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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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이 얼마 남지 않은 올 해의 마지막 겨울, 서울 용산경찰서에 위치한 본인의 숙영지에서 야간 근무를 서며 중대한 결심을 하고 이 글을 남깁니다.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수십만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동성애 포털 사이트 이반시티(www.ivancity.com)에서 ‘엘라스틴’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며 매일 수십명씩을 모아 단체미팅을 주도하는 모임장을 하기도 하고, 같은 동성애자 친구인 ‘닉스’ 군과 함께 ‘청소년 성 소수자 누리터’라는 청소년 동성애자 누리꾼 모임의 운영을 맡기도 하며 종로와 이태원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이반이기도 합니다.

저는 스스로 동성애가 질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스로 동성애라는 문제에 대해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스스로 동성애자이면서도, 남들이 알게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이렇게 중대한 결심을 하고 이 글을 작성하고 이 순간에도 저의 가족들이 혹시라도 알게 될까 두렵습니다. 저는 제 가족이나 친척들이 저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음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그리고 본인이 공개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실을 타인에게 알리게 되는 행위를 뜻하는 아웃팅은 커밍아웃과는 달리 해당 사람에 대한 호모포비아(동성애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구타, 가혹행위, 성폭행, 집단 따돌림 등의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범죄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원치 않는 경로로 부모님이나 제 가족들에게 직접 저의 성 정체성을 밝힌다면 아웃팅 범죄행위로 보고 엄중히 대처할 것을 미리 밝히며 글을 잇습니다.

전의경 부대에서의 아웃팅, 그리고 커밍아웃

저는 최근 부대내에서 이 같은 아웃팅을 당했습니다. 이 같은 아웃팅 인하여 더 이상 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길 수도,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막다른 곳으로 몰린 상황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정식으로 형사고발을 해서 아웃팅에 대해서 치고 박고 한번 싸워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아니면 끝까지 저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아니다’ 라고 부정할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처럼 앞으로 제가 부대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정하고 어떻게 행동과 방향을 설정할지에 대해서 갈피를 못잡고 있을 때 민석이형이 생각이 나더군요.

민석이형은 현재 감옥에 있습니다. 오늘(29일) 오랜만에 붉은이반 커뮤니티를 들어가보니 민석이형의 자필편지가 있더군요. 제 이름이 편지내용에 없다는 것이 조금 섭섭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반가웠습니다. 제가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군에 입대한 후 가장 최근 몇 개월 전까지 연락을 하고 지낸 민주노동당에서 알게 된 성 소수자 중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반가웠던 것 같습니다. 사실, 민석이형이 부러웠습니다. 민석이형이 감옥에 가게 된 계기는 바로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 때문이었지요. 지난해 3월,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히며 기자들을 모아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한 유정민석형. 저는 민석이형이 부럽더군요. 민석이형의 ‘양심적 병역 거부’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모두가 보고 있는 가운데서 또 모두가 듣는 가운데서 당당하게 자신을 ‘동성애자’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제가 동성애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두려웠습니다. 특히, 가족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20년 평생을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들에게 알려진다면 가족들이 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언제나 두려웠습니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제 성 정체성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탈반(이반에서 탈출한다는 의미)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꾸지 못했습니다. 탈반이라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목소리를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꿀수 있겠습니까? 외모를 어떻게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런것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성격이나 정체성을 어떻게 하루 아침에 바꾸겠습니까? 그렇게 저는 탈반을 포기했지만 가족들에게 제 성 정체성이 알려지는 것 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 전에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이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밖에 볼 일이 있어 나가던 중 컴퓨터를 켜두고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컴퓨터에서 이반 친구들과의 대화를 보았는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더러워”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전 단지 저와 같은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얼마후 동생은 가족들에게 제 성 정체성을 폭로했습니다. ‘너 게이냐?’ 라고 물어보는 몇몇 가족들의 질문에 ‘아닙니다’ 라고 부정했습니다. ‘인터넷신문 기자 활동을 하면서 성 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아 취재하는 차원이었다’ 라며 변명했습니다. 그렇게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당시 동생의 한 마디는 저에게 있어서 충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누군가가 물어보면 일단 부정하는 버릇부터 생겼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까요? 제가 공개적으로 활동한 바 있었던 민주노동당 청소년 위원회에서 주최한 정치캠프에서 준비위원으로 활동하던 친구들이 제 실명을 거론하며 동성애자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소식을 아는 사람한테 들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고 할까요? 누구보다도 인권의식이 투철하다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한다는 사실, 아니 그 보다는 남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던 저의 성 정체성에 대해뒷담화를 했다는 사실이 저를 발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당원 게시판에서 공개사과를 요구했죠. 남 모 당원이 제게 했던 말이 기억합니다. “그래요, 우리가 그런 말은 했어요, 그건 우리가 잘못한 게 맞아요.그런데 당신 동성애자 맞자나요? 아니예요? 왜 거짓말을 해요?” 라고 말하던 남 모 당원, 그 한 마디에 저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결국 또 거짓말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라고, 난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냐며 남 모 당원에게 인권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함부로 해도 되냐고...

