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동성애 영화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게 보았지만,
그래도 누군가 내게 그중 최고의 동성애 영화를 꼽으라 한다면,
난 주저 없이 [The Hours]를 꼽을 것이다.
이 영화는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에서 흥행 실패한 영화다. 외국은 어떤지 모르겠다.
레즈비언들의 이야기라서, 자극적인 섹스씬 위주의 전개가 아니라서
일반이나 게이가 이 영화를 외면했는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런 이유로 이 영화를 외면한 것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게이가 많이 관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극장에 갔을 때 절대 다수의 관객층이 여자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내 주변의 게이들 중에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제목 조차도 생소하다고 말한 사람들이 많았다.)
새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댈러웨이 부인을 탐독하는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의 삶을 실제로 살고 있는 클라리사 번(메릴 스트립)
이 영화는 이들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동성애 영화가 자칫 섹스씬에 많은 컷을 할애하는 것은
성적 소수자를 왜곡시킬 뿐이라고 생각했었던 터라
호기심을 충족할 만한 섹스씬이 없는 것 하나만으로도
난 이 영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성적 소수자의 고민은 단지 [섹스]가 전부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영화에 몰입하게 한 것은
[나]에 대한 진지하고 본질적 고민과 물음에 충실한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런 것-본질적인 것-은 일반이나 이반이나 남성이나 여성이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물음에 대해 지나치게 철학적이거나 관념적인 접근을 시도하지 않는다.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지만, 그리 어려운 영화는 아니라는 얘기. 그래서 내가 재미있어 했을테지만.
영화 내용 외적으로는 니콜 기드만,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이라는
당대의 걸출한 배우들이 동성애 영화에 기꺼이 주연으로 나온 것도 나에겐 큰 충격이다.
조만간에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를 주제로 한 영화에
스타급 배우들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를 보게 될 날이 있기를 기대한다.
* 사족
- 이 영화는 미국의 유명한 게이소설가 마이클커닝햄이 쓴 소설 '세월 The hours'를 영화로 옮긴 것이라지요. 굳이 레즈비언 영화라고 이름 붙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성영화라고 하면 모를까.
마지막 에피소드의 자살하는 작가 역할은 실제 작가인 마이클커닝햄의 페르소나라고 보기도 한다는 군요. 영화에서의 비중은 메릴 스트립에 눌려 축소되었지만 원작에서는 좀 더 강화된 캐릭터로 구축되어 있구요.
아무튼 소설의 구조가 워낙 독특하고 3대에 걸친 이야기라 과연 영화로 옮길 수 있을까 반신반의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실제로는 꽤 좋은 평을 받았다지요. 세 여배우의 열연도 멋있었고...
저는 두 번 봤었는데 두번째 에피소드의 줄리안 무어 캐릭터가 젤 맘에 들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