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앞에 있는 분식집의 음식의 수준은 비슷 비슷하다.
보통의 요리집과는 비교할 수 가 없을 것이고, 일반적 가정식에다
대중의 기호에 맛에 부응할 수 있도록 조미료와 감미료로
들쩍지근한 맛을 내는 수준들이다.
그중에서도 단맛이 너무 강해 자주 안가는 집이 있다.
그런데 꽤나 이상하지? 그집에 가면 꼭 나의 감정을 건드리는
다큐멘터리 같은 것들이 틀어져있으니...
지난번에는 한국의 어디 변두리 같은데서 사는 친구가 없어 늘 혼자 노는 사티 (맞나?)라는 인도 여자애의 이야기가 나와서, 이 나라의
안타까운 외국인 노동 조건에 대하여 생각해보게끔 하더니,
이번에는 다운 증후군에 걸린 아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글쎄 다 보지는 않았지만 그 집은 꽤나 불행의 집합체와 같은
집안처럼 느껴졌다. 둘째는 다운 증후군, 여유롭지 않은 살림에
철든 첫째는 장학금 때문에 원하는 대학도 낮추어 들어가고,
꽤나 가족들을 이해하고 보듬는 착한 친구지만 (TV상에서는)
군대도 안다녀온 어린 친구가 뇌종양에 걸린다.
다 보지는 못했지만 두가지에 대하여 생각토록 하는 기회가
되었다. 먼저 한가지는 신과 존재의 시작에 대한 질문이고,
두번째는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이다.
먼저 첫번째...
사실 우리의 숨가쁜 삶에 있어서 존재가 어디서
시작이 되었는지,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지가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닐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궁금은 하다.
물론 세상은 내가 태어나기 헤아릴수없이 오래 전 부터 존재해
왔겠지만, 그 우주는 어떻게 시작이 된걸까?
시작과 끝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지성의 한계인 것일까?
어쩃든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 존재 이전이 상태는 어땠을까?
이문제는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이해가 되지 않던 문제중의 하나와
맥을 같이 한다. 우주가 팽창을 한다는데 팽창하고 있는 우주의
바깥은 무엇으로 되었있을까? 우리가 풍선을 분다고 하더라도
입김으로 팽창하는 풍선의 내부와는 달리 바깥쪽은 대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가? 이 논리로 본다면 팽창하는 우주의
바깥은 무엇으로 되어있을까? 라는 문제와 마찮가지로 아주 똑똑한
사람들은 이해를 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의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어쩃든 간에 샘어족의 대다수를 이루는 이스라엘, 이슬람 문화권의
시작과 끝을 갖는 직선적인 세계관 및 역사관은 정확히 지금의
내 고민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분명한 선악의 기준이
있고, 유일신이 있으며, 시작과 끝의 의미가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겟다. 사실상 브리태니터에 의하면 이슬람/카톨릭/힌두교/개신교/불교/그리스 정교의 순으로 종교 인구수가 많다고 보므로,
사실상 셈족계의 유일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세계의 종교인 대다수가
된다고 볼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서 온 세계의
철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이 세상의 근원에 집중을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인지도 모르지만, 사실상 게르만-인도 어족의 세계관은 이와는
상당한 견해차를 보인다. 그들은 다신교를 믿는 순환적 세계관으로
역사는 파괴와 창조가 계속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의 관점으로 보면 지금 이세상의 시작은 또다른 세계의 파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런 모습은 행성의 죽음과 신성의 탄생의 과정을 통해
현대 천문학에서도 관측이 되는 일이지만, 그래도 순환의 고리의
시발점은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는 뫼비우스의
고리에서 안과 밖의 경계를 구분하려 드는, 혹은 클라인의 병에서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구분하려는 멍청한 생각일런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궁금한 문제이다.
어쨋든 복잡한 세계관의 논쟁을 떠나서 나는 그 다큐멘터리에서
교회를 찾아가는 아이의 어머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고통과 부조리가 넘쳐나고, 그 이면에는 아름다움과
사랑도 넘치지만 그것은 신이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단지 신이란 존재의 고통을 의지하기 위해 인간들이 만들어 낸
환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신이 있을 지 없을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있더라도 그의 선성을 어느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셈족계 종교를 믿는 이들이 늘 근거로 내세우는
성서에서도 단지 그가 완전히 선한 존재라고 했지만 그 선의
내부에는 분노와 복수라는 개념도 존재한다. 과연 그 선이 완전한
선일까? 누가 그 존재의 선성을 확신할 수 있을까?
세상 만물이 존재하듯이 그 역시 단순히 존재하는 것일지도...
만약 그가 완전히 선성의 발현이라면, 아니, 완전한 선성
그 자체라면 왜 불행한 이들에게 더 큰 불행을 내리고 이기적이고
잔학한 사람들에게 더 큰 이익을 내리는 것일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론은...세상에는 불행과 함께 행복도 넘쳐난다. 하지만
재수없으면 불행한거고, 운좋으면 행복한 것이지...
존재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 괜히 말많은 인간들이 이 이유, 저 이유
를 만들어 허상을 가져다 붙이지만 않는다면...
두번째...
다운 증후군의 그 아이와 부모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고백...
처음에는 너무 힘들고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오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단다. 하지만 그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부모
자신들이 떠나 버린 세계에서 아이의 생존을 위해, 장애인 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고, 그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보통 아이 키우는 것과 다를바 없는 기쁨을 느꼇단다.
내가 게이임을 모르는, 혹은 모르는 척하는 유일한 사람인 우리
부모님...내가 커밍아웃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아마도 체면을 꽤나 중시하는 그네들에게 "동네부끄러워서..." 는
기본멘트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그 다운 증후군의 아이의 부모들처럼 나를 인정할
수 있을까?
나의 정치적 입장이야, 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인정하도록
만들겟다의 입장이지만...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Queer as folk의 린지가 그녀의 보수적인
중산층 부모들을 설득시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내가 내 밑도 못닦으면서 어찌 남의 밑을 닦을 수 있겠는가?
내 뒤에는 구린 냄새를 풍기면서 남들보고 깨끗하라 할 수 있는
것일까?
내 자신에 대한 내면적 비판이 해가 갈 수록 커지지만, 부모님의
건강은 날로 안좋아지시고...그 와중에서 나의 생각은 강풍속의
갈대처럼 하루에도 수십번도 더 바뀌게 된다.
어쩃든 올해가 고비일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