저는 그렇게 거짓말쟁이가 되었습니다. 사실 부대 내에서 저는 성 정체성을 부대원들에게 밝힐 생각이 없었습니다.저는 제가 사용하는 컴퓨터 내에 제가 만든 자료 및 필요한 자료를 모아둔 폴더 깊숙한 곳에 소중한 일기를 저장해두었습니다. 저는 스트레스를 글로 푸는 법입니다. 그날 생각한 이야기, 그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글로 써두는 편이지오. 그러한 글들 중 하나를 우연히 제 동기녀석이 보게되었나 봅니다. 제 동기녀석은 그걸 처음에 말해야 될지 말을 하지 않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 고참 대원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순간 퍼져서 전 중대원들이 다 알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그 소리를 들은 대원들에게 있어서 저는 ‘놀림감’으로 전락했고, 어떤 대원은 직접 와서 저에게 물어보기까지 하더군요. 저는 ‘아닙니다’ 또는 ‘소설입니다’ 라고 다시 한번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이 제 자신을 부정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이 들더군요. 그래서 누군가가 다시 질문했을 때 ‘네, 그렇습니다’ 라고 답변을 해버렸습니다.

아웃팅 이전에는 그런대로 잘 지내왔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저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묻지 않았고, 저도 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앞서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민석이형이 부럽다고 했지만 그것은 동성애자라고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하던 민석이형의 용기이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부러워 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 스스로 군대는 가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군에 자원입대했고, 군에서 스스로 행정업무, 특히 홍보하는 업무를 맡고 싶어 중대장님 및 지휘요원 분들게 말씀을 드리고서 지금의 이 자리에서 기동경찰지 및 중대소식지를 발행하여 중대를 홍보하는 역할에 나름대로 만족한 부대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구타도 없었고, 가혹행위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경으로 왔지만 시설중대로 배치받았기에 진압훈련에 나가 예전의 동료들과 만날 일도 없었고, 무사고 달성중대로 이름을 드높여 특별외박 및 정기외박을 자주 나가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웃팅을 당한 이후에는 달라졌습니다. 동기가 찾아와 ‘정신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더럽다’ 는 등 ‘징그럽다’고 하는 대원들도 있었습니다. 점호시간 청소가 끝나고 생활실에 들어가면서 한 쪽에 모여 내 이야기를 하면서 “진짜야?” , “진짜라니까?” 라면서 이야기 하는 대원들을 보면서 정말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어떤 대원은 저에게 몇 미터 앞으로 접근하지 말라고 하고, 어떤 대원은 말도 걸지 말라면서 혐오스럽게 저를 쳐다봅니다. 물론 이해를 해주는 대원들도 있었습니다. 같은 소대에서 근무하는 한 고참대원은 1층에서 몰래 상담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고참대원에게 부대에서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아웃팅이 되어 있는 마당에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 그 고참대원에게 만큼은 털어놓자는 마음에서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그렇게 상담을 해주던 고참대원이 말 한 한마디는 ‘일단 아니다’ 라고 대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옛날 같았으면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이미 숨길 수 없고,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더구나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것이 저를 더욱더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이렇게 어떻게 행동할지 갈피를 못잡은 상황에서 민석이형을 생각하게 되고, 붉은이반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보게 되었던 민석이형의 자필편지는 저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커밍아웃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민석이형의 용기가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글을 읽고 있는 데 민주노동당 성 소수자 위원회의 흐르는 물 아저씨의 쪽지가 날라 왔습니다.

