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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호][칼럼] 남들 사이의 터울 #7 : 섹스할 때는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2024-05-30 오후 16: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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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5월 

 

[칼럼] 남들 사이의 터울 #7

: 섹스할 때는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2024년 제77회 칸 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배우 메릴 스트립은 1967년 여대인 배서 칼리지(Vassar College)에 입학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설립된 여자대학이었다. 명실공히 최고의 여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2010년, 그녀의 나이 예순 되던 해에 그녀는 모교와 비슷한 위상을 지닌 바너드 칼리지(Barnard College) 여대의 졸업식 연설을 했다. 이들 대학을 포함해 미국 북동부에 위치한 아이비리그급 일곱 개의 여자대학을 일컬어 한때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라 불렀다. 이들 대학 중 여자대학 체제를 유지한 5개 여대는 2014~2015년 사이에 차례로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허가했다. 

 

바너드 칼리지 졸업식 연설에서 그녀는 여성으로 살아온 자기 인생을 자신의 연기론과 연결지어 설명했다. 메릴은 비단 배우가 아니라도 내가 아닌 어떤 사람인 척하는 연기란 여성에게 매우 익숙한 일이고, 그것이 몇천년 동안 활용돼온 여성의 생존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 식습관, 옷차림, 내면의 마음가짐 등을 남자들에게 예뻐보일 수 있게 꾸미려 애썼는데, 그것이 돌이켜보면 자신이 처음 시도해본 캐릭터 분석이라고 회고했다. 그렇게 남자 눈에 들기 위해 스스로를 연기하던 습관은, 그녀가 여대에 진학하여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후에야 그녀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그 때 메릴은 마치 자기를 되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매력적인 사람을 연기하던 나 또한 자신의 일부로 남아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21세기 개명천지에 여대가 굳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다. 누군가에게 예뻐보일 것이 강제되는 환경에 평생토록 노출될 사람들에게, 그런 환경으로부터 다문 몇 년이라도 벗어나 그것과 다른 나 다른 삶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사람 인생은 남에게 섹시한 나로 팔리는 것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메릴은 스스로 어떤 사람인 척하는 연기란 그저 놀이가 아니라,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내 삶의 범주를 구획짓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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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학부생 시절 선배들에게 주워들은 팁이 떠오른다. 20대 초반에 너무 열심히 연애하지는 말라는 얘기였다. 그 시절엔 그 때만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그 때 연애에 푹 빠지면 그 숱한 걸 자칫 놓치고 지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좋아하는 사람 만나 손잡고 키스하고 서툴게 섹스하고, 서로의 몸과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는 일은 인생에 둘도 없는 지고의 재미다. 그것이 너무 재밌기 때문에, 때로는 인생을 풍요하게 만들 다른 재미들이 그로부터 지워질 수 있음을 염려한 말이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 필요한, 삶의 재미 체계에 필요한 순지르기같은 일이다. 순지르기란 작물을 기를 때 맨 꼭대기의 순을 잘라 아래 포기의 순이 더 풍성하게 나도록 만드는 재배 기술이다. 특히 덩굴이 뻗는 채소의 경우 이걸 해주지 않으면 맨 꼭대기에 양분이 빼앗겨 그쪽 열매만 커다랗게 자라고, 아래쪽은 제대로 열매가 안 달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니 제일 큰쪽 순을 잘라줘야 장차 더 많은 가지가 자라고 거기에 더 많은 꽃과 열매가 맺히게 된다. 

