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히는 리투아니아. 지난 주 토요일(8일) 리투아니아에는 이전에 없던 행사가 최초로 열렸다.
어떤 이들은 이 최초의 행사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차원에서 보면 이 행사는 정말 처참한 결과로 막을 내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행사에 동참하는 이들은 불과 몇 백명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규모이지만, 그 규모에 비해서 사회에 퍼뜨리는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규모에 비해서 대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
이 행사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관점과 의견들은, 그 행사를 주관한 사람들 자신이 겪고 있는 사회적 편견과 생각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변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바로 리투아니아 사상 최초로 열린 동성애자들의 행진이었다.
리투아니아 사상 최초로 열린 동성애자들의 행진
|
▲ 동성애자 행사 반대피켓을 든 가족이 행사장에 들어가려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
ⓒ 서진석 |
| |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의 동성애자들이 주축히 되어 만든 '발틱 프라이드'가 5일부터 8일까지 동성애자들의 인권문제와 현실을 알리기 위한 축제를 개최했고, 마지막날인 8일에는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을 만한 참가자들의 행진이 예상되어있었다.
발틱 프라이드는 리투아니아에서의 행사를 벌써 몇 년째 꾸준히 준비해오고 있었지만, 가톨릭의 전통이 유독 강해 보수적인 리투아니아의 사회적 특성상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물론 동성애자들의 인권과 관련된 행사가 전혀 열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시민들 앞에서 당당하게 행진을 하는 행사는 전무했다. 행사가 열리게 될 빌뉴스 시 당국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단 한 번도 그들의 행사를 허가해주지 않은 것이다.
행사 불허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2005년 이웃나라 라트비아에서 열렸던 1회 동성애자 축제가 시민들의 심한 반발과 폭력으로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는 등 커다란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 전적이 있고, 리투아니아의 상황으로 볼 때 행사를 허가할 경우 그러한 불상사가 재연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몇몇 라트비아 정치인들은 행사의 실패 이후에도 동성애자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끝내 헌법에 동성애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조항을 추가해 외국 언론으로부터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나라로 낙인찍혀야 했다. 라트비아에서의 사태가 리투아니아에 알려지면서, 이곳의 보수단체들은 계획되지도 않은 리투아니아 내 동성애자들의 행사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할 정도로 사회적인 우려가 확산되었다.
올해에도 여전히 리투아니아 동성애자들이 거리를 행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지극히 미미해 보였다. 행사 바로 이틀 전까지만 해도 관계당국에서 그들의 행사에 허가를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전날인 5월 7일 빌뉴스 당국이 그들에게 극적으로 행사 허가를 내어주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리투아니아 사상 최초의 동성애자 퍼레이드를 추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일단 부여받았다. 과연 그 행사는 어떻게 진행이 될 것인가. 과연 라트비아의 전철을 밟지 않고 평화적으로 행사를 마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기대를 가지고 나는 5월 8일 행사장을 직접 찾았다.
참가자는 수백 명, 반대 시위대는 수천 명
|
▲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참가자들. 어림 잡아 수십 명에 불과할 정도로 규모는 작았다. 리투아니아 뿐만이 아니라 스웨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폴란드 등 다양한 지역에서 왔다. |
ⓒ 서진석 |
| |
행사가 열리기로 한 곳은 빌뉴스 강변의 한 호텔 근처 잔디밭이었다. 행사 시작 시간인 낮 12시가 불과 15분 남았으나 행사장엔 대략 수십 명 정도만 모여있을 뿐이다.
행사장 1km 반경 내에는 경찰들의 경비가 삼엄했다. 당국에서 행사를 허가해주었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미 경찰들은 곳곳에 배치되어 정식으로 등록된 행사 관계자가 아니면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취재진이나 행사 참가자들은 이미 몇 주전부터 참가 등록을 통해서 참가허가증을 부여받았다.
참가허가증을 부여받지 못한 나는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들의 행사를 저지하기 위한 반대시위대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행진이 예상되어있는 경로 전체에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행사장으로 진입하는 큰 길은 바리케이드와 경찰 저지선으로 차단되어 더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행사가 시작될 무렵 이미 참가자들보다 몇 배는 많은 이들이 그곳에 모여 행사 반대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경찰 추산에 의하면 대략 1500명이 모였다.
물론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이 전부 같은 생각으로 모인 것은 아니었다. 군중들 사이에서 만난 한 여성은 "자신은 개인적으로 동성애자들의 행사를 지지하며, 리투아니아에서 그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없는 것은 시민들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동성애자들은 이곳에 나와서 자랑할 이유가 없다"
여러 가지 구호가 담긴 피켓을 든 시민들은 수도 없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중엔 현직 국회의원들도 있었다.
행사 시작시간이 되자 버스 몇 대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행사장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행사 조직위원회에서 마련한 차량으로 미리 행사 허락을 받은 참가자들을 실어오는 차량이었다. 그리하여 참가자들의 수는 전부 300명으로 늘어났으나, 넓은 강변 잔디밭에 모인 그들은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작은 규모였다.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서 찾아온 각국의 기자들과 경찰의 수가 행사 참가자들보다 더 많아 보였다 .