정말 예전부터 무슨 일이 있으면 상담을 받고 싶은 분이었는데 잦은 해외출장과 군 입대로 이야기 하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흐르는물 아저씨는 민주노동당에 있을 때부터 제가 행동을 하는데 조언을 해주고, 도움을 주시던 분이었습니다. 물론 친구사이의 차돌바우씨나 이반은 아니지만 제가 유일하게 커밍아웃을 했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혁수’의 조언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흐르는 물 아저씨는 ‘커밍아웃을 한 이후에 어떻게 할 건데’ 라면서 커밍아웃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유했지만, 오히려 오랜만에 만난 흐르는 물 아저씨와 대화를 하면서 저는 ‘마음의 자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거짓말 하면서 살아오던 지난 인생을 반성하며

저는 지금까지 숨어서 혼자 동성애자 인권 운동을 해왔습니다. 청소년 인권, 학교폭력 근절, 청소년 정치참여, 그리고 각종 사회 현안에서는 공개적으로 제 이름 석자를 밝히면서 활동해왔지만 동성애자 문제에 대해서는 유난히 소극적으로 ‘엘라스틴’이라는 닉네임으로 저를 가리고 활동해왔습니다. 제 친구이며 동성애자 인권 활동가인 ‘닉스’에게 제안하여 청소년 성 소수자 누리터라는 모임을 만들고 함께 운영하기도 하고, 그곳에서 홍보담당을 맡기도 했지만 외부에는 ‘청소년 동성애자 친구들과 인연이 있어서 그들과의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고 말하며 숨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전의경 부대에 들어와서도 대원들을 위한 ‘인권 교육’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대원들 스스로가 차별이나 폭력에 대한 올바른 인권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행정반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했지만 역시 제 자신의 정체성이나 그런 것은 모두 숨겨왔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공개하지 않고 숨어서 하는 인권운동중에는 흐르는 물 아저씨나, 최현숙 위원장,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저와 다소 친분이 있던 분들에게는 정말로 미안했던 일이지만 제가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고건 전 국무총리를 지지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최현숙 성 소수자 위원장님께는 완전히 찍혀버렸지요.하하. 저랑 이야기도 하기 싫으시다고 화를 내시기까지 하셔서 더 이상 말씀을 못드렸습니다.그래도 흐르는 물 아저씨는 제가 왜 그랬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계시더군요. “집권할 가능성이 있는 정치세력에게도 성 소수자 또는 청소년들의 통로가 되는 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시더군요. 그러나 흐르는 물 아저씨도 “너 같은 경우는 처음에 민주노동당 입당하면서부터 청소년 문제 하나만 보고 입당했다고 했으니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원래 정당이란 건 그런게 아니란다” 라며 제게 그 일은 잘못한 일이었다고 말을 하시긴 하셨지만 말이예요. 하지만 저는 그 일에 대해서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제가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면서 저는 ‘민주노동당에서 더 이상 제가 할 일은 없다’고 말했던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실 일부 당원들이 보기에는 제가 그냥 민주노동당에서 ‘이름 좀 얻은 아류 정치지망생’ 정도로 보았겠지요. 그리고 당원 뿐 아니라 청소년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마찮가지 였을겁니다. 특히 대학을 가기 위해 시민사회단체에 추천을 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방송사나 신문사에서 당의 입장에 정리 되지 않게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했겠지요.

