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title_Free
queernews 2005-01-28 08:02:01
+1 568
<킨제이> 알프레드 C. 킨제이(1894-1956)



일명 '킨제이 리포트'로 잘 알려진 성생활 보고서는 한 동물학 교수가 이룬 집념의 연구 성과다. 방대한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 욕망의 적나라한 실태를 파헤치기까지 그에겐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1953년, 미국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두 가지 역사적 출판물이 발간됐다. 하나는 '플레이보이'였다. 스물일곱 먹은 시카고 출신 광고업자 휴 헤프너가 창간한 이 도색 잡지는 남자들의 아랫도리를 한껏 부풀린 덕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특히 마릴린 먼로라는 예명을 가진 여배우 노마 진 모텐슨의 누드 사진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또 다른 출판물은 <인간 여성의 성적 행동>이라는 아주 딱딱한 책이었다. 하드 커버 양장본이라 원체 딱딱하기도 했지만 각종 통계 자료와 그래프로 채워진 탓에 읽기에도 딱딱했다. 저자는 동물학 교수라고 알려졌으나 책 내용은 전공과 전혀 달랐다. 인터뷰에 응한 평범한 미국 여성 6천여 명 중 절반이 결혼 전 이미 처녀가 아니었다고 고백했는가 하면 4분의 1은 결혼 후 혼외 정사를 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응답자 중 28%는 다른 여성과 동성애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요즘 같아선 별 반향을 일으키지 않을 통계련만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대대로 청교도적 윤리를 중시해온 자칭 도덕주의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달랐다. '플레이보이' 판매량이 10만 부를 돌파할 무렵 <인간 여성의 성적 행동>은 물경 30만 부나 팔렸다. '플레이보이' 한 권에 50센트에 불과할 때 <인간 여성의 성적 행동> 한 권은 무려 8달러였는데도 그랬다. '플레이보이'가 성에 대한 환상을 부추겨 베스트셀러가 된 반면 <인간 여성의 성적 행동>은 성에 대한 환상을 철저히 깨뜨린 덕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보수주의자들이 '플레이보이'보다 더 위험한 책으로 낙인 찍은 책, 이 문제적 저작을 쓴 무명의 동물학 교수는 바로 알프레드 C. 킨제이다.
킨제이가 던진 질문들

킨제이 박사가 원래부터 밝히는(?) 사람은 아니었다. 1919년 하버드 대학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그 이듬해 인디애나 대학 동물학 교수로 부임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동물들의 생태였다. 특히 벌처럼 작은 곤충에 관심이 많았다. 인디애나 대학에 재직하는 18년 동안 각종 곤충 표본을 수집하고 종별로 분류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보인 그가 느닷없이 인간의 성생활에 탐닉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우연이었으며 어쩌면 운명이었다.

1938년 인디애나 대학 여학생회는 약혼을 했거나 결혼한 학생, 또는 결혼을 하려고 준비하는 학생을 위해 일종의 성교육 강좌를 개설해 달라고 학교 측에 건의했다. 당시만 해도 정확한 성교육을 받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성적 묘사가 들어 있는 저작물은 물론이려니와 기본적인 피임 정보가 실린 자료를 미국 내에 가지고 오는 것조차 위법이던 시절이다. 대학 측은 ‘결혼과 가족’이라 이름 붙인 이 성교육 강좌의 필요성을 느끼고 적임자를 물색하던 중 성실하고 실력 있는 킨제이 교수를 떠올렸다. 그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순전히 학문적 호기심 때문에 강좌를 수락했다고 한다. 킨제이는 그러나 이내 인간의 성 행동에 대한 과학적 자료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 실증 자료에 근거해 학생들을 가르쳐온 그에게 이 같은 현실은 개탄스러운 것이었다. 그에겐 인간의 생태를 알려줄 표본이 필요했다. 개별 인터뷰는 그가 표본을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연구 방법이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파트너의 수는?" "자위 행위는 일주일에 몇 번?" "오르가슴을 언제 느꼈는가?" 이런 식의 질문이 1인당 평균 300개, 많게는 521개에 달했다. 처음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이내 인디애나주 블루밍턴 주민으로 확대되었고 드디어 수많은 도시의 주민들로 확산되었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10년만인 1948년 1월 5일, 킨제이 박사는 미국의 평범한 성인 남자 5천 명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인간 남성의 성적 행동>을 출간했다. 800쪽 분량의 학술 서적이 서점에 깔리던 날, 먼 훗날 뉴욕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가 충돌하던 그때만큼이나 미국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 역사상 남의 침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세상이 던진 질문들



생물 학자로서 킨제이는 어떤 생물학적 행동도 ‘비정상’으로 구분하기를 거부했다. 그에겐 인터뷰에 응한 5천 명 중 어느 누구도 비정상이 아니었다. 킨제이는 심지어 “현행 도덕 체계를 따른다면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미국 남성들조차 상당수가 변태 성욕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위 행위, 동성애, 강간, 간통, 유아 성도착 등에 대한 킨제이의 태도는 관대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결국 도덕주의자들로부터 극렬하게 비난받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 와중에 1953년 추가로 발행한 <인간 여성의 성적 행동>은 상대적으로 더 베일에 싸여 있던 여성의 성생활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훨씬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악마의 사주를 받은 짓이라고 몰아붙이는 성직자는 차라리 얌전한 편이었다. 당시 기승을 부리던 매카시즘에 편승해 공산주의자라고 몰아붙이더니 급기야 미 하원 특별조사위원회가 킨제이 박사의 연구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다 할 혐의점을 찾지는 못했지만(당연하게도!) 든든한 후원자이던 록펠러 재단이 지원을 중단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쪼들리는 재정 상황에서도 연구를 강행하던 킨제이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향년 62세. 사인은 피로로 인한 급성 폐렴이었다.

