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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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in 2004-12-12 08:54:45
+2 561
어릴 때는 세상이 죄다 내 마음대로 되는 줄 알았다.
(또 누구나 그렇듯이) 내가 모든 것을 아는 줄 착각했다.
이렇듯 지나친 낙관론과 우쭐해 있던 자만감은
대학 입학 후 객지에 살면서 여기저기에 부닥치며
처절하게, 혹은 부드럽게 깨지면서 변화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성숙이나 겸손함을 끌어안은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살다보면, 내가 참 욕심이 많구나 징그럽게 확인할 때가 있다.
내가 유독 잘 되어야 한다는 무리한 욕심,
온갖 욕망으로 꿈틀대는 나의 분주한 삶,
그 속에서는 재미있게도 타인이 들어설 틈이 궁색하다.

올해는 여러 가지 일들이 나의 욕망을 배반했다.
일이 반복돼서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우리는 그런 상황을 ‘설상가상’ 또는 ‘재수가 옴 붙었다’ 식으로 부른다.
좀 확대해서 ‘나는 참 복이 없는 불운한 사람’이라는 식으로까지 확장하기도 한다.

운이 좋아야 된다는 바람도,
인간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그려놓은 이상적인 지표이다.

(나의 경우엔, 새해에 소망을 빌듯이
성적이 잘 나와서 장학금도 타고
알바도 잘 굴러가서 용돈도 비교적 여유롭게 쓸 수 있고
좋은 사람과 행복한 연애도 해보고
또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들과 두루 잘 사귀고 싶다는 등의 바람을 갖는다.)

그러나 막상 일이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여러 가지 푸념과 짜증을 늘어놓으면서 신경질을 내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우울함에 빠지는 것이다.

내가 올해 찾고 싶었던 대답은
‘난 행복해져야 한다’는 상황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올해 한해처럼 일상이 거칠게 굴러갈 수도 있는 법이다.
그게 꼭 나쁜 것도 아니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다.

연거푸 과외가 잘려서 밥줄이 위태로울 수도 있고
성의 있게 준비한 발표 후 잔뜩 꾸중들을 수도 있고
절친한 친구들과 오해가 생겨서 틀어질 수도 있고
애인을 사귈 수 없어서 성탄절이나 연말이 다가오는 게 두려움으로 엄습할 수도 있다.
또 때로는 혼자서 하루 종일 아무도 찾지 않는 호젓한 방에서
자학을 섞어서 소주를 들이킬 수도 있다.
혹은 노력한 시험에서 아깝게 낙방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은 사실 원인을 찾을 필요도 없을 만큼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평범한 일이다.
그 따위에 호들갑을 떨며 불평을 늘어놓았던 내 욕망이 컸을 뿐이다.

‘극기’라는 단어가 있다.
극기, 자기의 능력을 초인적으로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나같이 나약하고 평범한 게으름뱅이에게는 감히 어울리지 않을 법한 단어이다.

하지만 새해에는 ‘극기’를 많이 되뇌고 싶다.
새해가 되도 올해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삶은 여전히 지리멸렬하고 지지부진할 것이므로.

물론 내가 열정을 발휘할만한 일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좌절이나 상처라는 말도 섣불리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상처는 상처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받기 마련이고
절망은 간절히 희망을 품었던 자들의 이율배반적인 귀결일 것이다.

행복과 절망을 동시에 바라지 않는다는 점 또한 극기이다.
물론 그 안에는 냉소 어린 체념이 웅크려 있다.
그렇지만 극기를 통해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클 것 같다.


물바람 2004-12-12 오후 19:39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면서 정신적 성숙을 이루지 않을까요 인간이라면 모두다
누구에게나 좋은일 나쁜일 (달리 생각하면 특히 좋은일도 아닌 나쁜일도 아닌)생기
지 않겠냐는 것 깨달으신 것 같은데, 왜 자신의 삶이 지리멸렬하고 지지부진할거라 생각하셔요 그러지 마세요 후후

라이카 2004-12-12 오후 19:52

체념이 바라시는 극기라.. 좀 씁씁하네요.
힘 내십시요. 아직 올해도 20여일 남아 있고 해가 바뀌어도 의지만 꺽이시지 않는다면
올 해 목표하셨던 것들을 고스란히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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