여기서 한 가지 사죄와 변명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대학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저희 집안은 매우 엄격한 집안입니다. 따라서 대학에 무조건 들어가라는 집안에 압박, 동시에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기에 반드시 대학은 가야했습니다. 당시에 저의 성적은 대학에 가기엔 미달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는 대학에 안가도 사회생활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부모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공회대학교에 좋은 교수님들이 많이 있다는 말도 있고 해서, 저는 진보누리 사이트에 공개적으로 추천을 해달라고 글을 올렸습니다. 대학에 가기위해 청소년 운동을 팔았다는 말이 나도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청소년 운동은 진심이었으며 민주노동당 대의원과 청소년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했던 모든 것들이 다 진심이었습니다.

아무튼 제가 민주노동당을 위와 같은 말을 하고 탈당한 배경은 민주노동당 당대회와 중앙위원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당원 게시판에서의 싸움으로 제가 지쳐있었기 때문입니다. 2005년 2월 각종 언론에서 ‘일진회 광란의 섹스파티, 신촌에서 1000여명 일락파티’ 등의 선정적인 기사를 연일 보도하고 있을 때, 전 적어도 민주노동당에서 한 마디라도 해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더군요.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에서 저에게 전화를 걸어 글을 한번 써보라고 했고, 저는 교사가 발표했다는 강의자료를 읽어보고 어떻게 이런 강의 자료가 기사로 쓸 수 있을 가치가 ?는지 의문이 들었고, 그에 대해 과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인터넷 포털에 수많은 악성 댓글이 달렸는데, 적어도 이 같은 내용에 문제를 제기할 줄 알았던 민주노동당 조차 국민의 지지에서 외면을 받을까 두려워서 ‘일진회 섹스파티와 같은 보도기사의 선정성은 문제가 있다’ 거나 ‘내용이 과장이 되었다’ 거나 적어도 ‘스쿨폴리스 확대 반대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매우 섭섭했습니다. 결국 책임을 지라고 해서 2005년 3월 민주노동당 청소년 위원회를 사퇴하고, 동년 6월에는 민주노동당 노원갑 지역위원회 중앙대의원을 사퇴하면서 동시에 탈당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정책은 지지한다. 그러나 내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당원이 아닌 자리에서 지지하겠다’는 말을 남기면서 말입니다. 명분은 다른 걸 내세웠지만 사실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동당 청위에 대한 섭섭함 때문이었습니다.

진보정당이라면서, 청소년을 위한 정당이라면서, 소수자를 위한 정당이라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나 ‘비정규직 철폐’ 등은 노동자나 통일 문제에 관련해서는 중요정책으로 모두가 신경을 쓰고 달려들면서 청소년 문제나 소수자 문제, 장애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인정’은 하지만 ‘지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결국은 알아서 해야 하는데 섭섭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청소년 문제와 성 소수자 문제를 위해 한 것은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을 빌려주고 당 대의원 대회에 부문 대의원으로 몇 명을 참석시켰다는 ‘상징성’ 뿐, 실제로는 활동가들이 열심히 인권운동을 해서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으로 갔다 준 것 밖에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요 회의때 회의록에 몇 글자 적어 놓는 것이 전부였던 민주노동당. 결국에는 성 소수자를 인정하는 정당이라는 상징성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정당. 매일 엔엘이니 피디니 하면서 싸움하고 이념논쟁에 가려 소수자를 위하는 정책들이 내부에서는 논의되기 힘들었던 정당.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솔직히 찍기 싫었습니다. 차라리 기호 8번 허경영을 찍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정책만큼은 활동가들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결국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게 투표하긴 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권영길이라는 후보는 지난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창원에서 여의도에 있는 중앙당까지 올라와 직접 자고 있는 상근자들에 이불을 덮어주는 등 모습을 보며 제게는 친근감 있는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념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민주노동당에게 투표하는 것을 마지막까지 망설였습니다. 이는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 저에게 무어라고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이제야 얻게 된 마음의 자유, 수백만의 이반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그날까지

