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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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기말리포트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이번에 성을 파는 사람들을 주제로 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학수업이어서 현장연구보다는 문헌연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원래는 직접 성을 파는 남성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만나기가 굉장히 어려워서 그만 포기하고,
여러 문학작품 속에 드러난 성을 파는 남자들을 대신 다루기로 했습니다.

한국문학에서 성매매 모티프는 비교적 흔한 것이지만,
막상 성을 파는 남성들을 다룬 작품들은 대단히 드물더군요.
이는 실제 성을 파는 남성들이 보기 드물 뿐만 아니라
관심을 덜 받는 데 원인이 있는 듯해요.
동성애자인 제가 이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는 뭔가
이러한 연구 속에서 해명될 게 있을 것 같다는 문제의식에서요.

그러면 제 문제의식을 짤막하게 적어보겠습니다.  
황석영의 <장사의 꿈>과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
강석경의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가 제가 찾은 해당 작품들입니다.

우선 <장사의 꿈>은 팔루스가 두드러지는데
이 작품에 나온 ‘나’는 어린시절 씨름대회에서 항상 우승하는
장사 같은 남성이었지만, 가난한 가정형편을 극복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후 목욕보조원으로 일하다가
어떤 게이 같은 남성(?)의 꾐에 빠져
포르노 배우로 활약하다가 급기야 성을 팔게 됩니다.
나중에 ‘나’는 반복되는 일확천금의 화려한 삶 속에
삶에 흥미를 잃는 환멸을 맛보며 발기부전이 됩니다.
이로써 ‘나’는 장사가 아닌 약한 소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나’의 타락의 자기 자신에게 있다기보다는,
‘나’를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설정됩니다.
‘나’를 포르노 배우로 유혹하는 남성은 누가 보기에도
명시적인 게이로 보이는데, ‘나’는 그를 대단히
혐오스럽게 바라보며, 주된 이유는 그에게 음낭이 없으며
여성적인(?) 외모를 소유하고 있다는 데 기인합니다.

이처럼 게이적인(?) 인물이 대단히 추하게 그려지는 것은
장정일의 소설 <아담이 눈뜰 때>에서도 드러납니다.
이 작품은 복잡다단한 구성을 갖고 있기에
동성애자에 대한 묘사 때문에 폄하하기는 힘들지만,
이 작품에 나온 동성애자는 야전침대에서만 성관계를 가져야
발기가 되는 기괴한 습성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튼실한 엉덩이와 군살 없는 허벅지를 차지하기 위해
수십만원 대의 오디오를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성생활에 치중돼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나’가 그에게 발견하는 것은 ‘똥’의 이미지이며,
그는 나의 삶이 갖는 비루함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거울로 등장합니다.
즉 성에 천착해서 살고 있는 인물들의 삶은
동성애자의 성매매 제의에서 강조되는 셈입니다.

‘나’는 성에 집착해서 살고 있는 자기 자신과
다른 세 명의 여성인물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별다른 가치평가를 내리고 있지 않으나,
동성애자에게만큼은 우월적인 시각에서
그의 삶을 가장 추접한 똥으로 파악하면서
상대적인 비교우위를 느끼는 셈입니다.

강석경의 소설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에서는
명시적으로 성매매가 등장하지 않지만,
작품 속 주인공인 ‘나’의 젊은 시절 순수함과 맑은 동경을
갉아먹는 것은 나보다 권력을 많이 갖고 있는
중년 동성애자의 끊임없는 성적 요구에 닿아 있습니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나’는 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와 맺은 강요된 성관계는 지독한 트라우마로 자리 잡으며
‘나’는 이제 순수한(?) 이성애 연애를 시도하며
순수함으로 복귀하려고 하는 욕망을 품습니다.

세 작품에 등장하는 성을 파는 남성인물들은 악마적인 인물이 아니라,
사악한 누군가에 의해 성적자기결정권을 빼앗긴 뒤
피해를 당하는 약자로 그려집니다.
이는 기존의 동성애자에 대한 획일적인 편견을
재확인하면서 독해가 이루어지고,
동성애자들이나 여성들이 성적인 욕망을 품는 것은
애초부터 부정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또한 동성애자는 어떤 계층보다 더욱 더럽고 열등한 인물군으로 묘사되며,
성을 파는 남성인물들은 동성애자들의 삶을 목격하며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낍니다.

여전히 이성애자 작가들에 그려진 작품들은 작가의 생물학적인 성과 관계없이
사회 주류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동성애자를 항문섹스나 성매매, 성도착, 혐오스러운 외모,
여성스러움(?) 등으로 환치하는 결과를 보이고 있는 듯합니다.
이는 여전히 동성애자의 삶을 묘사하면서
현대사회의 징후와 위기를 설파했던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 등에서 멀어져 있지 않은 한계로 보입니다.
적어도 주류문학계에서 그려진 동성애자의 삶은
가장 추악한 삶으로 재현되는 것에서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원시인의 남자 2006-05-16 오전 03:4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목욕탕 때밀이 게이에 관해서는 가깝게는 성석제의 단편에서도 그 그림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에 등장하는 불쾌한 성폭력으로서의 동성애 모습은, 사실 50년 6.25 전쟁 이후 남한 사회에 판쳤던 전후소설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미군에게 사까시를 해주는 대가로 초콜렛을 얻어먹는 가난한 고아 소년들의 모습이나,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부대원들에 대한 출전 경험 소설가들의 묘사가 또 한 예로 거론될 수 있겠고, 제 개인적인 기억으론 가장 파격적인 장면은 송기원의 단편 소설에서 발견하기도 했었다는.

소설과 담 쌓고 지낸 지가 꽤 오래 되어 이제는 제목도 다 가물가물하네요. 암튼, 리포트 정리 되면 나중에 볼 수 있는 영광을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Emen 2006-05-16 오전 08:38

잠자는 숲 속의 남자던가, 별로 기억에 남는 책은 아니지만 대충 제목은 맞는 거 같기도 해요...주로 여자한테 파는 내용이었지만 끝에 남자 하나가 나와서 기억의 한 구석에.

흠, 소설 중에서 살짝살짝 그런 내용이 묘사된 게 은근히 있기는 하지만 매매라고 제한해놓고 보면 별로 기억에 남는 것도 많이 없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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