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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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정녀 2006-05-19 15:15:08
+5 1116
내가 네 살이었을 때 닉 드레이크는 26살이란 이른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책상에는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 복사본과 트립티졸이라는 흥분제가 놓여져 있었다. 검시관은 그의 죽음을 자살로 판명했다. 자신의 음악을 아무도 듣지 않는 무명 가수의 한은 그에게 녹내장과 우울증을 안겨 주었지만, 자살 이후 그의 우울한 선율과 육성은 곧장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요절한 천재 닉 드레이크에게 붙여진 별명은 영국의 '밥 딜런'.

길거리에서 거의 거지 행색으로 죽은 프랑스 문호 스탕달. 그의 호주머니에는 쪽지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휘갈겨 쓴 문구 하나. '백 년 후에나 세인들이 내 문학을 알아줄 것이다.' 정말로 100년 후 스탕달의 '적과 흑'은 세계적인 고전이 되었다. 그의 '연애론'이야말로 지금껏 써진 문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애 이야기가 아닐까?

굶주림의 신 아낭케는 회초리로 끊임없이 바위를 끌어올리는 시지프스의 등짝을 후려친다. '시지프스의 신화'를 읽다 말고 흥분제로 삶을 채근한 닉 드레이크나 프랑스 부르조아 출세기를 발자크와 더불어 절묘하게 묘파해낸 우리의 스탕달은 아무도 모르게, 죽음 이후에나 빛을 볼 그의 작품들을 남겨둔 채 비루 먹은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애초에 서른 셋을 넘기지 말자며 다짐했던 나는 그 부끄러운 약속의 시기를 넘으며 내게 부여된 '능력'의 한계를 백주대로에 꾀 홀짝 벗듯, 그리 적나라하게 깨닫고 말았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몸이 허락하는, 내 두뇌 생산력이 허락하는, 딱 그 만큼만.

촌스럽게, 젊게, 때론 더욱 표독스럽게, 흐흐.



Nick Drake | Day Is Done



동정녀 2006-05-19 오후 18:33

나는 흥분제 보다 최음제가 좋다.

혜성 2006-05-19 오후 21:05

나도 33살에 인생을 하직하고 싶다는 계획을 세웠고 그 나이를 넘겼을 때 뭔가 모를 가슴아픔으로 힘들었던 때가 있었지요..힘내세요..삶을 택했을 때 또다른 배움이 다가옵니다.음악이 좋네요.

김혜성 2006-05-19 오후 21:06

누군지 언제 한번 이야기나누고 싶습니다..글의 분위기가 정말 제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해서..

몽정녀 2006-05-20 오전 08:47

혜성 님, 힘들지는 않아요. 그저 세월에 묻혀 서른 중반을 넘어버렸을 때 느끼는 작은 소회일 뿐. ^^;;

Bolling6990 2011-11-19 오전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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