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하는 문학상에 내려고 쓴 소설이에요. 게이 국회의원; 둘이 나오는 정치로망스퀴어스릴러인데; 아무튼 상은 못받는 거 같아요; 상받음 후원회비라도 내면서 짜장하고 공개하려고 했는데. ㅋㅋ
첨부파일로 올리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첨부를 할 수가 없군요;; 아무튼 나름 재미있으니 읽어주세욬
제목: 스캔들
이 이야기는 너무나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박봉성의 대본소 만화와 장거리를 뛰는 택시기사들에 의해 수없이 반복된 이야기이다. 여러분은 주간 타블로이드판 신문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이미 읽었는지도 모른다. 서울발 부산행 야간 무궁화호쯤을 타고 지겨움에 지쳐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이야기는 정치판을 배경으로 한 두 남자의 믿음과 배신을 다루고 있다. 당연히도, 이런 전형적인 이야기엔 치정 문제가 빠져서는 영 맛이 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믿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이 이야기가 나 같은 퇴물 정치인의 후일담, 아니 변명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김 의원님, 말씀 좀 해주세요.”
의원회관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최수진 기자가 아침인사 대신 어제와 같은 질문을 또 던진다.
“뭘 말씀이십니까?”
“뭐긴요. 이세운 의원님과 신세아 씨 사이의 스캔들 말입니다.”
“어제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정말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신세아 씨의 이혼이 이세운 의원 때문이라고 이미 다른 분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이세운 의원님 최측근인 김 의원님께서 모르시면 누가 압니까.”
“그럼 그 분에게 더 취재를 하시던가요. 늦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신세아. 한 때 귀여운 얼굴로 인기를 꽤나 끌었던 여배우였지만 요새는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 집요한 최 기자는 빼고 말이다. 사실 나도 그녀가 나오는 아침드라마를 멍하니 보다가 지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나오는 드라마는 영 수준이 낮다. 아직도 불륜이니 복수니 하는 드라마라니. 드라마에서 그녀는 예쁘지도,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저 표독할 뿐이었다.
언젠가 재계의 사람들과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화면에서보다 훨씬 젊고 우아하고 지적인 모습에 놀랐다. 그렇지만 그 뿐이었다. 세운 형도 같이 있었지만 그녀와 세운 형이 뭐가 어쨌다는 것인지. 세운 형을 감싸주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정말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최 기자 말처럼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최 기자가 저렇게 세운 형과 신세아의 섹스 스캔들에 집착하는 것은 우습고 또 인생 선배로서 측은하다. 의원회관에 막 출입하기 시작한 초짜 정치부 기자로서 큰 건 하나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얼마 전에 최 기자와 대학 동창인 이갑수 기자가 홍 의원 아들의 이중국적 의혹으로 몸값 올리는 걸 보고 최기자도 안달이 좀 난 모양이다. 그래도 이런 섹스 스캔들에나 시간을 보내다니 그녀의 앞날도 훤하다. 최기자도 꿈 많은 정치학도였겠지. 경쟁은 역시 사람을 천박하게 한다. 질투니 욕심이니 하는 것만큼 사람 우습게 만드는 게 없다. 사람은 모름지기 언제나 품위를 지켜야 하는 법이다.
세운 형과 나는 대학 선후배 사이였다. 신문학과였던 나는 한 선배의 손에 이끌려 사회과학학회에 가입하게 되었고 그 학회에서 세운 형을 만나게 되었다. 세운 형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좋지만 참 무섭기도 했다. 형은 정치학도였고 나보다 두 학번 선배였다. 학회장이었지만 사실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도 않았고 열심히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의 특기는 세미나가 지루해질 때 웃긴 얘기를 해서 적절히 분위기를 띄운다거나 세미나 뒷풀이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가끔 형의 동기들이나 머리가 굵은 후배들이 세미나에서 그의 의견에 반박을 하며 그를 궁지에 몰 때도 있었지만 그는 원론적인 당위론으로 답하며 무마하고는 하였다. 그런 날에는 뒷풀이 자리에서 그 동기나 후배는 그에게 한참이나 설교나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그 레파토리는 보통 열의가 부족하다거나, 후배를 챙기지 않았다거나, 개인적인 생각이 너무 많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사실 좀 뻔한 얘기였지만 유독 형의 그런 말 앞에서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고는 술을 왕창 마시고 앞으로 더 잘하자며 서로 결의를 다지는 것으로 뒷풀이 자리가 끝나고 했었다.