30분 여가 지나자 반대시위 참가자들이 춤을 추면서 구호를 외치는 등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동성애자들의 행진을 허가해준 정부는 물론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담긴 구호도 터져나왔다.
"당신들은 여기서 자랑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동성애 혐오자가 아니다. 그냥 당신들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모인 곳에는 에이즈가 창궐한다."
이런 다양한 문구들이 적힌 피켓을 든 시민들은 경찰들의 바로 코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가한 이들 중에는 라트비아어로 적힌 피켓을 든 이도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조금 후 빌뉴스 대성당에서 미사를 마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곳에 합세했다. 십자가를 앞세운 이들은 행진 참가자들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비판하거나 욕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기도문을 외우면서 그들만의 시위를 이어갔다. 그들의 십자가 행진은 얼마 못 가 끝이 났지만, 많은 이들이 그 자리에 남아 반대시위에 합세했다.
|
▲ 가톨릭 대표들이 미사를 마치고 참가해서 기도문을 외우고 있다. 동성애자들의 행사를 반대하기 위해 모였다. |
ⓒ 서진석 |
| |
|
▲ 반대시위에는 정부 대표들의 참여도 빠지지 않았다. 경찰의 호위는 세금낭비라고 외치고 있다. |
ⓒ 서진석 |
| |
"이런 행사에 경찰 동원할 돈 있으면 사회 위해서 써라!"
시민들은 경찰들에게 "왜 동성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 많은 세금을 써야하느냐, 차라리 그 돈은 사회활동을 위해 써라"며 외쳤다. 한 시민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 스웨덴은 이미 가족에 대한 진정한 의미가 붕괴되어가고 있다며 열을 올렸다.
이윽고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되었으나 그들은 잔디밭에서만 맴돌 뿐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그러자 반대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그들에게 "겁쟁이!"라고 외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반대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의 행동이 더욱 격렬해지고 경찰 자체에 대한 비판과 야유가 높아지면서 연막탄이 터지는 등 대치는 더욱 극적으로 치달았다.
보수 국회의원을 포함한 시민들의 야유와 비판이 거세지자 경찰들은 선동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카메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련 때도 경찰이 시위대들을 촬영까지 하면서 막는 일은 없었고, 국가원수가 방문할 때보다 더 많은 경찰력이 동성애자들을 수호하기 위해 모였다며 울분을 토했다.
끝내 흥분한 시민들은 경찰 쳐놓은 저지선을 자르고 경찰 코앞으로 우르르 몰려나가기 시작했다. 경찰은 철제 바리케이드에 전기충격기까지 설치하며 흥분한 시민들의 폭력을 막아보려 했으나 약 두 시간 후 바리케이드마저 뚫리면서 경찰들의 강경진압이 시작되었고, 결과 동성애자들의 행진에 허가를 내어준 정부와 빌뉴스 당국에 대해서 심한 비판을 쏟아냈던 국회의원 두 명은 연행되기에 이르렀다.
연행 중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던 국회의원 한 명이 누군가 던진 오물을 뒤집어쓰는 모습이 그대로 카메라에 잡혀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 바리케이드를 넘어서까지 행진의 무리에 다가가려 했던 이들의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특히 맨 처음 저지선을 넘어 경찰에게 다가간 시민은 극도의 흥분상태를 보이기도 했다.
|
▲ 시민들이 난동을 부리며 경찰 저지선을 넘자 철제 바리케이드에 전기충격기를 설치하고 있는 경찰관들. |
ⓒ 서진석 |
| |
|
▲ 동성애자들의 행진은 철제 바리케이드 안에서만 진행되었을 뿐 시가지로는 한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었다. |
ⓒ 서진석 |
| |
시민들과 전혀 접촉하지 못한 행진, 과연 성공한 행사?
시민들의 반응을 직감하고 행진 참가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접촉을 경찰이 원천봉쇄한 탓인지 2005년 라트비아에서 있었던 무력충돌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참석한 동성애자들은 시내에 발조차 들이지 못하고 강변에서 약 200미터 정도를 행진하는 것으로 행사를 마감해야했다.
행사가 끝나자 발틱 프라이드의 홈페이지와 리투아니아 동성애자협회 및 다른 언론들은 리투아니아 최초의 동성애자 행진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행진 행렬은 경찰들이 세워놓은 바리케이드 뒤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일어난 해프닝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단 리투아니아의 인권 향상과 열린 사회로의 진입을 위한 첫 발걸음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지만, 아직 여러 시민들은 그들의 행진에 불편한 시각을 감추지 않는다.
특히 이번은 전 세계를 경악시켰던 드라슈스 케디스 사건(딸 아이를 성추행한 판사를 직접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가, 사건 몇 달 후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상황이라, 시민들 사이에 일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런 행사를 용인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많이 일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번의 행사가,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많이 대중화된, 반나체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카니발 식의 축제가 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시민들의 우려를 고려한 탓인지, 발틱 프라이드 행진 참가자들은 질서정연하고 정돈된 자세로 행사를 진행해 나갔다. 자신의 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는 등 리투아니아 정서에 맞지 않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실패든 성공이든, 이 행사는 리투아니아 동성애자들의 사회 활동에 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간 접촉이 더욱 더 늘어나게 될 것은 명확하다.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된 낯선 이들과의 조우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