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며칠 전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갔다가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당신의 아들은 동성애자이고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지난 세월 어머니와 함께 살아오면서 당신께 숨겼던 이야기들을 거의 다 쏟아내었다.
00년을 살아오면서 꾸었던 악몽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바로 어머니가 당신의 아들...즉 내가 게이인 것을 알아버리는 상황....그것이 바로 제일 끔찍한 악몽이었는데..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1. 사실...이미 어머니는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대학교 0학년 때 학생회 선거 자료집과 함께 우연히 어머니가 발견하신 내 책상 아주아주 깊은 은밀한 장소(내 마음의 깊은 벽장속이기도 하였다.)에 있었던 반누드의 남자사진들(--;)..
그리고 얼마 전에 내 책상 속(이때는 나의 마음이 발견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정도로까지 발전(?)되어서 책상 뒤지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에서 발견하신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관련 문건들..
그리고 내가 커밍아웃한 상당히 많은(--;) 사람 중 어느 누구의 입에서 흘러나갔을(과연 실제로 어머니가 누군가에서 들은 것인지는 아직 그렇게 확실하지는 않다.) 내가 게이라는 소문..
그리고 무엇보다도 00년을 살면서 단 한번도 여자친구를 애인이라고 소개하며 집에 데려온 적이 없었던 나의 전력들..
이런 것들을 통해서 그리고 어머니만이 가지는 특유의 느낌을 통해서 어머니는 이미 내가 동성애자일 것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계셨다...하지만 세상의 모든 이성애자인 어머님들이 그러하듯 어머니는 이번 여행에서 나의 입을 통해서 “저는 동성애자가 아니예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어머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2. 000의 어느 공원에서 “어머니...홍석천이라고 아시죠..??....저 사실 홍석천과 같은 사람이예요...동성애자라고요..”라고 말씀드리고....그동안 살아오면서 숨겨왔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때도 어머니는 약간 몸을 떠시기는 하셨지만 담담히 듣고 계셨다.
나의 말을 다 들으시고는 조금 걷자고 하셨다. 어머니와 나는 걷기 시작했다....걸었던 길을 또 걷고...돌아와서 또 걷고...찻집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또 걷고...“조금 걷자”고 했지만 사실 한3시간 이상은 족히 걸었을 것이다. 바다바람이 다소 차게 느껴졌지만....나의 마음은 더욱 차가왔고...아마 어머니의 마음은 더욱더 차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3시간 동안 걸으면서 어머니와 내가 주고받은 말은 별로 없었다...나는 주로 듣기만 했는데...어머니는 “너마저 그러면(우리 형은 많이 아프다.) 나는 어떡하느냐”...//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니?” //“내가 전생의 죄가 많아서 아들이 이렇게 되었다”는 등등의 말씀만을 하셨을 뿐이다.
3. 그러나 그런 조용한(?) 산책 후에 호텔로 돌아와서 어머니는 한없이 울기 시작하셨다. 너무 우셔서 숨이 막히기도 하셔서 나는 이러다가 혹시 돌아가시는 것 아닌지 매우 겁이 났고...급기야 앰블런스까지 부르는 상황이 발생했다.(다행(?)히도 우황청심원으로 병원까지 실려가시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 그냥...나와 당신(어머니)이 그 호텔에서 같이 죽어버리자라는 말씀까지 하셨다....아마도 나의 말이 차츰차츰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하신 모양이었다. 나도 울었다......차라리(믿지 않으신다고 하더라도)...거짓말로라도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말씀드릴 걸...그냥....어머니가 듣고 싶어하셨던 대답을 그냥할 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슬피 우시고 나니 어머니는 갑자기 많은 말씀을 하기 시작하셨다. 그 내용들이란 주로 나를 정상(?!--;)적인 이성애자로 되돌리시겠다는 말씀이셨다. “네가 아직 진실한 여자친구를 못 만나서 남자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피가 나도록 처절하게 같이 노력하자 그러면 다시 이성애자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그렇게 동성애에 빠졌다가 다시 돌아온(?)사람들 종종 봤다. 너도 할 수 있어”등등...
