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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진 2004-06-30 04:02:52
+0 571
"같은 의무에 같은 권리를 달라!"
[독일 현지보고] 수십만 운집한 베를린 동성애자 축제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정대성(sunofmoon) 기자
▲ 화려한 복장의 한 동성애자
ⓒ2004 정대성
독일의 심장 베를린은 여름이면 각종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다.세계에서 가장 큰 '춤의 축제' 가운데 하나인 '러브 퍼레이드'의 장관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올해는 아쉽게도 재정부족으로 그 젊음의 축제는 열리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26일) 그에 못지 않은 볼거리를 선사하는 '동성애자 퍼레이드'(Christopher-Street-Day-Demo)가 열려 유럽의 중심에 자리한 베를린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수십만 명이 함께 한 베를린 최고의 이 '여름 축제'는 볼거리 외에도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행사다.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라는 이름은 1969년 뉴욕의 크리스토퍼 거리에서 진행된 경찰의 동성애자 일제단속에 대한 최초의 동성애자 항의와 시위를 기념해서 따온 것이다. 독일에서는 1979년에 몇 백명의 동성애자들이 차가운 시선 속에 최초로 베를린 거리에 나서 외로운 저항을 시작한 것이 첫 걸음이었다.

▲ 각종 북을 두드리며 행진하는 형형색색의 동성애자들
ⓒ2004 정대성
해를 거듭하면서 이 '시위'는 점차 '동성애자들의 축제'가 되어갔다. 처음의 차갑고 따가운 시선을 넘어 '자연을 거슬린' 그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들에 대한 관용의 폭이 넓어지면서 사회적 인식도 변해갔던 것이다.

올해로 26회를 맞는 '동성애자 퍼레이드'는 지난 토요일 정오에 베를린 시장의 축사로 시작되었다. 50여 대의 차량을 앞세우고 세계 곳곳에서 온 동성애자들과 참가자들의 축제 행렬이 이어진다. 넓은 간선도로를 따라 차량에서 틀어대는 음악 소리에 맞춰 어울리고 춤추며 그 긴 행렬은 베를린 중심가로 천천히 나아갔다.

형형색색의 복장을 한 동성애자들을 비롯해 길가에 늘어선 수많은 구경꾼과 관광객들은 어느새 하나가 되어 축제에 동참하고, 건물들에서는 시민들이 창문을 열어젖히거나 발코니에 나와 축제행렬을 즐기고 있었다.

▲ 베를린 번화가인 '포츠담 광장'을 지나는 퍼레이드 행렬
ⓒ2004 정대성
하지만 이 행사는 단순한 축제만은 아니었다. 명칭 끝에 '데모'(Demo)라는 말이 붙어 있듯이 그것은 요구와 구호를 외치는 '시위'이기도 하다. 퍼레이드 차량들에는 동성애자들의 주장과 요구를 담은 각종 플래카드나 현수막이 걸려 있어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분명히 알리고 있다.

경찰 동성애자 차량, 베를린 교통공단 동성애자 차량, 자유당 동성애자 차량, 기독교 동성애자 차량, 그리고 록 그룹 동성애자 차량까지 각각의 퍼레이드 차량들 자체가 동성애가 다름 아닌 우리 주위 어디서나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방식의 하나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 '팔레스타인에서 박해받는 형제자매들과의 연대'라는 플래카드를 든 동성애자들
ⓒ2004 정대성
또한 '팔레스타인에서 박해받는 형제 자매들과의 연대'라는 플래카드가 보여주듯 이들 소수자들은 다른 소수자들이나 박해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려고 한다. 그런 소수자들의 연대만이 '소수자 권리 찾기'의 중요한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독일 정부에 대고도 분명한 목소리를 낸다. '슈뢰더 수상, 우리에게 같은 의무에 대한 같은 권리를 주시오'라고. 이는 그들이 사회 속에서 같은 의무를 지지만 아직 같은 권리를 얻지 못했다는 일종의 주장이자 요구이다.

경찰 동성애자 차량에 걸린 현수막은 '수용을 위한 푸른 신호등을. 관용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관용의 분위기'가 조금씩 확대되고 있지만 관용으로는 그들의 권리를 온전히 찾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관용을 넘어 사회 속에서 다른 성원들과 '똑같이' 받아들여지길 원하고 있다.

▲ 수상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얼굴과 동성애자들의 요구가 담긴 차량 현수막. '게르하르트, 우리에게 주시오: 같은 의무에 대한 같은 권리를!'
ⓒ2004 정대성
나아가 그들은 동성애자 커플의 '완전한 자녀 입양권'도 분명히 요구하고, 동성애자 커플의 지위에 대한 법률적 보완 문제에서 삐딱한 태도를 취하는 보수 야당인 기민기사연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잊지 않았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퍼레이드 차량 행렬과 참가자들은 저녁 6시 무렵 베를린 한가운데에 위치한 '승전 기념탑'으로 차례차례 모여들었다. 기념탑 앞에서 종결 집회가 있었다. 퍼레이드 차량을 타고 처음부터 끝까지 행사에 참가한 베를린 시장 보베라이트가 연단에 올랐다.

그는 역설했다. '동성애자 퍼레이드는 무엇보다 동등한 권리와 관용을 위한 사회 정치적인 시위이고, 학교와 직장, 사회와 가정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이 존재한다.' 이는 동성애자들이 왜 '시위'하고 있는 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 '승전 기념탑' 앞에서의 종결 집회. 베를린 시장 보베라이트가 연설하고 있다. 그는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2004 정대성
종결 집회를 끝으로 공식행사는 끝났지만 동성애자들의 권리 찾기 노력처럼 축제의 열기도 밤늦도록 좀체 사그라들지 않았다.

독일에서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조그만 무지개 색 깃발이 걸려 있는 집들을 간간이 볼 수 있다. '무지개'는 동성애자들의 상징이다. 여섯 빛깔 무지개 색은 다름 아닌 다양성을 의미한다. 삶은 다양한 것이고, 그 다양성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베를린 시장은 동성애자다. 그는 3년 전에 동성애자임을 당당히 밝히고도 시장이 되었다. 동성애자가 시장이 될 수 있는 사회,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서 평등한 것이기에.

▲ 베를린의 상징물인 '브란덴부르크 문' 앞을 지나는 동성애자 행렬
ⓒ2004 정대성
베를린의 동성애자 퍼레이드는 러브 퍼레이드 및 세계 문화 행렬과 더불어 베를린의 3대 퍼레이드에 속한다. 하지만 '가슴을 풀어헤치고' 사랑을 노래하는 러브 퍼레이드보다 '가슴속에 묻은 아픔을 풀어내고' 동등과 관용을 요구하는 동성애자들의 목소리에 더 귀가 기울여진다.

육체의 해방보다 삶의 조건의 해방이 더 인간적인 것으로 보여지는 때문일까.

▲ 타이 동성애자들
ⓒ2004 정대성

▲ 한 차량 위의 모습. 동성애자들이 자유롭게 춤추고 있다
ⓒ2004 정대성

2004/06/28 오전 4:38
ⓒ 2004 OhmyNews

"같은 의무에 같은 권리를 달라" ....너무나 멋진 구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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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