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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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게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꼽으라고 한다면 누굴 말할 수 있을까? 도저히 한 명은 꼽을 수 없겠고, 열 손가락을 조금의 텀도 없이 동시에 꼽으라 한다면 그 정도는 간신히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열 손가락을 동시에 구부릴 때 존경하옵는 알프레드 히치콕이 들어가야 함은 너무나 분명하다.

바쟁이 히치콕에게 물었다. 당신의 영화적 이상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히치콕이 대답했다. "내 영화들은 불완전한 우수작들입니다." 얼마나 멋진가!

요즘 1376페이지나 되는 커다란 히치콕 전기를 틈틈이 읽고 있다. 60여 편이나 되는 그의 필모그라피 중 현재까지 쫓아다니며 40여 편을 대충 다 보고 아직도 보지 못한 것들은 다 보기 아까워, 아랫목에 모셔놓은 젓갈 단지처럼 소중히 여기며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꺼내보는, 혹은 갑자기 다시 또다시 보게 되는 히치콕이야 말로 내게는 보석 같은 존재다.

들기도 무거운 이 책.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소소한 것들이 다 들어가 있어 읽어내려가기 꽤 힘이 들기도 하지만, 곳곳에 내가 생각했던 히치콕의 면모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가끔씩 꺅~! 을 연발하곤 한다. 특히나 '로프'와 '싸이코'를 보며 어쩌면 히치콕 내면에는 호모섹슈얼이 가득할지도 모르겠단 평소의 생각을 증명하는 대목들도 많다.



2.
히치콕은 나중에 늘그막이 측근에게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내가 엘마(히치콕의 부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호모가 되었을 거야." 젊었을 당시, 이태리에 있는 게이 바를 다녀온 이후 히치콕 내부에서는 어떤 감정의 동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간에 히치콕에게도 몇 가지 페티쉬와 클리셰가 존재하는데, 영화 편집와 콘티뉴티를 음악의 속도에 맞춰 구성하는 방식은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매력적이며, 북유럽풍의 금발 여인과 머리가 검고 늘씬한 남성에 대한 그의 도착은 이미 일반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제임스 스튜어드나 케리 그란트가 그 늘씬한 남성의 모델을 충족시켜 주었을까?

어떤 기자가 히치콕에게 왜 그의 영화에 머리가 검고 늘씬한 남성들을 줄곧 주연배우로 기용하는지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죽을 때까지 자신이 뚱뚱하다는 사실을 못 마땅하게 생각했던 히치콕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말한다.

"저는 갈대처럼 가냘펐으면 하는 꿈을 늘 꿔왔습니다."



3.
나중에 시간이 되면 히치콕이 쓴 꽁트들을 여기에 옮겨 적을 생각이다. 무척 유쾌하고 재밌다. 난 이 고약한 악취미와 재치의 천재 히치콕이 너무 좋다. 그리고 평생 자신의 컴플렉스를 유쾌하게 비꼬아서 영화 속에 삽입하는 그의 치기어림도 사랑스럽다. 뚱뚱한 자신의 몸을 싫어하면서 갈대처럼 가냘픈 남성의 몸매를 원했던 히치콕이 자신의 그런 이상적 몸매의 존재들을 셀룰로이드 조각에 구겨 넣고 피식 웃는 장면이야말로 영화 감독들이, 자신의 영화를 대할 때 가지는 선망의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게다.

나는 '쌍꺼풀이 없고 구렛나루가 있는' 머슴애들을 집요하게 구해 카메라 앞에 세워놓기를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나 역시 내가 '쌍꺼풀이 없고 구렛나루가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어렸을 적부터 해왔으니까.



4.
히치콕의 <로프>와 호모섹슈얼에 관한 짧은 메모
요즘 연극가에서 퀴어 뮤지컬로 화제가 되고 있는 '쓰릴미'의 모태가 되는.

http://gondola21.com/bbs/zboard.php?id=fre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로프&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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