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성격도 급한 형이었다
소주도
맥주도
담배도
일도
욕도
후딱후딱 해치워야 성미가 풀렸다
그렇게도
술을 좋아했다
좋아서 마시는지
마시니까 좋아졌는지
어쨌든 술이 곧 형이요
형이 곧 술이곤 했다
담배도
무척 좋아했다
그는 던힐 라이트여야 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담배 불을 붙여 놓아준다
그를 처음 본 건
프렌즈에서였다
평일에도 세네번씩 와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
서너시간 자고
가게 장사를 시작했다
왜그렇게
술을 마시냐고
물었더니
인생의 낙이 없다 했다
보다못한 프렌즈 사장엉아는
그를 친구사이에 데리고 나갔다
그는 수영모임을 나갔고
지보이스를 나갔고
술친구가 생겼으며
공연무대에도 올라 사람들을 뒤집어놓았다
언제나 사람들을 웃게 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사람들을 재밌게 하는 사람이었다
자그만 스파게티집의 사장이었던 형은
친구랑 놀러가면
스파게티 두개만 시켰는데
샐러드에
마늘빵에
치즈스틱에
사이다에
맥주를
한상 가득 갖다주곤 했다
스파게티집을 나오면
언제나 배가 든든했다
뇌수막염이라 했다
결핵균에 의한 뇌수막염이라 했다
그는 독한 감기인 줄 알고
찾아간 병원이었다
주사 한방 맞으면 낫겠지 하며
찾아간 병원이었다
그게 겨우 9월달이었다
그가 몸담고 있던
지보이스에서
생전에 그가 좋아하던 노래라며
그에게
"금관의 예수"를 보낸다
그가 누운 오른편
가장 가까이에
지보이스에서 보낸 화환이 있었다
그래도
든든하겠지...
그의 고향 경북 영주 친구가 말했다
욕쟁이 막내아들이었다고
누나들 욕도 잘 하고
누구 욕도 잘 하는...
이 모든 게
이 모든 게
꿈이면 얼마나 좋겠냐고
가는 건
좀 천천히 가지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서른여섯이었다
생전 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틀었다
지보이스 공연 연습 동영상 속의 그를 보며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그를 추억한다
그가
좋아했던
"벽장 문을 열고"가
흐르자
왈칵 눈물을 쏟는다
그의 오랜 고향친구들과
그의 새로운 게이친구들과
그의 가족들이
그렇게 한자리에 모여있다
그의 오랜 고향친구들은
그의 새로운 게이친구들에게
그의 최근 새로운 모습들을 듣는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생전 행복했던 모습을 보며
마냥 눈물을 흘린다
함께 어울리며 그를 회상한다
작년 여름 남편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그의 어머니는
그의 영정사진 앞에서
섧게 목을 놓아 우셨다
발인이 가까워
막내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어머니를
그의 새로운 게이친구들과
그의 오랜 고향친구들이 부축한다
<여기 들어간 사진은 갤러리에 있습니다>
그는 커밍아웃 다큐의
주인공 중 한명이었다
첫번째 편집본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갑자기 가버렸다
다큐의 감독님은
카메라를 잡는다
울음이 복받쳐
몸이 들썩거리고
카메라가 흔들리고
눈시울이 붉어져도
카메라를 잡는다
다큐감독에게
카메라란
그런 것이다
그의 오랜 고향친구들은
관을 옮기는 걸
그의 새로운 게이친구들에게
양보했다
정말
이제
그가
떠난다
보내줘야하는데
마지막인데
이 아이
발이 땅에 붙어버렸다
그래도
그를 실은 차는 떠났고
해는 뜨고
아침이 왔고
날이 밝았다
그가
웃음이
아주 많아졌었단 걸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과
정말 편하게 지내는 모습이었단 걸
기억하고 있다
그의 마지막에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함께 있었다
안녕
형아
2009년 11월 24일
영수형 가던 날
올림푸스 PEN
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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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웃을게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형_
제 기억속에 있으니까 언제라도 형 얼굴 떠올리면서 추억 하도록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