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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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메일로 "이스트"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나는 호모포비아와 같이 영화를 본다.'

 

나는 예쁜 미녀보다는 너무 바빠서 미처 면도를 하지 못하고 집을 나온, 살짝 수염이 돋은, 건장한 체격의 잘생긴 남자에게 끌린다. 세상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들을 게이, 호모, 동성애자라 부른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지독히도 싫어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벌레나 나쁜 병에 걸린 사람들을 보는 것같이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호모포비아라고 부른다.

내가 호모보비아를……. 나 같은 사람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을 접하기 시작한 건 안타깝게도 태어나면서 부터였다.

나의 어머니는 가정형편 때문에 뱃속에 아기를 지운 이후에 어린 나에게 병적일 정도로 집착이 심했다. 한참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에 나는 자물쇠가 단단히 걸린 방안에서 갇혀 지냈다. 어쩌다가 내가 나가놀고 싶다거나 집에 안보이면 어머니는 심한 타박을 했다.

동성연애자에게 강간당하고 싶냐고…….

위의 말은 내가 적절히 순화한 것이다. 실제로 내 어머니는 강간이라는 단어보다 더 노골적인 표현으로 써가며 나를 겁줬다. 그래서 그 어린 시절에 나는 누구나 아이들이 궁금해 할 '엄마, 애기는 어떻게 낳아?' 라는 말을 꺼내기 전에 동성애자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를 먼저 배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부모님을 미워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많이 아프시고 배우지 못하신 분이시다. 그 시절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지금보다 많이 심했고 그들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옛날이었다. 게다가 내가 살던 산동네는 양아치와 불량배들이 많았던 가난한 곳이었다. 아마도 자식을 지켜야하는 어머니로서 그때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내 정체성을 알아가는 청소년이 될 때까지 동성애자란 동성연애자. 어린아이들을 성 노리개로 삼는 성범죄자, 에이즈에 걸리는 사람들,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사람들로 믿고 살았다. 그러다 내가 여자들을 좋아하는 남자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상한 내 마음을 바꿔보려 노력했다. 교회에서 기도도 해보고, 정신과에서 상담도 하고 약도 먹고 해볼 건 다 해봤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길가에 늘씬한 여자보다는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가 눈에 더 들어온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내 정체성을 인정하고 나의 수많은 내면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좀 특이하고 괴상하고 남들에게 혐오감마저 불러일으키지만 그래도 나의 전부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저 나의 성격 중에 한 일부분일 뿐이기에 그것을 작은 상자 속 서랍 안에 넣어두고 살아왔다. 그리고 한참의 시행착오 끝에 나와 같은, 혹은 전혀 다른 모순된 성격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분적으로 서랍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나의 일부분을 말해줬다. 그랬더니 여러 가지 반응이 나왔다.

나의 친구들 중에 한 녀석은 정말 대인배였다. 밝은 성격을 가진 그 친구는 교회에 다니는 열렬한 신자였지만 자기 친구들 중에는 교도소에 들락거린 사람도 있다며, 나의 정체성에 대해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물론 그 이후에도 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친구로 남아있다.

나의 친척누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네 마음이 그런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받아들였다. 지금도 만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편하게 대한다. 그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긴장을 많이 한다.

반면,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친척 형은 '그건 얘기를 꺼내는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 큰형이 알면 넌 맞아죽었다. 언제 한번 장안동을 가자! 거긴 천국이다!' 라는 황당한 말을 하기도 했다. 이후에 내가 서랍 속에 꺼낸 걸 말한 것 때문은 아니지만 서로 바쁜 관계로 연락하지 못하고 지낸다. 물론, 작은형이 말한 윤락업소엔 가지 않았다. 내가 거기서 천국을 느낄지, 지옥을 느낄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숨겨진 내면을 차마 말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는 아니다. 아마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야동에 한참 빠져 있었을 때 부모님은 내 성 정체성을 알고 계시고도 모른 척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자식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힘들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길이었다. 그래서 더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특히 돌아가신 아버지께…….