그러한 세운 형을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지만 세운 형은 나를 유독 잘 챙겨주곤 했다. 세운 형은 나를 언제나 챙겨주고 나는 형을 언제나 잘 따르고. 그런 관계는 사실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대학 생활 내내 세운 형과 매일 공부하고 술 먹고 세상을 개탄하면서 그렇게 보냈다. 서울에서 살았지만 학교와 집이 꽤 멀었던 나는 형의 자취방에서 많은 밤을 보내기도 했다. 쉽지 않았던 20살의 나날들 동안 내가 형에게 많이 의존하기는 했었던 것 같다.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지만 후에 친구들이 한 얘기에 따르면 내가 세운 형을 꼭 붙들어 안고 펑펑 울어서 술자리에 있던 모두가 곤혹스러워 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우리 집안은 꽤 넉넉한 학자 집안이었고, 나도 대학졸업 후 집안 어른들의 권유에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세운 형은 졸업 후 정당을 여기저기 쫓아다니더니 내가 10여년의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무렵에는 형은 이미 초선 국회의원이 되어 있었다. 나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방 사립대학 언론학과의 교수자리를 얻어 강의를 시작했다. 학문적 치열함이나 교육에 대한 열정도 거의 메마르고 남은 인생이 지금과 같으리라는 생각만이 가득할 때 세운 형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제안의 내용은 Y당의 언론특보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대학 시절부터 그랬던 것처럼 형은 나를 또 챙겨주었고 나는 형의 말을 잘 따라서 정치판에 들어오게 되었다.
세운 형은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사람을 다루는 데에도 능수능란한 사람이라서 이렇다 할 스캔들을 만든 적이 없었다. Y당의 떠오르는 스타인만큼 나에게 그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은 종종 있었지만 최수진 기자처럼 집요하게 물어온 경우는 처음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섹스 스캔들이라니,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얘기였다.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서 타려는 최 기자를 겨우 보내고 5층에 내려서 사무실에 들어왔다. 아침부터 말다툼을 해서인지 썩 유쾌하지가 않다.
“좋은 아침입니다. 일찍들 나왔네요.”
“이세운 의원님께서 두 분만 따로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우선 내일 모레 수요일 조찬으로 시간 잡아 놓았습니다.”
“잘했어요. 장소는요?”
“이세운 의원님 자택에서 뵙고 싶다고 하셔서…….”
“그래요. 내일 밤에 한 번 더 체크해줘요.”
“알겠습니다.”
정례적으로 만나는 당내 의원 모임이나 특별한 사안이 있어서 삼삼오오 만나는 모임도 아니고 단 둘이, 그것도 집에서 보자고 하다니 좀 이상한 느낌이 든다. 특별히 잘못된 것은 없지만 왠지 어색한 것들이 있다. 검은 정장바지에 갈색 구두 같은 것. 세운 형의 전에 없던 조찬 약속은 어딘가 그런 느낌이다.
세운 형은 일 도와주는 아주머니를 빼면 혼자 살고 있어서 형의 집은 친한 의원들 몇몇에게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세운 형은 초선의원이 되기 전에 전 내무부 장관의 딸과 결혼을 했고 둘 사이의 자식은 없었다. 형수님은 결혼 2년 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그 뒤로는 형수님이 종종 귀국하는 것 외에는 항상 세운 형 혼자 지내왔다. 세운 형 집에 올 때마다 집 전체가 왠지 외로워보였다. 역시 큰 집에 혼자 사는 건 못 할 짓이다.
“김 의원님, 어서오시지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이구, 이 의원님. 이렇게 반겨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세운 형의 농담 섞인 환대에 나도 따라서 인사를 나눈다.
“웬일이에요. 아침부터 둘만 보자고 하고. 아침부터 형 보니까 기분 좋긴 하다만.”
“그냥 보고 싶어서. 일단 밥부터 먹자.”
