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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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토끼 2005-06-27 01:12:08
+10 558
사람들과 헤어져 술에 취한 채 비틀거리며 집으로 오던 길에 누군가 나를 부른다.

"형."

눈을 간신히 비벼 뜨며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본다. 초점 맞추는데 한참 걸렸다. 그였다. 예전에 연인이었던 동생. 머리를 빡빡 밀어선지 술 취한 눈으로 한참 초점을 댕겼다 밀었다... 3년 만인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마지막에 전화번호를 물어보길래 이렇게 대꾸하고 말았다.

"예전과 똑같아. 너는?"
"나도 예전과 똑같아."

물론 예전과 똑같겠지. 하지만 난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사정은 마찬가지. 3년 전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도 우린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나누었었다. 예전과 똑같아. 한 번도 이후에 전화하지 않았던 그 번호를 여태 서로 기억할 리 만무할 터, 그 말은 어떤 푸른 공허함으로 부옇게 에워 쌓여 있다. 예전과 똑같아.... 아마도 우린 이후로도 서로 전화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에 홍수가 날 정도로 억수같이 비가 퍼붓고 번개가 내려치던 날, 내 신발을 들려준 채 그를 엎고 맨발로 물에 잠긴 아스팔트를 첨벙거리며 뛰어가던 그 찬란히 아름다운 새벽의 장면은, 천둥이 칠 때마다 터져나오던 그와 나의 웃음소리는 그저 기억의 표면에 깊히 새겨진 암각화일 뿐.


지금, 후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5년의 장마, 시작되다.




아이스 2005-06-27 오전 02:02

가슴 아프군. 난 애인도 없었는데 이런 글 보면 가슴아파... 그래도 사랑하는게 안하는 것보단 더 낫겠지!!

무더미~ 2005-06-27 오전 06:00

미련이 많은 저로서는 누굴 잊는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더군요.
하지만 저에게는 기억할 그리고 추억할 이미지도 없어서
이런 이야기조차 부럽기만 하다는..

분명 문제 있는거죠? 저 ^^

게이퇴끼 2005-06-27 오전 06:01

3년 후에 나도 그렇게 될까? 난 지난 사람의 전번을 지우지 않거든^^ 왜? 글쎄?

게이토끼 2005-06-27 오전 06:30

아이스/언니도 언젠가는, 반드시, 기필코, 필연코, 애인이 생길 거예요. ^^

무더미/어제 월례회의에 나올 줄 알았더니. 별 걸 다 부러워하네. 기억은 늘 재구성되는 서푼짜리 판타지인 걸. 앞으로 무더미 군도 귀찮을 만큼 추억들이 많아질 거야. 흐.

게이퇴끼/분홍신에 전번을 적어놓았으니까, 잊어먹지 않는 거겠죠.

게이토깽이 2005-06-27 오전 06:53

분홍신에 전번을 적어 놓았다니 그건 무슨 소리?
그러고 보니 분홍신 보고 싶네. ㅎㅎ

지식in 知識人 지식人 2005-06-27 오전 07:50

으음! 예전과 같이 보통날들로 돌아갔지만

가끔 같이 있던 곳이라덩가 같이듣던 음악이 흐르면 나도 몰래 주르르..

몇주 전까지만해도 공중전화를 이용해서 컬러링만 듣고 끊기를..

안티지식인 2005-06-27 오전 08:56

지식인 군이 가끔 주르르 눈물 흘린다는 컬러링 노래.
http://222.122.5.18/musicdbr/0/187/h0187549.asf

아이스 2005-06-27 오후 20:12

오빠라고 불러줘... 오빠가 아니라 형인가????? 게이토끼!!

게이토끼 2005-06-27 오후 20:20

'언니'는 '형'의 옛말. 여형제에게만 단독으로 쓰인 건 기실 몇 십 년도 안 된. 게이들의 언니뜻되살리기 운동에 동참하세요. 여자든 남자든 모두에게 언니라고 부르자.

추신 :
누나라고 안 불러준 걸 고마워 하세요. ^^;;

아이스 2005-06-28 오전 05:55

그래도 난 형이 좋아^^
게이토낀 힘들겠다.
닉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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