아무튼 내 조그마한 일부분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내 주변에 친구들이다. 나는 어떤 친구를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육신이 땅에 썩거나 화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부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그 친구는 자신의 장기를 기증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너무나 많은 감동을 받았다. 정말 선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고등학교시절 만들었던 인터넷 카페에 50문답을 작성한 이 친구의 답변하나가 나를 섬뜩하게 했다.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친새끼들…….

그걸 본 나는 그 친구에게 쉽사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나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할 마음이 없는데 혹시나 내가 그 친구에게 나쁘게 비춰질까봐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다른 친구가 있다. 지금 말하는 고약하고 괴팍하기로는 아주 나와 죽이 잘 맞는 베스트 프랜드는 전형적인 호모포비아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친구를 만나는 순간, 나는 내 작은 서랍 안에 무럭무럭 자라난 내 일부분을 꾹꾹, 눌러 담은 다음에 아예 자물쇠를 채워버린다.

무슨 운명의 조화인지 내 최고의 베스트 프랜드와 친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 녀석의 호모포비아성 고민 때문이었다.

네덜란드로 이사 간 그 녀석의 친구가 트랜스젠더랑 결혼해서 절교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마음이 열려 있지 않은 상태였기에……. 나의 작은 일부분을 숨기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그 녀석의 말에 동조를 했다. 그리고 나는 그 괴상한 녀석과 더욱 가까워졌다.

그 녀석은 정말이지, 지독한 밀리터리 매니아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을 다룬 영화를 같이 보러가기 시작해서 '다른 재미있는 영화 또 없을까?' 말을 시작으로 꽤 재미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고 또 약속을 잡고 그러길 지금까지……. 각종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같이 봤다.

극장은 여자친구랑 가야한다는 보수적인 남자라면 좀 황당할 법도 하겠다. 시커먼 남자 두 놈이 시커먼 곳에서 같은 화면을 뚫어지게 본다는 것이……. 하지만 내 작은 서랍에 자물쇠를 채웠으니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게다가 그 녀석과 나는 취미가 같았고 워낙 재미있는 영화가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오는 통에 서로 어색할 것 없이 영화를 보고 그것에 대해서 논하고 서로의 인생에 대해서 논하고 같이 밥을 먹고 그랬다.

어느새 그 녀석과 나는 농담도 주고받고 티격태격하면서도 다시 화해하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목욕도 하는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그 녀석이 나의 수없이 많은 내면 중에 하나를……, 단지 그것 하나를 알게 된다면 나는 정말 무섭다. 나에게 절교를 선언할까봐 두렵다.

그 녀석은 내가 우울해 있을 때, 같이 즐겁게 놀아줬다. 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나를 찾아와 위로를 해줬다. 내가 화가 났을 때, 같이 노래방이나 볼링장 같은 여가시설에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항상 무거운 마음에 잠겨 있던 나를 가볍게 웃어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다. 단지 내 수많은 내면 중에……, 내 수많은 생각 중에 하나 때문에 내 베스트 프랜드를 잃는다면 참 슬플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내 서랍 속에 숨겨둔 것 하나 빼놓고는 그 친구와 다른 것이 없다. 나 역시도 그 친구가 힘들 때나 좋을 때나 같이 있어주었다. 단 한 번도 이상한 감정을 품어본 적이 없다. 그런 게 없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그냥 친구다. 남들이 싫어하는 그 녀석의 삐뚤어진 성격도 덤덤히 받아들이는 남들과 다름없는 겉은 퉁명스럽지만 속은 굉장히 깊은……,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

그런데 단지 내가 숨겨온 이 작은 것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다면 난 무척이나 괴로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수많은 내면 중에 극히 작은 일부분을 줄이고 줄여서 작은 서랍 안에 넣어둔다. 혹시라도 그 친구가 나에 대해 알게 된다면……, 용서를 한다면 난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야 임마, 넌 내 식 아니야!"

박재경 2010-05-17 오후 21:28

마음이 아픈 경험들에 안타까음 금할 길 없네요
그렇지만 자기를 고백하고 과거의 것들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의지가 있으시니
과거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잘 극복하시리라고 생각됩니다

min 2010-05-18 오전 09:23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까요.. 이런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걸. 내 안의 두려움이 무언지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음에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Ouimet974 2011-11-19 오후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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