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아담 (Young Adam, 데이빗 맥킨지, 2003)
50년 만에 귀환한 비트 세대의 울림.
'영 아담'은 'Angry Young man'의 또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앵그리 영맨 세대, 혹은 비트 세대의 소설가 알렉산더 트로키의 소설 '영 아담'을 영화화한 작품. 존 오스본의 선언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가 이들의 모토였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외려 전쟁 내내 총알을 쏟아부은 군수산업의 발전에 힘입어 자본주의의 공장은 더욱 가열차게 굴뚝을 내뿜는 가운데, 어떤 희망의 출처지도 없이 방황하던 당시의 젊은 세대들, 그들을 가리켜 비트 세대라 불렀지요. 이후 이들은 섹스 피스톨즈를 경유하며 신좌파 운동으로 편입되기에 이릅니다. 흠.... 과연 이 영화는 이 세대의 분노와 절망에 플러그인 되어 있을까요?
화려합니다. 단편을 내내 찍다가 처음 장편으로 데뷔한 데이빗 백킨지는 운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이안 맥그리거, 피터 뮬란, 틸다 스윈튼 같은 기라성 같은 영국의 보석 배우들과 작업한 걸 보니 말입니다. 성기까지 드러내면서 열연을 펼쳐 보인 이안은 물론, 부연 수증기 속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카리스마를 품어내는 데릭 저먼의 영원한 페르소나 틸타 스윈튼의 표정도 장관이네요.
기교를 부리지 않은 만듦새도 꼼꼼하고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도 보기 좋습니다. 1950년대 영국의 작은 시골 마을. 바지선에서 일하던 두 남자는 젊은 여자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실은 그 여자의 시체는 발견자 중의 한 명인 조의 옛 연인입니다. 모른 척 경찰에 시체를 넘겨주고 나서 바지선 여주인과 섹스를 탐닉하기 시작한 조. 결국 사건은 이상하게 방향을 틀어서 애먼 남자가 범죄자로 몰려 교수형을 언도 받게 이릅니다.
원작은 두 가지를 말하고자 했었을 겁니다. 속옷만 입은 여자의 시체를 놓고 성적으로 과잉되기 시작한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남자 범인을 색출해 강간살해의 판타지를 현실화함으로써 스스로 만족하고자 했던 거죠. 작가는 당대 사람들의 비틀어진 욕망을 조롱하고 있는 겁니다. 신문 가십란에 열광하며 자신들의 억압된 성적 욕망을 범죄자의 죄로 덮어씌우는 것에 대한 비웃음이 원작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첫 번째입니다. 정작 조와 약간 다투다가 여자 혼자 어이 없이 실족사한 것에 불과한 건데 말입니다.
두 번째는 섹스에 탐닉하는 조의 내면 풍경입니다. 그는 왜 그렇게 짙은 허무의 냄새를 풍기며 섹스에 강박되었을까요? 주인공 조는 실족사를 성적 범죄로 둔갑시키는 마을 사람들의 욕망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그 섹스 행위가 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스스로 실증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조소하면서, 사랑에 대한 맹세가 적힌 거울 속으로 자신의 얼굴과 하숙집 부부의 건조한 섹스 행위를 번갈아 비춰보는 조의 얼굴엔 허무가 가득하지요.
허나 이는 제 해석일 뿐입니다. 영화는 조금 더 혼미한 언어 속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범죄와 섹스의 관계를 과잉화시켜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하는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는 조의 얼굴은 너무 흐릿해서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의미가 잘 포착되지 않지요. 그게 이 영화의 단점일 겝니다. 비트 세대의 공회전하는 과잉된 자의식 만큼이나, 이 영화도 삶의 깊이에 대한 명료한 인식이 결여된 채 부유하는 이미지들 사이로 의미들이 새어나가도록 그저 방조하고 있습니다. 일테면 제가 가장 못마땅하게 본 장면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빗댄 가학적인 섹스 장면인데, 여자의 몸에 케찹과 같은 갖은 갖은 요리 재료를 뿌려놓은 채 섹스를 하는 이 가학적 장면이 진정한 허무의 울림을 주지 못하고 겉멋으로 보이는 이유는, 허무는 삶에 대해 진저리나는 표정와 분노를 질리지 않게 겹겹 쌓아 올려야 비로소 서서히 올라온다는 명제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지의 겉멋.
말이 길어졌습니다. 그래도 꽤 마음에 드는 영화입니다. 성난 얼굴이 아니라 성나 보인 척 돌아보는 얼굴일지언정, 세상에 대해 성난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뿐더러 아예 성냄을 냉소로 치환하는 쓰레기 상업영화들에 비한다면 매우 훌륭하지요. 긴즈버그와 노먼 메일러를 다시 읽어볼까요? 신산한 새벽이네요.
2005-01-05
David Byrne | The Great Western Road
'영 아담'의 메인 테마곡.
P.S
점점 더 성난 얼굴로 세상을 돌아보는 젊은 친구들이 줄어 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리기 힘든 요즘입니다. 친구사이에도 성난 얼굴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돌아보는 친구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분노를 동반하지 않는 즐거움이란 언제나 키치로 전락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