세운 형을 보자마자 요즘 나를 귀찮게 하는 최 기자에 대해서 털어놓을까 하다가 만다. 보자마자 불평만 털어놓는 게 좀 우스워 보일 것 같다. 형에게도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닐 것 이다. 나한테 그 정도 집요하게 물어봤으면 형에게는 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귀찮게 했을 것 아닌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린 것들은 가끔 귀찮아서 무서울 때가 있다.
애써 확인할만한 문제도 아니다. 그가 결코 신세아와 이렇고 저렇고 할 일이 있었을 리가 없다. 난 그를 믿고 있다. 아니 단지 믿는다기보다는 의심할 수 없다고 할까. 믿음이란 건 우스운 거다. 믿음이란 이미 의심을 가정하고 있는 말이다. ‘의심스럽지만 이해하고 참고 노력해서 의심하지 않겠다.’는 것이 믿음이다. 방황하고 있는 자식의 손을 잡은 부모와, 바람 피고 돌아온 애인을 안고 있는 연인이 던지는 ‘나는 널 믿어’라는 말 만큼 의심으로 가득 찬 말은 흔치 않다.
전복죽과 동치미, 몇 가지 젓갈들이 식탁에 올라왔다. 오찬 메뉴로는 진부하지만 모든 진부함에는 진부할 만큼 좋아하는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평소에 아침을 거의 거르는 편인데 오늘은 왠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에 허기가 진다. 잘 차려진 식사를 보니 서두르게 된다.
“영석아. 형이 부탁이 있어서 보자고 했다.”
부탁이라. 저런 표현은 형에게서 익숙지 않은 말이다. 뻔히 눈에 보이게 자기 이익을 위한 일에서도 언제나 대의를 만들어내는 것이 형의 화법 아니었던가. 도와달라거나 부탁하는 말을 형에게서 들어본 기억이 없다. 검은 정장 바지의 갈색구두가 자꾸 떠오른다.
“무슨 일인데요.”
전에 없이 형이 뜸을 들인다. 숨 한번 가다듬고 말하는 정도이지만 형에게서 볼 수 없던 모습이다.
“곧 나와 세아의 스캔들이 터질 것 같다. 너가 좀 도와줘야……할 것 같다.”
“최수진. 그건 왜 생사람을……. 젊다고 좋게 봐줬더니만…….형은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세아가 임신을 했어. 지금은 지웠지만. 막아보려고 했는데 세아 전 남편이 이혼 소송을 내고 최기자한테 말을 흘렸나봐.”
얼굴이 순간 달아올라 모공을 쿡쿡 찌르는 것 같다. 손가락 끝이 따끔거린다.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고개를 숙이면 얘기를 계속 할 수 없을 것 같다.
“지난번에 청주에서 L제약 사람들이랑 식사했을 때, 그래 너도 그 자리에 있었구나. 식사 후에 나는 호텔에 들어갔는데 세아가 뒤따라 왔더라고. L제약 사람들이 보냈겠지. 되돌려 보내려는데 그녀의 얼굴이 어찌나 지쳐 보이는지 좀 쉬게 하고 싶더라구. 너무 힘들어서.”
너무 힘들었다는 건 그녀였을까, 그였을까, 아니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일까. 그녀가 나온 아침 드라마의 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남의 남편의 손을 붙잡고 오늘밤은 나와 같이 있자던 그 대사, 그 남자의 아내의 뺨을 세차게 갈기던 그 손길과 그 눈빛. 그녀의 연기가 이처럼 와 닿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녀는 천박했다. 나빴다.
“미안하다. 너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서.”
“왜 그녀와 잔거야?”
“미안하다.”
아, 이런 질문을 하게 되다니. 욕심과 질투만큼 사람은 우습게 만드는 것이 없다. 사람은 모름지기 언제나 품위를 지켜야 하는데 말이다.
“형 한번만 도와주라. 그래도 형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너야.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도와줘야지.”
우리 사이는 어떤 사이일까. 우리는 분명히 서로의 스캔들을 덮어줘야 할 정치적 측근 사이다. 지난 시간 동안 ‘의심할 수 없던’ 사이 아니었는가.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형의 단 한 번의 부탁이 그 불가침의 약속을 깨는 것이라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라는 저 말을 멀어지는 이 순간에 들어야 하다니. 형에 대한 걱정과 칼 같은 분노가 동시에 터져나와 당황스럽다.
