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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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2005-06-29 18:42:12
+1 1110


화성인 지구 정복(They Live, John Carpenter, 존 카펜터, 1988)


썬글라스에 대한 영화. 여기에서 썬글라스는 계급의식의 자각을 돕는 깨달음의 도구.

존 카펜터 영화 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영화네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고 하더군요. 소설을 각색한 거라서 존 카펜터의 정치적 성향이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중간 부분에 같은 노동자 친구에게 썬글라스를 끼게 하기 위해 5분 여 동안 치고 박고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을 지리할 만큼 자세하게 보여주는 장면에서, 아마도 우린 충분히 카펜터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겠죠.

도시를 방황하는 젊은 노동자가 있어요. 그는 해고 노동자죠.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해보지만 마땅한 곳이 없지요. 그러다 찾아간 곳이 건설 현장입니다. 그곳에서 흑인 노동자와 알게 되어 빈민 거주 지역으로 함께 와서 지내게 되는데, 이 동네는 고층 빌딩 숲 사이에 박혀 있는 초라한 게토.

그러던 어느 날, 경찰들이 들이닥쳐 이 빈민 게토를 쓸어버리고 위험 분자들을 살해하거나 린치를 가하지요. 영문을 알지 못하는 주인공은 우연히 이상한 교회 안에서 썬글라스를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이 이상한 썬글라스를 쓰고 도시 풍경을 보던 그는 그만 경악하고 맙니다. 진실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일상의 눈으로 보기에 그냥 건물에 걸린 대형 광고판에 '소비하라', 또는 '구매하라'라는 메세지가 적혀 있지를 않나, 잡지를 보면 모두 '구매하라'는 커다란 글씨만 박혀 있고, 주변에 있는 모든 글과 이미지들은 '복종'과 '소비'를 종용하는 문구들이었던 것. 더욱 놀랍게도 썬글라스를 쓰고 사람들을 보게 되었을 때, 인간들과 흉칙한 몰골의 외계인들이 마구 뒤섞여 있는 게 아닌가. 정치인이란 작자들은 국기 대신 복종하라는 문구가 적힌 판넬을 배경으로 쓸데없는 말들을 지껄이는 외계인들.

주인공이 썬글라스를 쓰고 도시 풍경과 사람들을 볼 때가 바로 이 영화의 주제가 명확히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소비자본주의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 사는 부르조아들을 모조리 흉칙한 외계인으로 둔갑시키고, 평범한 시민들과 가난한 노동자들을 인간들로 묘사하는 이 썬글라스는 바로 계급의식의 자각케 하는 깨달음의 필터였던 게죠. 그래서 친구 노동자에게 이 썬글라스를 쓰게 하기 위해 그리도 몸싸움을 벌였던 겁니다. 깨달음이란 쉽지 않은 것.

외계인들의 세뇌의 시그널을 온세상에 뿌리고 있는 대형 안테나를 총으로 쏘아 망가뜨린 주인공은 이내 총을 맞고 죽게 됩니다. 세상은 어찌 되었을까요? 텔레비젼의 유명 인사들과 배우들의 모습은?

외계인 스릴러 이야기를 외피 삼은 계급사회에 대한 우화. 참 특이한 영화입니다. 자명하게도, 공포 영화는 영화적 장르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텍스트. 물론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데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어찌 보면 존 카펜터 매니아들에겐 실패작. 그의 걸작 '괴물'이나 '할로윈' 등의 완성도에는 필적하지 못하는, 이와 유사한 소재를 채택하고 있는 카펜터의 다른 영화들인 '뉴욕 탈출'이나 '저주 받은 도시'보다도 긴장도가 떨어지는.

허나 맑시즘적 도식을 전면에 내세운 앙상한 메세지 영화의 전형이랄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가 나온 때를 주목해야 할 겁니다. 88년도의 미국은 실업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실업 노동자의 계급적 자각이라는 맑시즘적 도식을 갖춘 영화를 당시에 보기는 무척 힘들었으니까요.

아무튼 여러모로 흥미로운 영화. 비디오 제명은 '화성인 지구정복'.


2005-04-07

모던보이 2005-06-29 오후 18:43

어제 밤에 올린 글을 누가 지웠군요. 헐... 지식인 군과 쪽글 놀이도 하고 그랬는데... 이건 분명 제 미모를 질투한 화성인들의 농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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