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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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2004-04-06 20:41:49
+0 569
습관적으로 아침신문을 펼쳐드는데, 신문기사 사진속에 한사내가 웃고있다.

기사 내용은  일반사회 에서 어느직업에 종사하는 한 인물을 소개 하는것 이지만
내가 한눈에 알아봐 순식간에 기억해낸것은
오래전 둘이서 젊음의 쓸쓸한 골목을 거닐며 수상한 정서를 함께 더듬던 그의 모습이었다.

신문기사를 통해서 지금껏 저사람이 저런일을 하면서 살아왔었구나.......! 하는류의
그간 몰랐던 그의삶 을 알게되는것 보다는
먼저 그와 두세번 어울렸던때의 내모습과 그시절 세상풍경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것은 마치 작은 스냅사진 같기도 하고,  어떤 짧막한 뮤직비디오 장면들처럼 토막토막진 감성을 엮어가듯 이어진다.
그다지 많이 변하진 않아뵈는 얼굴 이지만 그래도 중년에 들어선 옛사람의 모습을보니 새삼스럽다.

시간을 소비하며 세상속을 살아간다는것은 늘 다른환경과 다른사람을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라지만
이쪽정서를 가진사람들의 애꿋은 만남만큼,
절실한면에서나 관계의 지속성면에서, 그렇게 어설프고 짤디 짧기만해 기어코 망연하고 마는것이 또 있을까......?

그를 처음 만났을때 나는 이쪽문화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쌩짜 였다.
다만 스스로의 평범하지 않은 특성에 대해서만, 끝없는 의구심과 열패감으로 가득 차 있었을때 였는데
동갑내기였던 그는 고교시절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이쪽에 자연스럽게 적응을 한사람 같았지만
그런 티를 조금도 내지않는 평범한모습 이었다.
별다른 꺼리낌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바 대로 움직이는 그의 태도에, 나는 거부감 보다는  호기심을 먼저 느꼈었다.

당시 사람들은  어느정도 자신에 대한 이야길 감추거나 속뵈게 꾸미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말해주었던 몇가지 개인신상을, 그저 대수롭잖게 흘려들으며 믿지 않았었다
단지 그렇게 말을 하는 그를 존중한다는 마음으로 들어주었을뿐,
내심으론  그의말이 거짓일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던게 속마음 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우연히 알게되었지만, 최소한 그가 내게 말해준 신상에 대한것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점에 나는 오히려 의아 했었다.
그의 태도는 이쪽정서를 가진것을 별로 부끄럽다거나 거북살스럽게 느끼지 않았다는 반증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흔히들 그랬듯이,
우리도 잠깐동안 익명에 의존해, 남모르게 감춰진 거추장스런 속내를 해소하는 짧은 소통이 있었을뿐
젊은날에 속살로서 인간관계를 이어갈 여건은 서로 만들지 않았었다.
그리고 시나브로 잊어버렸는데
어느새 20 여년이 흐른뒤에 이렇게 신문지상을 통해서 옛사람의 요즘 근황을 접하게 되니
우리 사람살이속에 시간의 허망함이 새삼 감지된다.

만일 그와도 일반적인 인간관계속에서 만났던사이 였더라면  서로의소식을 궁굼해 했을것이고
흔쾌히 사소한 연락과 정감을 주고 받을수도 있었겠지만
이 커뮤니티에서 스친사람들 사이엔, 각자의 다른생활과 심정적인 간격도 엄연하게 존재하고 또 필요 한것인 만큼
오히려 그점을 긍정적인 방향으로서 서로 지켜줘야 하는 현실을 우선  받아들이게 된다.

일반세상과는 달리,
이 커뮤니티 안에서의 지난날과 사람간의 접촉들은, 은밀한채 정말 하잖고 아무것도 아니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어떤 무언의 합의 같은게 존재한다.
그런사이가 어쩌다 우연히  다시 마주치게 되는 상황이 온다 해봤자
서로 멋적어서, 그저 씨~익 한번 웃으며 지날수는 있을지언정,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으려는지  애매하기만 할뿐이다.

그런만큼 지금 신문을 보면서  불현듯 떠오른것도 그 기사속의 인물에게 어떤 의미가 담길 까닭이 있는게 아니다.
과연 내게 그런적이 있었던듯.. 없었던듯.....지나가 버린  20 여년전의 몇가지 장면과
다만 그속에서 청신한 마음으로 살고자 했던, 한 젊음의 몸저리게 스산한 시절을 담담히 되새겨 보는것뿐이다
순정한 정신과는 달리  
늘 대책없이 따로놀던 그 터질듯한 젊은속내가  끝내 수치스럽고, 그런 내게 스스로 화가나면서도 꾸욱 억누루면서
통과의례 처럼 이 커뮤니티 근처를 가만히 고개 숙인채 지나가던........
언제나 서툴렀으되 결코 자존감을 잃지 않았던, 한 우울한 청춘의모습을  아릿하게 그려 보는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관점이 어디에 있든간에
우리가 보통사람이었다면 결코 몰랐을 속내를 드러내고 함께 나누었던 젊은한때,
그 짧은 두어가지 기억속의 한사람이
지금은 일반가정을 꾸려가며 성실한 직업인 으로서의 성취와, 사회적 이목을 받을만큼 부지런히 살고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남몰래 반가운일이고
그의생활이 행복할것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참으로 고마운것이 아닐수 없는 심정이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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