“그래요, 그럼 나는…난…….”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야 하는지. 나는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 나는 형한테 무엇이었느냐고 물어야 하는지. 나는 이제 어쩌면 좋으냐고 해야 하는지 말이다. 어떤 질문부터 어떤 순서로 해야 옳은 것인지, 어떻게 해야 무너지지 않으면서 진실을 알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검은 정장바지에 갈색 구두를 신고 형이 멀어져 간다. 이런 때에는 어떠한 질문도 우스워진다.
「탤런트 신세아 국회의원 모씨와 간통…충격」
형도 막을 때까지 막아보고 나서야 나한테 얘기를 꺼낸 듯 형이 그 얘기를 꺼낸 바로 다음날 조간신문에 기사가 나오고 말았다. 기사에는 신입인 최수진 기자가 아니라 꽤나 뼈 굵은 오진형 기자의 이름이 실려 있다. 신문사에서도 이 사건을 물고 늘어질 분위기로 보인다. 조간신문에는 아직 형의 이름은 들어가 있지 않고 여당 국회의원 A씨로만 나와 있다. 여의도 의원회관에서의 소란이 서초동의 집에서도 들리는 것 같았다. 석간신문은 속보가 있을 때마다 조간보다 조금이라도 더 밝혀내야 한다는 부담을 늘 가지는데 이번에도 기어코 참지 못하고 세운 형의 이름까지 밝혀버렸다. 게다가 정치면은 물론 종합면까지 써가며 ‘한국판 지퍼게이트’니 ‘외국에서의 성 스캔들 사례는…’하면서 자세히 분석해놓았다. 그리고 박스 기사로 세운 형의 오랜 별거와 신세아의 이혼에 대해서도 적어놓았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많은 동료의원들이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L제약이 외국계 제약업체의 국내시장 진출을 가능케 하는 입법을 막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로비를 하고 있고 그러는 중에 여배우들이 이런 저런 자리를 동석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들어 넘겼다. 로비를 받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고 여배우들에게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그 이야기는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신세아와 세운 형과의 관계도 모두들 눈치를 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몰랐던 건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무의식적으로 걸러냈던 것뿐이다. 당장 최 기자가 매일 아침마다 둘의 스캔들이 사실이라고 일러주지 않았던가. 왜 나는 최기자의 말은 한 번도 귀기울여 듣지 않고, 세운 형의 말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말이란 것이 우스워졌다.
정치인이란 게 요즘처럼 힘든 적이 없었다. 세운 형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가면서 내 일상을 지켜내기도 힘들었다. 그런데도 하루에 적어도 수십 명은 나에게 세운 형의 스캔들에 대해 물어왔고, 공식적인 인터뷰 요청 또한 쉴 새 없이 들어왔다. 겉으로는 사실 확인중이니 기다려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언제까지고 대답을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누구나 알고 있는 세운 형의 최측근일뿐더러 내가 세운 형과 신세아, L제약 관계자가 처음 만날 때 동석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모두들 내가 사태의 전말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고 싶은 건 나인데 말이다.
세운 형과 신세아의 스캔들은 날이 갈수록 그 몸집을 더해만 갔고 당내에서는 형에 대한 탈당 징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커져만 갔다. 형이 탈당 징계를 받는다면 나도 당 내에서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될 것이 뻔하다. 의원직을 잘 수행하는 것만으로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으리란 건 순진한 생각이다. 당 내 누가 보더라도 나는 이세운의 세력이기 때문이다. 세운 형이 떨어져 나가면 이 자리 역시 무사할 리 없다. 이 급박하고 복잡한 상황에서는 나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지만 나는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당연히 세운 형을 도와서 스캔들을 해명하고 다른 의원들을 만나며 형의 탈당을 막아줄 것을 부탁해야 한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이니까.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형이 결국 탈당될 것이라면 어떻게든 내 살 길을 도모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 쪽으로도 쉽지 않다. 형을 떠나야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 삶의 모든 부분이 세운 형과의 연관 속에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살아가다 한 번 쯤 있을 법도 한 외도였지만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앗길 것들을 생각해보니 형의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 위에 엎드려 누워있을 때 완곡한 곡선을 그리며 미끄러지듯 떨어지던 그의 등선. 