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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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이 2005-11-16 00:21:04
+0 919
[질문] 오랜만에 <인앤아웃>을 다시 보았습니다. 주인공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와 영화를 다 외우고, 빌리지 피플 노래를 듣는걸 보고 친구들은 그가 게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왜 할리우드 영화나 시트콤을 보면 게이들은 다 이 가수들과 배우를 좋아하나요? 그리고 왜 게이쇼에서는 웨더 걸스의 'It's raining men'을 부르면서 춤을 추나요? 다니    
  
  [답변] 오랜만에 인사드린다. 필자 사정으로 한 달 동안 클리닉 문을 닫은 점 사과드린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여기서 사정이란 제발 안 쓰게 해달라고 사정사정했다거나 과도한 사정(?)으로 체력이 저하되는 현상 따위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해둔다. 돌아오자마자 그 동안 쌓인 메일 400여 통 중에서 독자 여러분이 보낸 귀중한 궁금증을 가려내는 작업 때문에 하마터면 다시 입원할 뻔했다. 심지어 그 중에는 "궁금한 게 있는데요"라는 제목으로 필자를 안심시켜 클릭을 유도한 뒤 "궁금하십니까? 포르노 월드컵..." 운운하며 두 주먹의 경련과 뇌경색을 유발하는 살인적인 메일도 있었다. 나쁜 넘! 결국 심약한 육신을 보전코져 새로운 궁금증을 가려내는 작업은 중도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이럴 때를 대비해 저축해 놓은 아이템 중에서 하나를 인출키로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오늘의 궁금증이다.

게이도 아닌 주제에 감히 게이의 문화적 취향을 언급하려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뭘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그러나 이럴 때를 대비해 김영삼 前대통령이 쓸 만한 말을 남겼다(웬일로?). 머리는 빌리면 된다! 그리하여 염치불구하고 저명한 게이활동가와 무명 인터넷 활약가들의 총명한 머리를 돈 한푼 안주고 빌리기로 했으니, 이하 내용 중 일자무식한 동문서답은 다 내 것이고 박학다식한 금과옥조는 다 그들 것이다. 먼저 퀴어매거진 '버디'의 한채윤 편집장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이하 바브라)에 대해서 "정설은 없지만"이란 단서를 달며 이런 해석을 내놓는다. "6, 70년대 대표적인 게이 아이콘은 주디 갤런드(<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를 연기한 불세출의 아역스타. 이후 불행한 삶을 살다 가셨다-필자 주)였죠. 그러다 8, 90년대 들어 바브라가 그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바브라가 게이도 아닌데 왜들 그러냐구요? 아마 치명적인 외모와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진 바브라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성적소수자로 배척받으며 순탄치 않은 삶을 사는 게이들이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어떤 이는 남성미가 철철 넘치는 바브라의 매부리 코가 게이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리가. 본인은 바브라가 소문난 골수 민주당원 답게 게이에 대한 지지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닌 덕분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영화판에 많고 많은 게이를(일부 사고기능이 단촐한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나 마샤 '게이' 하덴 등은 게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다 제치고 하필 바브라가 게이 아이콘이 된 까닭은 훗날 역사가 판단해 주리라 믿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자, 동네사람들(Village People) 차례다. 이들이 애초에 게이를 타겟으로 결성한 기획그룹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다(고 하는데 난 처음 알았네). 떠도는 자료를 종합해보면 70년대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 거리의 게이 바에서는 짧은 머리에 콧수염을 기르고 가죽 옷을 입는 것이 유행했고, 그런 차림의 게이들을 '카스트로 클론'이라고 불렀다. 음반 프로듀서 자크 모랠리는 당시 그리니치 빌리지와 샌프란시스코 게이 바의 마초 복장에서 착안하여 각 멤버들에게 경찰, 카우보이, 건설 노동자, 인디안, 폭주족, 군인 등의 복장을 입힌 빌리지 피플을 결성했다. 그들 노래는 하나같이 게이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준다는데 일례로 국내에서도 크게 히트한 노래 'Y.M.C.A'를 살펴보자. "와이.엠.씨.에이에 가면 아주 재미있어/와이.엠.씨.에이는 재미있는 곳이야/그 곳은 남자가 즐길 수 있는/모든 게 갖춰져 있거든/넌 모든 사내들과 지낼 수도 있지..." 이런 식이다. 한때 오비라거 CF에서 박중훈이 최종원과 이 노래에 맞춰 막춤을 추었으니 가사를 떠올린다면 두 사람 분위기 참 거시기해진다. 게다가 과년한 노인네들이 '동네사람들'의 "Macho Man"에 맞춰 댄스를 즐기는 케토톱 광고 역시 말년에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달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지난 날의 마음고생을 캐내버리고 제 짝을 찾는 유혹의 춤으로 그 의미가 화악, 달라지는 것이다.

어느새 마지막 질문이군. 날씨소녀들(weather girls)이 1982년 발표한 유명한 노래 "하늘에서 남정네들이 내려와아요~(It's raining men)"는 그 도발적인 가사 때문에 게이들의 찬가로 채택됐다는 설이 가장 그럴듯하다. 하늘에서 남자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데 "키 큰 놈, 센 놈, 거친 놈, 마른 놈...." 등 각자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도록 이 놈 저 놈 무더기로 떨어진다니 이게 하늘의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할렐루야! 게이가 사랑하는 뮤지션은 많은데, 가령 <프리실라>에서는 '아바' 노래를 줄기차게 틀어댄다. 그러고보니 모두 디스코 음악을 구사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는 디스코가 드랙퀸 쇼에 잘 어울리는 리듬이기 때문이라는 탁월한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밖에도 생수통(그 쓰임새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한)을 휴대하고(<헤더스>) 명품에 집착하며(<금발이 너무해>) 보라색을 좋아하는 자(<텔레토비>의 보라돌이)는 일단 게이로 의심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섣부른 편견은 금물. 자고로 게이든 게이샤든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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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ilm2.co.kr/community/QandA/QandA_final.asp?mkey=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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