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사입니다.
며느리가 남자면, 사위가 여자면 안되는 걸까 | |
SBS 시청거부운동 광고를 보고 | |
허재현 기자 | |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의 반문화적 광고
최근 보수 일간지에 나오고 있는 광고입니다.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이란 단체에서 연일 조선,중앙 등에 광고를 하고 있는데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단체인데 좀 재력이 되는 단체인가 봅니다.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좀 당황스럽습니다. 동성애자들이 불편하게 보일 순 있어도 우리 사회의 합리적 영역에서 더 이상 토론의 대상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 며느리가 장애인이라니 웬 말이냐!’ 뭐 이런 광고처럼 느껴진달까요. 물론, 동성애에 대한 이해 수준이 사람마다 다 같을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건 몰상식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런 비상식적인 내용의 광고가 버젓이 유력 일간지에 실린 다는 게 전 좀 문화적 당혹감마저 느낍니다. 나와 다르게 산다고 해서 무작정 비난하는 반문화적인 행위로 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십니까.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편견 일단 이 광고가 독자들에게 던진 질문에 답변을 좀 해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동성애는 에이즈를 확산시킬까요.
에이즈는 HIV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사람과 성관계를 할 때 걸리는 병입니다. 즉, HIV 바이러스를 갖고 있지 않은 동성애자들끼리는 백만번 성관계를 해도 에이즈에 안 걸립니다. 동성애 자체가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1980년대에 잘못 퍼뜨려진 편견입니다. 둘째. 남자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이건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남성 동성애자나 여성 동성애자 부부가 입양해 기른 아이는 커갈 수록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워야 할 겁니다. 그런 면에서 그 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해 불행할 확률이 크겠지요. 하지만 확실한 건 ‘남자 엄마’, ‘여자 아빠’ 자체 때문에 아이들이 불행한 건 아닐 겁니다. 우리 엄마와 아빠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겠지요.동성애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로 이런 단체 때문에 아이가 힘들어지는 것이지 동성애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아이들을 정말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이런 광고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남들과는 다른 부모를 갖는 게 아이의 불행 요소가 되어선 안됩니다.
이 광고는 우리 나라의 출산율이 1.22%에 불과해 동성결혼이 만연하면 출산율도 떨어트리고 경제는 몰락하게 될 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한번 봅시다. 캐나다,덴마크,독일,프랑스,벨기에,스웨덴,네덜란드 등이 동성 결혼 허용국가입니다. 이들 국가들의 출산율을 살펴봤는데 대부분 우리나라보다 높습니다. 캐나다 10.28(166위) 벨기에 10.15(167위) 프랑스 12.57(144위) 출산율 증감과 동성 결혼 허용과는 사실상 연관관계가 아예 없거나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동성 결혼을 막을 게 아니라, 아이들을 잘 보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훨씬 더 시급할 겁니다. 어쩌면 동성 결혼을 한 분들이 입양을 많이 한다면 부모를 만나지 못한 채 외롭게 고아원에 남겨진 아이들이 더욱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국가 경쟁력은 높아질 겁니다. 넷째. 청소년들이 동성애 분위기에 휩쓸리면 동성애자로 변할까요. 이건 완전히 틀린 말입니다. 이 단체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조사라도 해보았는 지 묻고 싶습니다. 동성애자 청소년들에게 물어보면 대답은 금방 나옵니다. 동성애적 성향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은 원래부터 이성애자였다가 동성애적 성향으로 전염되는 게 아닙니다.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불분명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자신의 성정체성을 제대로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때 국가와 학교가 청소년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잘 찾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성애를 선택하든 동성애를 선택하든 어떤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며, 세상에는 다양한 성애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청소년들은 혼란을 겪지 않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자연스레 찾아갈 겁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분명 시행착오를 겪는 청소년들이 있을 겁니다. ‘동성애자 청소년’이 이성애자로 착각하거나 ‘이성애자 청소년’이 동성애자로 착각하는 일이 없도록 선생님들이 어떤 편견을 갖지 않고 학생들을 잘 지도해줘야 할 겁니다. 2002년 영국 교육부는 동성애자 청소년 응답자의 29%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결과를 내놓은 적 있습니다. 숫자를 잘 보십시오. 29% 입니다. 다섯명중 한명입니다. 엄청난 숫자이지요. 성적 지향 때문에 주위로부터 놀림이나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에 이런 겁니다. 청소년들에게 어떤 성교육이 필요 한 지 이 결과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며느리가 남자이면, 사위가 여자면 안되는걸까 동성애허용법안반대연합이란 단체가 내고 있는 광고는 ‘며느리가 남자이면 안된다’며 자극적인 구호로 동성애자에 대한 낯설음을 극도로 자극하고 있는 듯 합니다.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주어 동성애자들을 타자화시키려는 의도지요. 전 오히려 이런 생각까지 해봅니다. “정말 며느리가 남자이면 안되는 걸까?” 내가 사랑하는 자식이 선택했다며 데리고 온 배우자의 가정이 좀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이를 이상하게 볼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처음엔 낯설고 당황스럽겠지만 말입니다. 내 여자친구에게 두 명의 엄마가 있다면? 이 광고를 보면서 예전에 본 <가족의 탄생>(2006년.김태용 감독)이란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채현(정유미)에게는 어찌어찌 하다보니 엄마만 두명 (문소리, 고두심)인 가정에서 자라게 됩니다. 어느 날 남자친구인 경석(봉태규)를 집으로 데려옵니다. 엄마 둘은 김장을 담그고 있습니다. 채현은 해맑은 미소로 두 명의 엄마에게 각각 ‘엄마’라고 부르며 말을 겁니다. 이 모습을 또 아무렇지 않게 남자친구인 경석이 바라봅니다. 두 명의 장모, 혹은 두 명의 장인어른에게 살갑게 다가가 말을 겁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꼭 남자와 여자로 구성된 부모를 갖지 않은 가정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구나’ 느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훌륭하게 길러준 사람들이라면 그게 여자 둘이건, 남자 둘이건 무슨 상관일까 생각했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식이 동성애자 애인을 데려온다고 해서 꼭 나쁘게만 볼 건 아닙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아름다울 권리 ‘인생은 아름다워’란 드라마를 응원합니다. 우리 가족 중에도 동성애자가 있을 수 있다는 걸 한번쯤이라도 생각해보게 만들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혹은 내 형제가 내 조카가 동성애자일 수 있다는 것을, ‘누구의 인생이든 아름다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서 고맙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24387.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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