리던 시간이 그리 한탄스러울 수가 없더라구요.

행사의 백미라던 퍼레이드는 절 미친 아이로 만들어버렸고, 누가 뭐라던, 누가 바라보던.

그 순간만큼은 자유로웠고, 가슴이 뛰었던것 같습니다.

한바퀴를 거의 돌때쯤 바닥치는 저의 방전된 체력이 한스러울뿐이었죠..


그렇게 행사를 마치고 뒷풀이 술자리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하루를 마무리 하려했는데 ^^.

그런데 그 하루의 마지막은 저를 또 다른 곳으로 인도를 하더군요.


영호형, 호미, 선가드, 세호 .... 그리고 나머지 네명 (미안해요.. 내가 이름을... 기억이... ㅠㅠ;;)

총 9명이서 클럽을 갔더랬죠.

그냥 신난게 놀았어요..

클럽을 들어가자마자, 일단 스테이지 부터 올라가는 누구들과... 일단 벗고 보는 또 어느 누구...들.


ㅋㅋㅋ 그렇게 신나게 한바탕 땀을 빼고선,

이 저질스러운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참 즐거웠어요. 그리고 행복했고, 눈을 뜬 하루가 계속 저를 설레게 만든 날이기도 했구요.


집에 돌아와서,

긴장이 풀렸나봅니다. 얼마 마시지도 않았던 술을 다 게워내며,

한동안 마주보고 싶지 않았던 변기통과 한참을 마주보고 있었죠.

그리고선 온몸에 열이 올라 박스에 넣어두었던 겨울 옷을 꺼내 입고, 바지까지 입고선,

오돌오돌 떨다가 약을 먹고선 잠이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하루종일 긴장하고 있었나봐요.

바보같이 ^^;;

아침에 눈을 떠보니, 긴 꿈을 꾼 것만 같았습니다. 내가 그랬었나... 잠시 다른 곳을 다녀온 이상한 기분...



아직은 겁이많아, 옷장 속으로 들어오는 빛 틈을 빼꼼히 눈만 내어 두고, 한 줄로만 생긴 세상을 보고 있는것 같아요.

누군가 옷장 문고리를 확 잡아 채버릴까봐, 꽉 붙잡고선 웅크리고 있는데,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인건 분명 빛이었으니까...

아주 조금씩은 넓게 보겠죠 ? 지금부터...


모두들 너무 고생하셨고, 감사합니다.






-완전 짧게 쓸려고, 세세한 내용은 다 뺀다고 뺐는데, 엄청기네요..ㅡㅡ;; -






















* Designer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7-22 22:09)

Sander 2012-06-05 오전 03:31

잘 봤어요. 읽기만해도 얼마나 설레셨을지 전해지는데요?ㅎㅎ

진석 2012-06-05 오전 11:00

핑크색 티ㅋㅋㅋ 재밌네요.
퍼레이드 때 어떻게 미쳤는지 못봐서 아쉽네요ㅎㅎ
가슴벅찬 변화..좋아요^^

damaged..? 2012-06-05 오후 18:16

ㅋㅋ 핑크빛 아주머니 부대 덕에 본의 아닌 멘붕이라니~
소풍 기다리는 아이처럼 일찍 눈 뜨게 하고 마구 가슴 뛰게 만드는 우리의 축제...!
저질 체력이라고 하시면서도 이태원까지 뛰셨다니 부럽네요.
우리, 앞으로도 많은 일에서 즐겁게 함께 해요 ^.^

min 2012-06-07 오전 10:16

(더 자세하게 쓰시지~)
올해는 유난히 흥분되고 즐거웠던거 같아요. 사람들의 변화가 몸으로 느껴졌으니까요~ (저..만?)
내년에 더 변화된 모습 기대하고 만들어봐요~^^

현식 2012-06-08 오전 02:01

^^ 다시 일상이 시작된 지금. 너무나도 지루하게 느껴지는건.... 이게 휴유증인가요?? ㅋㅋ
가슴이 설레이지않아... ㅠㅠ ....
지난 주말에 몇달치 심장박동을 다써버렸나봅니다

만루 2012-06-08 오전 06:14

이 후기 너므 재밌슴..bㅋㅋㅋㅋ저 역시 현식님과 함께 즐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9명중 한명 만루 인사드립니다^^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