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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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2004-07-29 15:14:07
+2 862
어제자 신문에 재밌는 기사가 두 개 연달아 올라왔더군요. 강금실 법무장관의 교체, 그리고 동성혼 불허.

2년째 질질 끌어오다가 한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동성혼에 관한 사법적 판단을 내린 사건과 강금실 법무장관의 중도 하차는 기묘한 상상을 자극하는 조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연찮게도, 예전에 강금실 전 장관이 민변 인권변호사일 적에 모 동성애자 인권단체에 잠시 자문 역할을 했었습니다.  

강금실 법무장관의 교체와 재판부의 동성애자 사실혼 불가 판정의 동시적 발생은, 향후 동성애자 관련 법안에 관한 예측도를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보인다는 점에서 즐거운 상상을 자극합니다. 그것이 왜 즐겁냐고요? 이제 막 한국에서도 동성애자 결혼 논쟁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2004년은 동성애자 결혼 문제 논쟁에 관한 한 원년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3월 이상철-박종근 씨가 동성애자 1호로 공개 결혼식을 가지면서 해외뉴스란에서나 볼 법한 동성애자 결혼 문제가 우리 사회의 현안으로 돌출되는가 하면,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를 공약으로 채택한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민변을 비롯 동성간 결혼 합법화를 주장하는 법조인들의 주장 득세, 그에 대응한 기독교를 비롯한 보수층의 반발, 그리고 어제 동성간 동거 관계를 사실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인천지방법원의 판정에 이르기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던 거지요.

한국 내에서 동성혼 문제를 놓고 불궈진 일련의 움직임들은 기실 2004년 전세계에 불어닥쳤던 동성애자 결혼 논쟁 열풍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고 보아야 할 겝니다. 대선을 앞둔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시장의 놀라운 결단과 메사츄세츠州의 동성 혼인 인정 선언 때문에 그 어느 해보다 이 문제를 놓고 생사를 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지요.

뿐만 아니라 사회당이 정권을 잡자마자 뚝딱 동성애자 결혼을 합법화시킨 스페인, 동양 최초로 동성애자 결혼을 합법화한 대만, 파트너쉽 인정에서 더 나아가 법률혼 인정까지 확대하려는 영국, 반대로 동성간 법률혼 불가 선언을 해서 향후 지난한 싸움이 예상되는 프랑스, 호주 등 올 한 해만 해도 이 문제를 놓고 상당한 입싸움을 벌였던 나라는 부지기수입니다. 이같이 속속 타전된 열띤 해외소식들은 올해 한국 내에 벌어졌던 동성애자 결혼 논쟁의 열량을 체크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항목들일 겝니다.

물론 한국의 동성애자 결혼 논쟁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 수준입니다. 아직도 수간, 강간 등 타인의 의지를 구속하고 침범하는 성적 일탈과 동성애를 구분하지 못해서 어버버거리는 단세포적 편견이 사람들 머릿속에 꾹꾹 입력되어 아주 괴상망측한 매트릭스를 구성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동성간 파트너쉽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프랑스의 PACS시민연대협약와 같은 '공적혼인관계civil union'과 '법률혼marriage'의 차이가 무엇이고 어떤 전략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동성애자 인권 단체들 역시 이제 막 서류철을 챙기고 있는 까닭입니다.

동성간 결혼 합법화 운동이 기존의 '결혼' 개념을 신성시하는데 이바지하거나 강제적 이성애주의를 공고화하는 측면이 있는 건 주지의 사실이며 이미 여러 차례 동성애자 커뮤니티 일각에서 경고된 바 있습니다. 이성애적 커플을 그대로 모사하는 대가로 안위를 보증받는 동성간 결혼은 섹슈얼리티 해방에 족쇄를 채우는 또다른 반동이라는 주장을 부각시킨 것이지요.

그러나 동성애자 결혼 논쟁은 단지 '결혼'을 보증받기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징 투쟁의 적절한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국익을 위해서는 자국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을 살해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하는 넘들이 동성애의 '동'자만 나와도 벌벌 떨며 종족 번식과 인구 팽창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는 이 아햏햏한 도덕 체계를 재구성하기 위해서 동성애자 결혼 논쟁은 반드시 치뤄져야 할 우리 시대의 몫이며,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진보적 잣대로 건강한 '가족'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그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민주노동당의 토막 논평처럼 삼각구도의 이성애적 가족 외에도 다양한 삶을 아우를 수 있는 많은 대안가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닫는데 효과적 지침을 제공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동성애자 결혼 논쟁이 즐거운 까닭이며, 현재의 삶을 변화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모든 운동과 어깨를 겨눌 수 있는 힘의 원천일 것입니다.



진보누리에도 올려놨습니다.
http://board.jinbonuri.com/view.php?id=nuri_best&page=1&no=2721

모던보이 2004-07-29 오후 17:16

뭐, 친구사이에서도 성명서 하나 나가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ㅡ.ㅡ
죽어도 결혼해야겠다는 피터팬 님이 써보는 것도 좋을 듯. ㅡ.ㅡ

파김치 2004-07-29 오후 23:06

이제 드디어 이슈로 올라오는 것이 시작되었군....길고도 험한 싸움의 시작이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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