 

순지르기를 못한 채 인생의 특정 부분에만 경험치가 쌓이는 경향은 비단 남녀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 위험에는 주로 여자 쪽이 더 많이 노출된다. 자신의 매력 자원을 활용해 경제적으로 안기고 싶단 뜻으로 여자 쪽에는 '취집'이란 말이 있지만 남자 쪽에는 그런 말이 적은 데서 알 수 있다. 나아가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들은 그런 유혹에 더욱 적극적으로 노출된다. 동성애자의 연애와 섹스는 대체로 환영받지 못하고, 그런 그들은 연애와 섹스가 모처럼 환영받을 수 있는 특정 지역을 찾아 그곳에 모여든다. 거기서의 구애와 플러팅과 성적 활력은 과연 적극적이다. 적잖은 사람들은 오늘만큼은 여기서 한번 팔려보리라는 기대 속에 그곳을 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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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태원이 성애화된 공간이란 얘기는 따라서 비단 남들이 까려는 것을 넘어 거기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내면화한 진실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진실로 자기가 누군가의 성적 대상이 되길 꿈꾼다. 성적 대상화란 성적 대상이 되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비인격화되는 일을 뜻한다.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지만, 남자를 만나 모텔에 가서 박고 박히고 빨고 빨리고, 그렇게 상대를 향한 물건이 되어보고 내 물건이 되겠다는 상대를 안아보는 일은 즐겁다. 사실 섹스의 즐거움 중 반절이 합의 하에 주의깊게 구사되는, 사람임에도 서로를 한번씩 물건으로 다루어보는 바로 그 재미다. 물론 그 때의 즐거움과 판타지가 인신매매나 방치플로 인한 죽음이나 동의되지 않은 약물 투여를 통해, 잠깐의 재미가 아니라 그야말로 물건에 값하는 신세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거듭 조심해야겠지만.

 

게이 동생을 둔 어떤 누님의 말이 기억난다. 자기는 평생 스스로 성적 대상화되지 않기 위해 싸워왔는데, 왜 내 동생은 그리도 성적 대상화되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는 얘기였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남·여 젠더 위계와 이성애자·동성애자 섹슈얼리티 위계의 교차를 예리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에겐 세상에 공기처럼 만연해 부디 그것을 벗어나야지만 인간다움을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은 섹슈얼리티의 세계는, 어떤 사람에겐 그것의 부재가 마치 진공 상태와 같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성애화의 질서에 한번 발담가보는 것이 소원이고 과제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종태원에서라도 힘껏 팔리고 싶은 욕망은 그 자체로 그렇게까지 걱정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곳 바깥이 동성애와 항문섹스를 어떻게 여기는지 안다면 거뜬히 이해해볼 만한 몰입이다. 합의가 충분하다면 그토록 소원이었던 성적 대상화도 이곳에서 한번 마음껏 즐겨봄직하다.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유서깊은 문구를 떠올린다면, 문제는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 혐오다. 종태원에서의 연애·섹스에 대한 몰입은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 혐오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따라서 성소수자의 섹스는 적어도 남들이 욕하는 것만큼 그렇게 문제있지는 않다. 문제가 있다면 되려 섹스 외 인생의 자원이 성소수자에게 너무 없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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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어렸을 때, 섹스할 때만큼은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뭐 섹스조차 능숙하지 못한 것보다는 그거라도 능숙한 편이 윗길이기는 하다. 실제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벗겨놓고 물빨하다보면 그것으로 서로 평등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것 또한 일정 부분 '물건되어봄'의 재미다. 물론 그 재미가 끝나고 나면, 벌거벗은 어른에서 다시 옷입은 애로 여지없이 돌아온 자기를 보게 되겠지만.

 

평등이라는 말은 취소해야겠다. 성매매가 아닌 파트너링으로서 섹스 마켓에는 다양한 불평등과 위계 구조가 존재한다. 벗고 섹스할 때 써먹기 좋은 예쁜 얼굴과 좋은 몸과 자지 크기에 따라 그 피라미드의 등급은 첨예하게 갈린다. 섹스에 몰입된 커뮤니티이므로, 그 중에는 얼굴 반반하고 몸 좋은 걸로 인생을 날로 먹으려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생긴다. 사실 타고났든 애써 만들었든 가진 게 있으면 그걸로 좀 날로 먹겠다는 게 아주 나쁠 까닭은 없다. 문제는 그게 그리 길게 가지는 못한다는 데에 있다. 