죽은 이후에도 킨제이에 대한 공격은 계속됐다. 인간의 성 행위를 묘사한 문학, 미술, 기타 자료를 연구 목적으로 부지런히 수집했던 그를 성도착자로 몰아붙이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일부 보수 단체는 오늘날 에이즈와 성병, 동성애, 아동 성 학대, 포르노그래피의 범람을 야기한 장본인으로 킨제이를 지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킨제이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그가 무척 보수적인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의 맏딸은 “댄스 파티가 열리던 날 12시까지 집에 들어가야 했던 사람은 또래 중에 자신이 유일하다”며 아버지의 보수적 인 면모를 부각시켰다. 그의 보수성은 후대 학자들도 대체로 인정하는 바다. 킨제이의 연구 자체는 전복적이었지만 끝내 사회적, 성적 위계 질서를 옹호하는 태도를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받은 중산층 백인일수록 훨씬 세련된 성생활을 한다는 식의 결론이 좋은 예다. 실제로 그가 인터뷰한 1만7천여 명은 거의 대부분 백인들이다.

킨제이에게 남은 질문들

현재 킨제이연구소가 보관하고 있는 그 당시 각종 언론 보도 건수는 킨제이의 살아생전 인터뷰 건수보다 많은 1만8천여 건에 달한다. 당시 그가 촉발시킨 논란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만일 ‘킨제이 리포트’가 대중의 무딘 성감대를 격렬하게 자극해 놓지 않았더라면 이른바 ‘성적으로 자유로운’ 60년대가 그렇게 폼나게 도래했을까? 섹스는 금욕이 아니라 쾌락이라는 정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했을까? 그는 과연 혁명적 성 과학자인가, 실증적 동물 학자에 불과한가. 50년 전 킨제이가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던졌던 질문보다 더 많은 질문을 그는 지금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영웅인가 역적인가



빌 콘돈 감독은 정반대의 관점에서 쓴 킨제이 관련 전기를 두루 탐독하고, 킨제이의 연구 활동에 참여한 연구원을 만나 구술을 경청하고, 실제 킨제이연구소를 방문해 현장 분위기를 몸소 익혀가며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 10편 중 하나로 뽑은 '뉴스위크'는 '혁명적 성 과학자였던 알프레드 킨제이에게 바치는 날카롭고 미묘하고 감미로운 헌사'라고 격찬했다. 그러나 미국내 보수 단체와 여성 단체들은 창녀나 성 범죄자들을 인터뷰한 것을 근거로 내용을 왜곡하고 통계를 조작한 중범죄자를 ‘비극적 영웅’으로 미화했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영화는 킨제이의 일대기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1948년에서 1953년에 이르는 연구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킨제이에게 엄격하고 청교도적인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이 극적 재미를 더해준다는 평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모가 이혼한 후 죽을 때까지 킨제이는 단 한 번도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다.

김세윤 기자

기사제공 :  FILM 2.0

dovescry 2005-01-30 오전 01:31

(리암 니슨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너무 기다렸던 영화였는데,
아카데미 5개 후보에선 쏙 빠졌더라구요.
Gods and Monsters나, Kinsey 두 편에서, 동시에 '이쪽' 냄새를 '풍기기만' 하는 건...
혹시 빌 콘돌이 커밍아웃 공포증에 걸려있는 감독이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는데...
뭐... 아님 말구. ㅋㅋ
어쨌건, 너무 보고 싶어요. ^^*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수
2384 아치와 씨팍 +3 사우스파크 2006-06-21 569
2383 <b>청소년 이반들의 여름 활력 충전 +4 홍보녀 2006-07-26 569
2382 내일(금) 밤, 저를 만나실 분 +6 낚시녀 2006-08-18 569
2381 어제 가람은 그에게 매달렸다 +1 가람은식성쟁이 2006-09-01 569
2380 5월 17일 아이다호 데이 기념 노래 You make me P... +9 기즈베 2012-05-17 568
2379 조선 명탐정 소식 +7 박재경 2011-02-14 568
2378 문규현신부님의 쾌유를 빕니다. +4 코러스보이 2009-10-23 568
2377 뒤늦게.. '삔 꽃는 날' 잘 봤어요~ +3 나라 2009-10-28 568
2376 동성애자 분들께 도움청합니다.^^; +1 코코 2011-06-07 568
2375 내일 종로소개시켜 주실뿐 ㅋㅋ +5 pianism 2011-07-27 568
2374 이 그림이 움직이나요? +5 스트레스녀 2011-08-23 568
2373 2008년 11월27일~12월1일 HIV/AIDS 감염인 인권주... 인권주간행동 2008-11-25 568
2372 시민단체들, '살인진압 규탄' 대정부투쟁 선포 +1 게이토끼 2009-01-21 568
2371 6월 8일 함께 유언장 쓰기로해용!! (위대한상속녀가) 위대한상속녀 2010-06-05 568
2370 [박보다 재밌다] 퀴즈풀고 다트하자! 블랙 2007-12-13 568
2369 하류인생 정말 늦은 후기 부르노 2004-05-22 568
» 섹스에 비정상은 없다 +1 queernews 2005-01-28 568
2367 KQCF 무지개2005 '퀴어절정' 일정표 +4 차돌바우 2005-05-27 568
2366 동성애는 한 때? uncutnews 2005-10-25 568
2365 지금은 홈피 수정 중 +8 관리자 2006-01-10 568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