우리 사회에는 이반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동기, 동창들 중에 알게된 이반 친구들만 20여명이 넘고, 현재 근무중인 4기동대 내에서도 제가 알고 있는 이반들의 숫자만 10여명이 넘습니다. 전의경으로 근무하는 친구들중 알고 있는 친구들은 그 배가 됩니다. 종로에서 단체 술모임을 진행해보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변호사로 일하는 사람, 경찰관으로 일하는 사람, 군인으로 일하는 사람, 무당, 연예인, 회사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제 모임을 거쳐 갔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사람을 사귀고 싶어서 모임을 만들었기에 이미 제가 알고 지내는 이반 친구들만 수천명이 넘습니다. 홍석천씨나 하리수씨 이외에도 인기가 있었던 모 방송국 성장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와 현재는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어 있는 연예인 모씨, 역시 모 방송국 개그프로그램에서 인기 개그맨으로 나오는 모 씨, 이제는 원로 개그맨이 된 모씨, 유명가수 모씨, 유명탤런트 모씨 등 연예인들을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그들중 일부는 제 모임에 참여한 일도 있었습니다. 확인 되지는 않았지만 모 국회의원이 동성애자라는 이야기는 이반 사회에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민주노동당 성 소수자 위원회에서 몇 년전 조사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성적 소수자(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 인구가 4800만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8.3% 인 최대 400여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한해 수능시험을 치루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65만~70만선인것을 감안해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숫자를 계산해보았을 때 나오는 360만~420만과 비슷한 수치입니다. 우리 주변을 지나다니는 중고등학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만약 이들 모두가 커밍아웃을 하고 거리로 나온다면 세상에서 과연 동성애자를 소수자로써 배척하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숫자가 많다고 해서 우리를 인정하라고 하는 것은 어거지지만, 나와 같은 이반들이 수천명, 수만명, 수백만명이라면 더 이상 성적 소수자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왕의 남자, 커피프린스 1호점 등 동성애 코드의 영화나 드라마들이 많아지고,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거부반응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일부 호모포비아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동성애는 질병이며 죄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라고 해서 ‘동성’이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도 이상형이 있습니다. 동성애자라고 해서 육체적 사랑만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우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제가 우정과 사랑을 구분 못할 정도의 나이는 지나지 않았습니까.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시 삼천포로 빠진 것 같지만, 이로써 저는 마음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당하게 군 생활을 마무리 할 것이며, 전의경 부대에서 동성애자로써 권리 찾기를 위한 힘겨운 싸움을 할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대원들을 이해시키려고 할 것이고, 설득할 것입니다. 아마 힘들겁니다. . 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웃팅을 당하고 나서 결정한 것이다 보니 혹시라도 이 같은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거짓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아직도 가족에게 알려지는 것 만큼은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제가 알던 동료들이 저를 비난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과거의 있었던 일들, 저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저를 비방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욕을 먹더라도, 비난을 받더라도 제 자신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비난과 비방보다는 힘 내달라는 격려를 해주셨으면 좋겠지만 그건 제 희망사항이겠지요? 이렇게 커밍아웃을 결심한 것도 아웃팅이 아니었다면 생각조차 못했을 저 였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아웃팅은 오히려 잘 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마음의 자유를 얻기 위한 발판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다른 방법이 마음의 자유를 얻는 발판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커밍아웃, 비록 아웃팅때문이기는 했어도 결국 제가 선택했습니다. 후회하지 않도록 힘내라고 격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땅꼬마 2007-12-31 오전 04:01

형님 말씀처럼, 결국에는 형님이 선택하셨으니, 책임도 형님의 몫이고 지금 후회해도 그 책임으로부턴 벗어날 수 없지 않습니까?
되돌릴 수 없는 문제라면 후회하지 않는 게 제 생각에도 좋아 보입니다.
모쪼록 힘내십시요. ^^

pinkrobot 2008-01-05 오후 22:59

개인적으로 이 글을 퍼담아 갈게요.
문제시 자삭하겠습니다.

안형준 2008-01-26 오전 03:41

내가 갑자기 '동성애자 인권 활동가'로 둔갑해버렸네 ㅡㅡ;;; 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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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6 친구사이 내에 종교 모임을 만들고 싶습미다 +3 안티가람 2007-12-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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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