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프리즘]TV 성소수자 풀어가는 방식, 경쾌해졌다
[헤럴드 생생뉴스 2005-05-04 09:32]
TV 드라마에서 성소수자를 풀어가는 방식이 세련돼 간다.
퀴어(Queerㆍ성소수자)코드를 시종 무겁게 다루던 TV가 성소수자의 문제를 훨씬 경쾌하게 풀어가고 있다.
최근 방송된 MBC 연작드라마 ‘떨리는 가슴’은 성소수자의 외피보다는 본질에 접근하면서도 그 방식은 심각하지 않다.
트랜스젠더임을 밝히지 않고 헬스클럽 강사로 취업했다가 해고를 당한 후 재취업하는 과정이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지만, 그 처리 방식은 결코 어둡거나 과장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리수가 자신있게 “트랜스젠더 강사 김혜정입니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수강생을 지도하는 결말은 오히려 유쾌하고 상쾌하며 통쾌하다. 하리수가 맡은 트랜스젠더 역은 그녀를 연기자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만든 캐릭터이기도 하다.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게이 캐릭터를 지닌 ‘켠’(이켠 분)은 전혀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 외양을 지녔다. 아무리 시트콤이라지만 소년성과 청년다움의 기묘한 조화가 귀여움이라는 호감도로 수렴되는 게이는 대중문화에서는 처음 등장했다. 중년 여성 안성댁(박희진 분)의 구애공세에 시달리는 켠은 커밍아웃하기 전에는 귀엽고 멋있는 메트로섹슈얼이다.
켠과 비디오가게 청년과 나누는 “당신에게서 왠지 사나이가 느껴지는데, 우리 친구할까?”라는 대사, 엘리자베스가 켠에게 “넌 남자가 너 보고 웃는 게 좋아?”라고 말하자 켠이 “응, 난 다정한 게 좋아”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동성애 코드를 심각하지 않게 처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동안 지상파 드라마에서 성소수자는 주로 연속극보다는 실험정신이 강한 단막극에서 다뤄졌다. 대다수가 일반인과는 다른 성 정체성 때문에 겪는 성소수자의 사랑과 아픔을 주제로 표방한다.
하지만 게이의 묘사는 압축과 생략과 여운으로 일관하는 데 반해 레즈비언은 좀 더 직접적인 감정표현과 직설적인 대사로 채운다. 이는 동성애가 표현과 영역의 확대보다는 소재 경쟁의 희생양이라는 의미다. 우스꽝스러운 행동이나 말투, 과잉된 성적 이미지도 실제 동성애자와 거리가 멀었다.
트랜스젠더를 다룬 드라마는 거의 없었고, 동성애 드라마는 대체로 배신과 질투, 증오의 과정을 거쳐 죽음, 도피, 자살의 비극적 결말로 끝났다. 소재는 파격적일 수 있어도 결말은 도발적일 수 없는 우리 드라마의 한계였다. 아무리 극이라 해도 이런 내용들은 동성애자들을 극단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성소수자를 다루는 드라마는 대부분이 성다수자 시각에서 성소수자를 대상화하고 정형화해왔다. 이런 드라마를 접하면서 공연히 조바심을 갖는 것은 우리가 지닌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탓이다. 성소수자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전복적이라고 느끼는 시기는 지났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지상파 TV가 이 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만도 ‘문화의 다양성’ 차원에서 다행한 일이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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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 당신에게서 왠지 사나이가 느껴지는데, 우리 친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