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 10년, 독립영화 10년 - 퀴어&독립장편
소수자의 욕망, 커밍아웃하다
[출처 : 씨네21]
이송희일 감독 <슈가힐>
1997년 9월 열릴 예정이었던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는 그로부터 1년 뒤,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창립한 것은 1998년 9월. 표현의 자유와 검열문제로 독립영화계가 유난히 들썩거렸던 무렵이다. 독립영화인과 동성애운동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많은 싸움을 함께했고,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었다. 물론 독립영화와 퀴어영화의 밀접한 관계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선 이러한 집단 경험 이외에 좀더 근본적인 지적이 필요하다. 영화에 뛰어든 뒤 커밍아웃한 이송희일 감독은 1997년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자극받아 첫 작품인 <언제나 일요일 같이>를 만들었고, 이 작품은 제1회 퀴어영화제와 인디포럼에서 상영됐다. “독립영화계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커밍아웃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사실. 그리고 그런 문화행사 자체가 커밍아웃하지 못한 동성애자 감독들에게 작품을 찍을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퀴어영화들에는 독특한 에너지와 강렬한 정서가 있어서 좋다”는 최진성 감독(<동백꽃 프로젝트> 중 <동백아가씨> 연출)은 “독립영화의 존재 이유가 주류에서 얘기하지 않은 것들을 자유로게 표현하고 싶은 욕망과 연결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커밍아웃 이후 퀴어영화 작업을 계속하는 독립영화 감독은 이송희일 감독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경직된 시선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것은 ‘퀴어영화는 동성애자만이 찍을 수 있다’거나 ‘이성애자는 퀴어영화를 찍을 수 없다’는 편견이다. 그런 면에서 2004년은 독립영화 내 퀴어영화의 미래에 대해 조심스럽게 낙관할 수 있는 한해였다. 게이커뮤니티에서 이송희일 감독을 알게 된 뒤 영화 작업을 함께해왔던 소준문 감독이 <동백꽃 프로젝트> 중 <꿈꾸는 섬>을 만들고, 김경묵 감독은 자전적인 다큐멘터리(<나와 인형놀이>)를 통해 커밍아웃했다. 이성애자 감독이 퀴어코드를 적극 차용해 매력적인 멜로영화를 완성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개인작업을 준비 중인 소준문 감독은 “주변에서 동성애자 스스로 열광할 수 있는 발랄한 영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화적 상상력을 내세워 밝은 퀴어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퀴어영화 제작의 토대가 되어준 독립영화의 자유로운 정서가 이제는 퀴어영화가 특유의 매혹과 활력을 발산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소준문 감독 <떠다니는, 섬> 이송희일 감독 <굿 로맨스>
<굿 로맨스>의 이송희일 감독
“한국 퀴어영화, 아직 갈 길 멀다”
-<굿 로맨스>에 대한 관객 반응은 어땠나.
=남자들은 이해를 잘 못했고, 여자들은 굉장히 좋아했다. 돌이켜보면 내 영화는 계속 그랬다. 퀴어를 찍어도 게이들은 별로 안 좋아하고, 멜로를 찍으면 남자는 안 좋아하고. 남자 캐릭터가 수동적으로 그려지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첫 영화 <언제나 일요일 같이>가 1998년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에서 상영된 지 7년이 지났다. 막상 커밍아웃해 퀴어영화를 지속적으로 찍고 있는 감독은 별로 없다.
=게이, 레즈비언 감독들은 커밍아웃이 두려워서 퀴어영화를 찍지 않으려 하고, 이성애자 감독들은 자기검열이 심해서 퀴어영화를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성애자이면서 퀴어영화를 만들어도 되나, 라는 생각 말이다. 영화를 찍기 전에 퀴어영화를 함께 찍을 스탭을 모은다고 해도 다들 피하는 분위기다. 아직 아무리 독립영화라지만 커밍아웃을 하고 본격적으로 퀴어영화를 찍는 것은 많은 각오가 필요하다. 지난해에 <동백꽃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도 친구사이 10주년 기념행사를 위한 영화제를 준비하던 중 ‘반찬이 너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원래는 게이, 레즈비언 감독들이 모여 옴니버스영화를 만들려했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없었다. 워낙 그런 걸 신경 안 쓰는 스타일이고, 평소에 퀴어영화를 찍고 싶다는 말을 계속 해왔던 최진성 감독이 이성애자임에도 참여하게 됐다.
-지금은 이성애자들도 동성애코드를 적극 끌어들여 영화를 만든다.
=<순흔>이나 <원더풀데이> 같은 영화는 퀴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퀴어멜로였다. 하지만 퀴어영화가 동성애인권운동과 맞물려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던 외국에 비하면 한국 퀴어영화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유난히 당신의 영화에선, 퀴어영화 하면 연상되는 동성애의 매력적인 묘사가 없다.
=할 얘기가 남아 있는데, 행복한 척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게이든 이성애자든 내 영화를 통해 좀더 불편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장편 준비 중인 <굿 로맨스>는 얼마나 진행됐나.
=계속 캐스팅 중이다. 현재 <굿 로맨스>의 제작사인 청년필름에서 또 다른 디지털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 본격 퀴어멜로에 계급적 주제를 곁들인 영화다.
출처 : 다른 독립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cine21.com/Magazine/mag_pub_view.php?mm=005001001&mag_id=30972
p.s
생각해 보니, 섬에서 찍은 '동백 아가씨'를 제외하고 제가 찍은 퀴어영화들엔 항상 친구사이 회원을 비롯한 게이 친구들이 '엑스트라'로 출연했었네요. 춤샘, 만리녀 등. 물론 모두 모보수에다 저한테 음료수 협박을 받긴 했지만. 독립 장편 영화가 현실화될 경우, 이번에는 꽤 많은 엑스트라들이 필요하게 될 것 같은데, 회원들 많이 괴롭혀야겠네요.
뻔뻔하게 광고 하나
지금 인디포럼에서 위에 언급된 '굿 로맨스'가 상영 중입니다. 한 회는 지났고, 두 번째가 일요일 날 상영되네요. 퀴어문화축제랑 겹치나요? 다행히 12시에 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합니다. 1시 쫌 넘어서 끝나고요, 영화 보고 퍼레이드 할 시민 공원에 와서 아는 체 하시면 '춤샘'을 공짜로 드립니다.
영화제 시간표
http://www.indieforum.org/2005/board/forum_view_main.php?id=2005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