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다 극장이라...
밑에 있는 어느 분의 글을 보니, 오래전 일이 기억나네요.
나이가 좀 차고나서 종로의 P극장이라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조심스럽게 파고다 극장 근처까지 가서 맴돌다 돌아가기를 몇 번...
(여담이지만 종로 P극장이 피카디리 극장인줄 알고 엉뚱한 곳에 갔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만큼 정보가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결국은 용기를 내어 들어가서는,
좋았던 기억 하나도 없이 나와서는,
다시는 오지 않겠다 다짐하고 몇 달 지내다가,
또 같은 일을 반복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남자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어두침침한 극장에서 만나 모르는 사람들과
원치않은 관계를 갖는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때였습니다.
좋은 기억이 있을리 없겠죠.
하긴 그 때는 핸드폰도 없었던 시절이라 전화번호를 교환할 엄두도 내지 못했겠죠.
집전화를 알려줬겠습니까. 회사전화를 알려주겠나요.
그러니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만나는 관계를 맺을 생각도 못했죠.
그때 제가 원하던 것은
자주 만나 영화도 보고 놀러 다니는, 연애하는 것 같은 그런 관계였으니까요.
같이 몸을 섞는 것은, 다만 그 행위만으로 만난다는 것은. 뭔가 좀 아니다 싶었고.
결국 자기모멸감과 나는 어쩔수 없다는 자괴감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이제는 동성애를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습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행위는 그만둘 수 있어도 존재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인데 말이죠.
대략 80년대중반부터 90년대초까지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후 제가 지내온 얘기는 (코러스 단원들에게) 이전에 이야기했던 그대로입니다.
제가 어렸던 시기에도 인터넷이라는 곳이 있었고
게이의 자긍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본받고 싶은 역할을 보여주는 선배를 만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겠죠.
불과 몇 년 사이에, 많은 것이 벌어졌구나 싶네요.
친구사이같은 성소수자 인권단체가 왜 있는지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서로 만나 이야기할 친구가 왜 필요한지
동성애자 청소년 인권운동이 왜 그렇게도 중요한지
저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이라면 그만큼 분명히 알고 있겠지요.
ps. 그냥 넋두리였습니다.
그 시절의 아픔이나 세대차이 얘기 아닙니다.
오바하는 답글 사절합니다.
그리고 저 그렇게 나이 많지는 않습니다.
30대중간에서 조금 넘었습니다.
너무 옛날얘기처럼 들린다면
아마 데뷔가 조금 빨랐던 거겠지요. (너무 빨랐나?)
중간에 휴지기가 무지 길어서 지금은 초보나 다름없습니다.
무슨 애인 구하는 글처럼 마무리가 되네요.
뭐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저는 먼사모(먼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대표, '먼데이'입니다.
먼데이 오기 전에 푹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