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에이즈 그리고 편견
[한겨레 2006-03-05 20:42]
[한겨레] 1985년 10월 2일, 할리우드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은 사건의 결과는 암담했다. 병보다 에이즈 환자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 편견과 차별이 미국 전역을 덮었다.
케이블·위성 영화채널 캐치온이 지난 5일부터 선보인 드라마 <엔젤스 인 아메리카>(매주 일 밤 12시)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심이 커져가던 1985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을 배경으로 동성애와 에이즈에 대한 편견, 인간의 이중성, 보수주의 정치를 비판한다. 1993, 1994년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휩쓴 토니 커시너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원작자 토니 커시너가 직접 극본을 맡고 영화 <졸업> <클로저>의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연출자로 나섰다. 미국 유료케이블 채널 에이치비오(HBO)에서 2003년 첫 방송된 12월 7일, 420만 명이 시청한 화제의 작품이다. 작품성도 뛰어나 2004년 골든 글로브에서 최우수작품상, 여우주연상 등 5개 부문과 2004년 에미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11개 부문을 수상했다.
에이즈 환자 역의 저스틴 커크와 벤 셍크만이 동성애자 커플을 이루고, 약물중독자 부인인 메리 루이스 파커와 성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패트릭 윌슨이 모르몬교 부부를 맡는다. 여기에 독선적인 보수주의자로 동성애를 증오하나 에이즈에 걸린 변호사 역을 맡은 알 파치노가 가세해 이야기는 세 가지 구도로 전개된다. 본래의 이야기 구조도 다중적이지만, 주인공들의 상상의 세계가 항상 동반하며 꿈과 환상, 심리묘사에 기여한다. 꿈속에서만은 자유로운 메리 루이스 파커는 남극 대륙으로 떠나기도 하고 거기에서 에스키모를 만나고 임신도 한다.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이 시리즈의 재미 중 하나는 일상적으로 내뱉는 주인공들의 말이 정치 담론 수준이라는 점에 있다. 흑인이며 동성애자인 간호사 벨리제(제프리 라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에이즈로) 죽어만 가는데. 희멀건 백인놈들이 지은 국가라고 지은 노래는 자유라는 단어를 너무 높은 음으로 잡아서 아무도 닿을 수 없게 만들었다.” 카메라는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들의 모습을 슬쩍 끼워넣는다. 미국 사회의 주류계층은 이중성과 편견을 드러내는 인물로 묘사된다. 알파치노가 맡은 변호사 로이는 시종일관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에이즈는 동성연애자나 걸리는 거지, 난 간암을 앓고 있는 거야.” 어쨌거나 위선적인 변호사에서 에이즈로 죽어가는 시한부 환자까지 연기한 알 파치노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압권이다. 아울러 에이즈 환자를 완벽하게 소화한 저스킨 커크와 상상의 세계를 오가는 약물중독자로 나온 메리 루이스 파커의 연기 또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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