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는 외면한 동성애의 오랜 투쟁
정재승의 책으로 읽는 과학 / <동성애의 역사> 플로랑스 타마뉴 지음. 이상빈 옮김. 이마고 펴냄
인터넷 지식인 검색에는 ‘팝가수 데이비드 보위에게 왜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쓰나요?’라는 별난 질문이 올라와 있다. 팝 마니아들이나 음악평론가들이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에게 그러하듯 데이빗 보위에게도 깍듯이 경의를 표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의 음악적 성취가 뛰어나다는 데 우선적으로 기인한 것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함으로써 사회에 더 큰 관용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가 자신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통해 동성애자임을 밝히자 그는 단숨에 게이 잡지들의 표지를 장식하면서 금세 ‘퀴어 코드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의 요란한 고백이 ‘이단아 이미지 창조’라며 비판받기도 하지만,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그는 진짜 퀴어들이 자신들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플로랑스 타마뉴의 ‘동성애의 역사’에 따르면, 미국 섹슈얼리티 연구가들 사이에서 퀴어라는 용어가 게이나 레즈비언을 대신해 사용하게 된 것은 1980년대부터라고 한다. 퀴어(queer)란 남색가를 뜻하는 동시에 ‘별난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동성애자들은 스스로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이 같은 욕설을 선택함으로써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이러한 의문을 언어라는 공공영역 속에서 풀어갈 것임을 암시했다. 그래서 퀴어는 이제 단지 동성애자만이 아니라, 성과 젠더의 도식적인 분류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의학자들에게 동성애는 오랫동안 치료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헝가리 정신의학자 칼 마리아 커트베니가 1896년 동성끼리 성적행위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모호하게 불리던 이들을 ‘동성애자’라고 명명함으로써 이후 그들은 ‘집단적으로’ 박해의 대상이 되었으며, 1950년대 미국 정신의학회는 동성애를 ‘사회병리학적 인격 장애’ 중 하나로 간주해 환자로 취급했다. 그들이 페티시즘과 노출증, 관음증, 사도-마조히즘 등과 함께 정신장애 목록에 포함돼 있던 동성애를 리스트에서 삭제한 것은 불과 3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에이즈가 ‘면역체계의 약화를 보이는 게이 암’으로 처음 캘리포니아 몇몇 병원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1981년. 레이건이 기독교적 보수주의를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심어주던 1980년대에는 전세계 사람들이 에이즈를 불온한 동성애자들이 천형을 받아 퍼뜨리는 질병으로 인식했다. 에이즈가 동성애자들보다 이성애자들 사이에서 훨씬 더 많이 퍼져있으며 결코 천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파한 것도 과학자지만, 그들이 그렇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은 아니다.
동성애의 역사를 읽다보니, 과학자나 의학자들이 부정적인 부분에만 등장한다는 데 놀랐다. 동성애자들이 오랜 투쟁의 역사를 통해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얻기까지, 그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을 과학자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의학자들은 왜 그 동안 동성애를 ‘사회적이거나 성적인 일탈의 의지’로만 파악해왔던 것일까? 앞으로 새로 쓰일 동성애의 역사에선 과학자들이 작게나마 동성애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기록되길 기대해 본다.
정재승/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