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반듯한 사람'이었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팻말이 적혀 있을 경우 어떤 일이 있어도 잔디밭에 들어가지 않으며, 버스에서 내릴 때는 꼭 뒷문으로 나와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앞으로 내리라고 윽박지른 버스 운전사와 그 자리에서 버스를 세운 채 서너 시간을 싸울 정도로 고집이 있는 사람이었다. 알튀세와 에티엔 발리바르가 망해버린 소련 사회에서 전염된 징후적 대안 부재의 정세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인 양 몇 번이고를 줄쳐가며 독해하던 사람이지만 누군가의 부탁을 도저히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성정이 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후 집회 플랭카드를 옥상에서 내걸다 바닥으로 추락한 후, 그는 조금 더 섬세해진 것 같았다. 그녀의 짝사랑은 'IS'였다. 전혀 우리에게 개인적 신상이 드러나지 않았던 국제사회주의 그룹의 멤버였던 그녀를 우린 모두 '그녀 IS'라고만 불렀다.
이 소심한 청년은 96년의 겨울을 통채 향수를 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보냈다. 자신의 짝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예쁘게 포장된 향수 하나를 사서 그녀의 집 앞을 겨울 내내 파수견처럼 지키고 있었던 것. 하지만 결국 그 외사랑은 겨울이 끝나면서 실패로 마감되었다.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그가 겨울 끝 무렵의 어느 술자리에서 눈물을 보였던 것도 같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으며 소개로 만난 어느 여자와 결혼했다. 우리가 달라고 졸랐던 그 겨울의 향수의 행방은 어찌 되었는지...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든 모양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나 역시 대령의 편지를 꼬박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처럼 추운 겨울 내내 누군가의 집 앞을 서성거리기도 했었다. 느닷없이 새벽에 택시를 몰아 지방까지 달려가 그 도시를 샅샅 뒤져 토라진 애인을 찾아내 무릎을 꿇는가 하면, 한밤을 골목 안에 구겨진 채 허옇게 지새면서 무턱대고 입깁을 토해내며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령의 편지는 오지 않는다. 그 삶의 단순한 이치를 점차 터득하면서부터는 '예스, 오어 노'의 명쾌한 이분 논리로 애정 문제를 쉬이 정리하기 시작한 듯하다. 그래서 내가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대부분 돌아오는 답은 '노'. 짐은 빨리 정리하는 게 좋고 마음 벽에 정념의 이미지들이 도배되기 전에 얼른 방을 비워주는 게 좋다. 그래야 상처를 덜 받는다는 걸 이제서야 느릿느릿 주워 섬기고 있는 것이다. 오지 않는 편지를 위해서 우편함을 떼어내는 것도 잊지 않으면 안 된다.
하긴 이렇게 비겁해도 되는가 싶긴 하다. 사랑의 광기를 가둬놓은 우리의 자물쇠를 늘 새롭게 갈아 끼워넣는 이 생의 비겁함 말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그래서 연애를 못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상처를 덜 받는 연애 쪽으로 기우는 그런 나이듦이 역력한 퇴색의 계절 속으로.
후후... 발톱을 스스로 깎는 짐승은 하긴 역설의 이미지다. 언젠간 또... 뛰어라, 로두스 섬이다! 2004-12-20
Rene Aubry | Le V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