그 햇살만으로 집값을 일억 원은 올린다는 한강변의 형의 아파트에서 형이 햇살을 받고 엎드려 있을 때 그의 등은 눈부셨다. 몸의 모든 선이 허물어지고 망가지는 나이라지만 형의 등만큼은 여전히도 아름다웠다. 형의 등 뒤로 아침드라마에서 들었던 신세아의 높은 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형의 등 밑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세운 형의 등선 아래로 힘줄이 도드라진 검은 손등이 보인다. 그의 숨이 달라질 때마다 검은 손등 위의 짙은 털들이 흔들린다. 팔뚝을 따라 올라간 숨결이 아기같이 여린 분홍빛 팔꿈치를 간지럽힌다. 그 위로 떨어지는 굵고 긴 갈색 웨이브 머리가 햇빛을 받아 유난히 붉다. 숨결은 마스카라가 번진 눈 가에 잠깐 머물다 각진 턱과 굵은 목을 좌우로 스친다. 숨결이 목선을 따라 내려오며 실리콘이 들어간 가슴을 지나 쳐진 복근과 뱃살에 머물 때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몸이 녹고 있다. 수염자국과 립스틱이 같이 녹아내려 검붉은 띠를 이룬다. 굵고 긴 웨이브 머리가 녹아내리는 몸을 휘감고 있었다. 신음소리가 난다. 기쁜 듯 우는 듯 하다가 앓는 듯 한 소리가 난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소리는 갈수록 몸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 것처럼 들린다.
“의원님, 의원님, 어디 불편하세요?”
“아, 네, 아니에요.”
보좌관이 한참이나 옆에 서 있었는지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어요. 제가 우선 거절했는데 사태가 이 의원님과 신세아 씨 관계말고도 L제약과의 연루설까지 진행되어서 김 의원님 입장도 곤란하게 되셨습니다. 지금 더 발언을 미루시면 김 의원님까지.”
“알았어요. 알아서 하세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보좌관의 말을 끊고 대충 대답하고 만다. 손끝과 팔뚝이 저릿하다. 식은땀이 많이 나서 몸을 일으킬 수 없다. 세운 형을 믿고 그가 결백하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닐 수 있을까. 형이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세운 형과 신세아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믿을 수 있을까?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것이 거짓이라고 믿어야 했다. 역시 믿음은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역시 의지의 문제이다. 하지만 믿음이 진실의 문제가 아니만큼, 믿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진실도 없다. 나는 형을 떠나서……살 수 있을까?
「오늘은 이세운 의원과 신세아씨의 스캔들과 관련하여 Y당 김영석 국회의원과 전화 연결했습니다. 의원님,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하기 싫은 인터뷰였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말이 입에 붙어 알아서 튀어나온다. 지난번 인터뷰 어쩌고 한 말에 대충 대답한 것이 아마 오늘 인터뷰에 대한 얘기였던 것 같다.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나의 첫 인터뷰라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도 몇 있지만, 라디오 인터뷰는 별로 어려운 건 아니다. 예상질문에 대해 보좌관들이 미리 만들어놓은 답변을 그저 읽으면 되는데다가 왼쪽 귀에 꽂은 이어폰을 통해 보좌관들의 즉석으로 코치를 해주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인터뷰로 유명한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라디오 인터뷰는 안전하게 입을 열 수 있는 방법이다.
「이세운 의원의 스캔들의 당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공식적인 의견은 아직 나오지 않은 건가요?」
“이세운 의원님과 배우 신세아 씨, L제약 관계자가 몇 번 만난 것은 사실로 밝혀졌지만, L제약과 특별한 청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우선은 지인들끼리 단순히 식사를 몇 번 같이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세운 의원님과 신세아 씨의 문제에 대한 자세한 사실관계는 아직 조사 중에 있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라 국민의 뜻에 맞는 판단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너무 적힌 그대로 읽은 티가 나는 걸까. 내가 읽으면서도 우스워진다. 하지만 이 이상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직 위험한데다가 사실 이 사태에 대한 내 생각은 멈춰버렸다. 그저 입을 놀리고 있을 뿐이다.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읽어도 될 만큼 편한 구어체로 답변을 써준 보좌관의 친절이 고맙게 느껴진다.
「좀 전에 언급하신 저녁식사에 김영석 의원님도 동석하신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어떻게 그 자리에 동석하시게 되신 거죠?」
“저도 역시 지인들이라 함께 저녁식사를 한 것으로, 제 식사비는 판공비로 처리하였습니다.”
