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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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개원을 마주하며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있는 지난 5월 28일 국회에 일정이 있어 간만에 다녀왔습니다. 당일 뉴스 헤드라인은 ‘채상병 특검법’ 부결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주요 법안들이 21대 국회 안에서 소관 상임위 내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폐기되었습니다. 매 국회마다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꼬리표를 달고 마감하는 이유는, 사회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정말 시급하고 중요한 법안들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폐기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을 먼저 이야기하면, 21대에 4가지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2021년 ‘차별금지법 제정하자! 10만행동!’ 국민동의 청원이 5월 25일 청원 조직을 시작하여 22일 만에 10만명을 달성했었죠. 그리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평등길, 겨울 농성과 이어서 2022년 4월 제정 평등텐트촌과 단식투쟁을 이어갔지만, 법사위의 법안심사 소위 내 논의만 이어졌고, 법사위 내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정치의 실패였고, 국회가 평등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갈 것이라 기대했던 시민들의 염원을 끝내 외면한채 법안은 폐기되었습니다.
2023년 5월 31일에는 가족구성권 3법이 발의되었습니다다. 혼인평등법(민법 일부개정법률안), 생활동반자법(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 비혼출산지원법(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3개 법안이 발의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이 가족구성권 3법은 가족형태에 따른 다양한 차별을 해소하고, 모든 형태의 가족이 마음껏 사랑하고 돌봄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장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생활동반자법 논의는 동성혼 법제화로 이르는 길이라며 제도 자체에 대한 법조인로서의 입장보다는 차별과 혐오, 선동 정치에 부응하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21대 국회 말 5월 20일에는 ‘성별의 법적 인정에 관한 법률안(‘성별인정법’)’이 발의되었습니다. 애초에 2023년 11월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에 맞추어 발의 예정이었으나, 발의를 위한 정족수 미달로 이루어지지 못하다 5월 20일에야 장혜영의원 대표발의로 발의되었습니다. 국회 회기 말의 발의었지만, 성별정체성에 따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는 사회구성원의 권리를 드러내는 법이 발의된 것이 중요한 의미일 수 있겠습니다.
2021년 용혜인 의원을 중심으로 발의된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안 등 성소수자 관련 입법 과제가 이렇게 21대 국회에서 중요한 역사를 만듦과 동시에며 폐기되었습니다. 발의에서 제정으로 이어가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지만, 그것을 정치의 책임으로만 짐지우기 전에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장벽에 대한 분석도 더 필요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동력을 잘 만들어 내기 위해, 변화를 위해 어떠한 전선을 만들어 내야 하는지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정권심판의 프레임으로 진행된 지난 총선으로 인해 22대 국회가 거대야당과 윤석열 정부와의 끝없는 대치 국면으로 이행된다면, 결국 소수자들의 권리 문제는 도대체 누구와 이야기할 수 있을지가 답답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가 싸움을 걸어야 할 것은 차별 혐오 선동세력의 정치에 부응하고 침묵하고 있는 거대 정당들과, 사회재생산의 위기에 대해 아무런 대책 없는 윤석열 정부일 것입니다. 입법과제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 이러한 싸움의 전선을 만들 수 있도록 평등을 요구하는 세력들의 분명하고 뚜렷한 조직과 세력화를 겨누어야 할 때입니다. 22대 국회는 이전보다 좀 더 치열한 싸움의 전선을 형성하면서 정치와 맞서야 할 것입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 이종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