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1
2004-11-16
롤랑 바르트는 '기호의 제국'을 통해 일본을 기호의 왕국으로 등극시키는데 성공한다. 일본 도처에 포진되어 있는 다양한 기호들의 얼개는 기호학자 바르트를 단번에 매료시켰고 그는 '기호의 제국'에 특히 '젓가락'을 등장시켜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거듭하고 있다.
포크 문명권에서 건너온 지식인의 눈에 비치길, 젓가락은 참으로 신통방통한 물건이다. 잘게 나누어진 음식물을 집기에도 안성맞춤인데다 형체도 없는 국물 건더기를 건져먹는데도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젓가락은, 칼로 뭉턱뭉턱 썰은 고기를 찍어대는 포크와 전혀 딴판으로 우아한 기호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채소면 채소, 고기면 고기 대체적으로 형체가 보존된 서양 음식과 달리, 형체들이 잘게 부서지거나 다른 모양으로 변화되는 동양 음식들을 놀라운 재치로 집어내는 젓가락이야말로 '텅 빈 기표'의 리듬과 움직임에 충분히 견줄 수 있는 미덕을 갖추고 있는 셈.
인류학적 센스는 비록 없지만 롤랑 바르트의 젓가락 예찬론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엘리아스에 따르자면 포크문화는 서구 문명사를 압축하는 가장 훌륭한 예제다. 고기의 형체가 점점 작아지거나 분해되는 과정은, 정확히 식탁 위에 놓인 손잡이가 달린 칼에서 포크로의 변화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피가 뚝뚝 흐르는 덜 익은 통구이 고기를 무식하게 칼로 대충 썰어서 먹던 서양인들은 점점 스테이크처럼 고기를 분해하면서 포크를 사용하게 되는 바, 엘리아스는 바로 이 변화 과정이 '문명화 과정'임을 웅변한다. 한때 포크를 사용하는 것이 교양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했었다.
반면, 육식문화보다 농경문화가 발달한 동양에선 채소와 쌀 등의 먹거리를 먹는데 가장 적합한 식기들을 사용하게 되는데 바로 '젓가락'이 그것이다. 기다란 젓가락으로 기름진 음식을 먹는 중국이나 수저와 젓가락을 함께 사용하는 한국에 비해, 일본은 해초와 생선류 등의 음식이 많은 탓에 길이가 짧고 끝이 정교하게 날카로운 젓가락 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서양이든 동양이든, 점점 문명화 과정을 겪게 되면서, 또 식탁 위에서 생식을 하거나 피가 흐르는 고기를 직접적으로 썰지 않게 되면서, '도축 과정'이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과정을 동일하게 밟았다. 도축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그것들은 대부분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면서 우리의 배설물을 더 이상 보지 않은 거와 마찬가지로, 점점 더 교양과 문명화의 과정은 우리의 삶에서 소위 야만적으로 통칭되는 일련의 섭생 과정을 분리시켜내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백정들은 항상 버림받은 계급이었다.
젓가락, 형체없이 분해된 음식물 사이를 재치있는 몸짓으로 헤집고 다니는 현대 사회의 젓가락은, 바로 삶의 직접성을 배제한 대가로 우리가 얻어낸 텅 빈 기표의 우아함인 것이다.
젓가락2
추운 새벽에 갑자기 왠 젓가락 타령이냐면, 밥을 먹으려다 문뜩 젓가락이 딱 세 개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많던 젓가락이 다 어디 간 걸까? 그 중 몇 개는 중국집 배달 그릇에 함께 담겨 사라졌다고 해도 수십 개가 되던 젓가락이 대체 어떤 이유로 사라지게 된 걸까? 이젠 젓가락이 정말로 딱 세 개다. 누군가 손님이 오면, 그 사람은 젓가락 하나로만 밥을 먹을 수밖에 없게 된 것.
혹시 우리집에 왔던 남자들이 나를 사모한 나머지 젓가락이라도 증표로 남기기 위해 가져간 것은 아닐까? 이건 좀 야유 받을 내 혼잣장단이군. 그럼, 혹시 북부경찰서에 젓가락 실종 신고를 하면 대충 몇 대나 맞을까? 좀 아프겠지? 암튼 아햏햏한 새벽의 점심 시간을 대충 끝내고, 생각난 김에 몇 자.
2005년 5월 6일 새벽
젓가락이 딱 하나만 남아 있어, 밥을 먹기 위해 어디론가 사라진 젓가락 하나을 찾느라 엉덩이를 들썩이며 부엌을 한참 돌아다녔어요. 결국 찾아냈지요. 가스렌지 아래쪽에 얌전한 고양이처럼 들어가 있더군요.
남는 젓가락 있으면 적선들 좀 하시요. 아니면 나한테 시집이라도 올 때 젓가락 세트를 들고 오던지.
이거야 원...
호홍,~
호홍,~ <------ 이거 이제 별로 재미없소.
탁탁, 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