「그 말씀은 최근에 의약품 수입과 관련하여 치열하게 로비를 하고 있다고 널리 알려진 L제약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알고도 그 자리에 동석하고 고가의 식사비까지 판공비로 처리하셨단 말씀이신가요?」
“아, 그런 건 아니고. 어차피 저녁이야 먹어야 하지 않습니까.”
아나운서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하고 만다. 멍하고 있었던 정신이 갑자기 돌아오면서 머리가 복잡해진다. 멈춰두었던 고민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되살아난다. 보좌관도 당황했는지 한 번 나를 부르더니 별 말이 없다.
「충분한 답변은 아닌 것 같군요. 다른 질문 하겠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간통죄가 탈당 징계나 의원직 사퇴를 할 만큼의 큰 범죄이냐는 논란이 있는데요. 이에 대하여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선 이 의원님과 신세아 씨의 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간통죄에 대한 개인적 의견은 차치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국회의원이 현행법을 어긴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무거운 징계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철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 네.」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는 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지도 않았고 당연히 예상답변에 적혀 있지도 않은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보좌관이 적혀 있는 것만 얘기하라고 하는 다급하게 이야기 하지만 목소리가 귓바퀴에 맴돌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신세아 씨를 얘기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세운 의원의 별거 중인 부인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부분은 잘…모르겠습니다.”
「이세운 의원과 신세아 씨는 어느 정도의 관계죠? 정말 깊은 관계인가요?」
“조사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십니까. 이 의원님은 신세아씨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시죠?」
“아닙니다. 모릅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입이 입 밖으로 나와 나를 희롱하는 것 같다. 보좌관이 계속 무엇인가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보좌관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조용해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과 신경질적인 반응에 오히려 아나운서가 더 놀랐는지 잠시 침묵이 흐른다. 이러한 공백의 시간이 가장 위험하다. 눈물샘이 아닌 명치 끝에서 눈물이 터져 나온다.
「아, 네. 김 의원님께서 동료의원의 인격에 대한 믿음이 크신 것 같습니다. 이세운 의원님은 당내 386세력의 기수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세운 의원에 대한 탈당 징계안이 의원 총회에 상정될 경우, 386 의원들이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김영석 의원님의 전망은 어떠십니까?」
입을 열었다간 울고 있는 걸 들킬 것만 같아 입을 열지 못한다. 아니 이미 들켰는지도 모른다. 언제 들어왔는지 옆에서 보좌관이 어이없다는 듯이 보고 있다. 보좌관이 전화기를 뺏어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아버린다.
「전화 연결 상태가 고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김영석 의원님 감사합니다.」
보좌관이 캔 녹차를 하나 가져다준다. 한 모금만 마신 채 내려놓고 머리를 쥐어잡은 채 숨을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눈물은 곧 그쳤으나 눈물을 참으려 노력할수록 숨이 더 격해진다. 아, 이제 어떻게 하나. 우선은 보좌관이 좀 나가줬으면 좋겠다. 이런 순간 가장 무서운 것은 ‘저 인간이 어쩌려고 저러나’하고 보고 있는 사람들 눈이다. 라디오 생방송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김 의원, 미쳤어?”
숨을 미처 다 고르기도 전에 원내대표가 뛰어 들어온다. 그의 길었던 정치인생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 일이야 겪었을 법도 한데 그는 이런 화나고 어이없는 일은 처음이란 표정이다.
“누가 이세운이 친구 아니랄까봐, 아주 쌍으로 치고 박는구나. 김 의원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안 그래도 이세운이 스캔들 때문에 죽겠는데, 자네가 아주 둑을 터뜨리는구만. 그렇게 같이 잘리고 싶어?”
아, 여기는 세운 형의 반지하 자취방이 아니라 의원회관 504호구나. 내가 울면 세운 형이 세상이 무너질 것 같다며 울지 말라고 화내던 그 때가 아니구나. 어느덧 숨은 잦아들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나도, 세운 형도 이제 끝이구나. 당사 앞에 나를 내걸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자네가 기름 부은 덕에 스캔들 막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졌네. 이런 일은 한시라도 빨리 덮는 게 좋아. 다음주 의원총회에 이세운 의원 탈당 징계안 상정시키겠네. 일이 더 커지면 자네도 안전하지 못해. 일이 진정될 때까지 조용히 있게.”
