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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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2005-05-11 06: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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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닌 Gonin, 이시이 다카시, 1995


영화 좋네요. 영화 전반부에서 군더더기를 솎아내 속도를 조금 높였더라면 더 괜찮을 듯.

예전부터 볼까 말까 망설였던 영화입니다. 퀴어 코드가 있다는 소리는 진작에 들어 알고 있었는데, 감독 필모그라피도 별로고, 미이케 다카시의 '블루스 하프'의 유사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지레 짐작이 선택을 유예하고 있었던 듯.

감독은 '천사의 창자', '검은 천사', '프리즈 미' 류의 호러 영화를 찍었던 감독입니다. 다 본 건 아니지만 그 중 몇 편을 보았고, 별로였던 기억. 최근에는 '꽃과 뱀' 시리즈 같은 로망 포르노 영화들을 찍고 있습죠. 최근작들은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았던 감독인데, 고닌 시리즈 중에서 첫 번째 '고닌'이 썩 괜찮은 작품이네요.

포스터엔 기타노 다케시가 나오지만, 기타노 다케시는 영화의 1/4도 안 나옵니다. 그는 나중에 킬러로 나오죠. 대단히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지요. 다섯 명의 루저들이 합심해서 야쿠자 사무실을 텁니다. 야쿠자에게 빚진 디코스텍 사장, 게이, 전직 형사, 다리를 저는 장애인, 가족을 몰살한 소심한 가부장 이렇게 다섯 사람이 주역입니다. 10억엔을 강탈당한 야쿠자는 킬러를 불러 한 명씩 이들 모두를 죽이게 되죠.

일본 영화는 특이하게도 동성애 코드를 영화 속에 섞을 때 흔히 야쿠자 이야기를 동원하곤 합니다. 홍콩이나 한국의 느와르가 '우정'이라는 조금 넓은 스텍트럼의 감정 속에 동성애 코드를 숨기는 반면, 일본의 야쿠자 느와르는 코믹하게 또는 반대로 비장미 넘치는 톤으로 동성애 코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동서양 느와르 영화들 속에 동성애 코드가 어떻게 부재/현전하는지 연구하면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이미 퀴어이론에선 뒷골목 건달패들이나 조직폭력배 같은 권력을 중심으로 구축된 동성유대집단의 섹슈얼리티 구성 과정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죠. 서양과 동양, 동양 내에서도 각국의 차이를 면밀히 검토하면 꽤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듯.

아무튼 주인공 격인 디스코텍 사장과 게이와의 연정은 영화 마지막까지 묘한 감흥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반면 이들 다섯 명을 모두 몰살한 킬러 두 명은 이상한 SM 게이 커플인데, 기타노 다케시 오빠의 연기는 정말 죽여줍니다. 시체들이 가득한 방에서 부하이자 젊은 연인을 마구 때리며 옷을 벗기는 장면, 죽입니다. 아, 멋진 오빠... 엔딩 씬에서 비닐 우산 쓰고 낄낄거리며 경찰차 쏘아대는 씬은 가히 명장면이랄 수밖에.

약간 지루해서 괜히 보았나 싶었는데 엔딩 씬에서는 가슴이 서늘히 주저 앉는 영화.    2005/04/08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