그러면서 힘들 때는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십자가가 달린 묵주(어머니는 카톨릭이다.)를 주시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동성애라는 것이 선천적이고 강제로 이성애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계신듯했지만 아들인 내가 그런 “동성애자”라는 것을 인정하시지는 못하고 계신 것이었다. 즉 나는 그저 좋은 여자를 못 만난 탓에 일시적으로 동성애에 빠져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계신 것이었다.
4. 사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미 어머니가 많은 부분을 알고 계시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최근에 “후회하지 않아”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다는 것도 알고 계셨으며(보셨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미국부통령 딕 체니의 딸이 레즈비언인 것도 유럽 등에서는 동성결혼이 인정되는 국가가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다. 그런 점에서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또 어머니 당신의 과거의 기억에 의존하여 으레 추측하고 계신 것들도 많았다.
어머니가 대학다니실 때부터 더러운(--;) 게이들이 낙원상가의 (구) 허리우드 극장에 많이 모여들었다는데 어머니는 그것도 알고 계셨고 그래서 나에게도 “너도 그 허리우드 극장 다니니..??..낙원상가 근처에서 누구랑 잔 적 있니?” 등등의 질문을 하시기도 하셨다. 뭐...내가 종로에 자주 가서 노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난 종로에서는(^^;) 누구랑 잔적은 없단 말이다.
그리고 “동성애자=성적으로 문란함” 이라는 편견(?)도 가지고 계셔서 나보고도 문란하게 생활하지 말라고 하시기도 하셨다....쩝...나도 좀 문란해지고 싶은데...엉...
5. 사실 이 글은 커밍아웃한 다음날인 00일부터 여러 날에 걸쳐서 답답할 때마다 조금씩 쓰는 것이라서 내 감정도 이 글의 처음부분을 쓸 때와 많이 달라져있다....커밍아웃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밤...난..정말로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있었는데...그날 밤...정말로 죽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지금은 그래도 조금 나아진 것 같다....시간의 힘이란...참....이렇게 대단(?)한 것인가보다...
어머니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나의 성정체성 문제는 이제 겨우 어머니와의 대화를 시작한 것뿐인 것 같다. 어머니는 내가 이성애자가 되기를 포기한다면 당신의 삶의 희망도 없어질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나 역시 내가 동성애자로 살기를 포기한다면 나의 삶의 희망도 없어질 것이다.
절충이나 타협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가 전혀 예측이 되지 않아서 매우 매우 불안하다.
다만...나는 이렇게 이런 문제로 얘기할 일,이반 친구들이라도 있지만 어머니는 그런 친구들도 없으니(어떤 어머니가 아들이 게이라는 것을 가지고 친구와 상담을 하겠는가?--;) 그래서 어머니가 더욱 힘드시고 답답하실 것이니 그게 나로서는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6.그렇게 커밍아웃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연말이라고 공항 버스 안에서는 온갖 이성애 연애 프로그램과 이성애 양부모 가족(소위 정상가족)의 따뜻함(과연 이런 가정이 얼마나 있을까?)을 칭찬하는 프로그램들이 쏟아져나왔다. 나도 어머니도 모두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실지.....어떤 슬픔을 느끼실지 알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나도 예전에는 종종 재미있게 보기도 했지만) 너무 밉다....
너무..지겹고...짜증난다...이 only 이성애주의사회......
언젠가....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슬픔을 느끼지 않아도 될날이 오겠지....(성정체성으로 인한 차별뿐 아니라 장애, 이주노동자등 각종 부당한 사유로 인해 차별받는 사람들의 감정 또한 같을 것이다.)
아니...오도록 해야하겠지..??....
7. 앞으로 나의 성정체성 문제로 인하여 어머니 그리고 나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매우 불안하다...벌써부터 어머니는 나의 동성애를 고쳐줄(?) 좋은 여자를 찾고 계신 듯하다.....쩝.....제발..최악(?)의 상황만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