도망갈까 생각하다 보좌관과 눈이 마주친다.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눈빛에 이내 마음을 접는다. 시간이 얼마 없다. 의원 총회가 두려워지면서도 얼른 어떻게든 이 사태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시간과 선택은 잔인하고도 유머러스한 짝을 이룬다.
“투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재적 인원 132명, 출석 인원 98명 중 찬성 79, 반대 11, 기권 8표로 이세운 의원의 탈당 징계안이 출석 인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본당 의원총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결과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당의 의견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투표는 형식적일 뿐이었다. 당 지도세력과 대립하고 있는 몇몇 386의원들과 간통죄는 가부장적인 법률이며 탈당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던 여성계 출신의 여성의원들만이 반대표를 던졌다. 처음 스캔들이 터져 나왔을 때 세운 형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당을 보위하려던 당은 일이 커지자 모든 것을 형에게 떠넘긴 채 형을 탈당시키기로 한 것이다.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징계는 무효입니다!”
세운 형이 벌떡 일어나 원내대표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형의 목소리는 여전히 호랑이 같다. 그의 목소리가 하도 굵고 당당해서 나도 형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을 뻔 했다. 하지만 그건 마치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호랑이 같은 목소리였다. 차라리 초식동물이었다면 슬프지 않았을 운명. 자신의 옆구리를 뜯어 먹히면서도 끝내 너를 잡아먹고 말 것이란 허망한 외침이었다. 며칠 만에 만난 형은 야위어 보인다. 늘 상기되어 붉었던 그의 뺨은 전에 없이 검고 눈 밑도 어둡다. 그의 살이 1파운드 쯤 없어진 것 같아 보인다. 누가 자신을 모든 시간 동안 모든 것을 오늘의 이 위치와 바꾼 세운 형의 심장 가장 가까운 살 1파운드를 도려냈을까. 피 묻은 단도에서 나의 지문이 나올 것만 같다.
“이것으로 Y당 임시 의원총회를 마치겠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김영석,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하자 세운 형이 나에게 달려와 멱살을 잡는다. 화를 내는 형의 모습이 더없이 불쌍해 보인다. 살이 다 발라져 뼈만 남은 고등어 같은 슬픔이 나를 덮친다. 발끝부터 몸이 저려 온다. 몸이 한 없이 무거워진다. 그를 안고 싶다. 외롭고 불쌍할 때마다 언제나 서로가 그래왔던 것처럼. 세운 형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는다.
손을 얹는 순간 모든 것은 분명해진다. 이제 내가 안아줄 수 있는 외로움이 아니구나, 이제 내가 보다듬어 줄 수 있는 가여움이 아니구나. 어깨에 얹은 손으로 세운 형을 밀어낸다.
호사가들은 내가 세운 형의 탈당 징계안에 찬성투표를 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토사구팽이니 배은망덕이니 하며 내가 세운 형을 배신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또 잘못된 흐름에 적절히 발을 뺀 것이라면서 현명하고 용기있는 행동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스캔들은 곧 잠잠해졌고 세운 형은 탈당 징계 후 의원직을 자진 사퇴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나는 다음 총선에서 영남의 한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지만 그곳은 애초에 Y당이 당선될 리가 없는 곳이었다.
그 때 세운 형의 탈당 징계안에 찬성하지 않았다면 나는 형을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 변한 것도, 변할 것도 아무 것도 없다고 믿고 싶었던 건 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해서였으니까. 하지만 사랑의 믿음은 그 때 끝나야 했다. 나는 형의 탈당 징계안에 찬성투표를 해야 했다.
바람이 방향을 달리해 불 때마다 하루에 열두 번 쯤 형도 힘들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우리의 결론이 형의 탓인지 나의 탓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를 한 번씩 돌아섰다. 누구의 돌아섬이 더 치명적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랑하고 헤어졌다는 게 누가 누구에게 미안해하거나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결핍은 원래 그렇게 차갑고 매서운 모양이니까.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으면서 그것들을 감쌀 수는 없으니까 말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매서운 모양으로 상처내던 결핍들이 또 그 시절에는 우리를 그렇게 따뜻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