 

어딜 가나 똑똑한 사람은 있기에, 섹스하기 좋은 준수한 조건을 갖춘 이들 중에서도 앙큼상큼하게 남자한테 팔리는 것 외에 자신을 가꾸고 직업적 영달과 삶의 풍요를 용케 거머쥐는 경우들도 있다. 동시에 모두가 그리 똑똑할 수는 없기에, 남자한테 팔리는 지금의 내가 영원할 줄 아는 채 세월을 길게 보내는 이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인생에 필요한 여러 스탯들 중 오직 팔리는 부분만 과성장해 튀어나와있고 나머지가 바닥인 경우를 종종 본다. 섹스와 플러팅은 기가 막힌데 그 나머지 처신이 아무리 봐도 황망한 경우가 그렇다. 

 

그런 불균형 성장을 스스로 깨닫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게이커뮤니티 바닥에 소위 팔리는 스탯에 대한 각광이 때로는 지나치게 눈부신 나머지,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는 남을 통해 나를 알아챌 기회를 체계적으로 잃기 때문이다. 이 바닥에 너무 예쁜 이들이 연령에 걸맞는 사회성을 갖추기 힘들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마치 여대 안 가고 일반 대학에 진학했다가, 새내기 시절 나 좋다는 남자를 만나 연애와 섹스에 에너지를 온통 써버린 다음, 그 시절에 보고 겪었을 무언가를 그새 놓쳐버린 여학생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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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생의 관성은 남으로부터 명분이 주어질수록 오래 유지되고, 그로부터 삶에서 필요한 성찰의 기회를 종종 빼앗아간다. 섹스가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 삶을 창안하고 그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섹스에만 몰입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가 무얼 거머쥐고 있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한번쯤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게이커뮤니티 안팎에 만연한 성적 엄숙주의와도 다르고, 우리 뜻대로 동성애를 끝내 포기하라는 혐오세력의 '말씀'과도 다르다. 소수자가 제일 비참해지는 순간이 살면서 내 진심과 성찰을 남들에게 속절없이 전유당하는 것이다. 

 

때로 즐겁기 위해 기꺼이 물건이 되는 내가 비로소 안전하기 위해, 그런 연후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자아상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팔리는 나 외에 다른 자아가 있는 편이 긴긴 인생을 사는 데 필수적이다. 물건도 상품도 내 허락 하에 가끔 되어보는 것이 즐겁지, 계속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사는 건 안 재밌다. 섹스하는 나를 포함해 스스로를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야말로, 우리는 동성연애자가 아니라 동성애자라던 예전 활동가들의 마음과 연결된다. 졸업식 연설 말미에 메릴 스트립은 이렇게 말한다. 내 안이 단일하다고 믿게 만드는 연기와는 달리, 내 안의 풍요함과 세상의 풍요함을 몸소 느낀 후의 연기는 나의 영혼을 열어준다. 

 

 

* 이 글을 쓰는 데 다음의 책과 영상을 참고했다.
기 오껭겜, 윤수종 옮김, 『동성애 욕망』, 중원문화, 2013[1972].
서동진, 「패닉, 그 세기말적 파시즘의 전조 : 동성애 공포증 그리고 동성애의 불가능성」, 『누가 성정치학을 두려워하랴』, 문예마당, 1996. 

다나 카플란·에바 일루즈, 박형신 옮김, 『섹스 자본이란 무엇인가』, 한울아카데미, 2022[2021].

마사 C. 누스바움, 박선아 옮김, 「대상화 : 사람을 물건으로 대하기」, 『교만의 요새 : 성폭력, 책임, 화해』, 민음사, 2022[2021].

Peter Hart-Brinson, M. L. Tlachac & Emily Lepien, "Contradictions in Experiences of Compulsory Sexuality and Pathways to Asexual Citizenship", Sexuality & Culture vol.28, no.1, New York:Springer, 2024.
메릴 스트립의 버나드 여성대학 졸업 연설(20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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