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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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4]
혼인평등 간담회 후기 :
친구사이와 혼인평등 운동,
어떻게 만날 것인가?
2023년 6월 29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친구사이 회원들을 대상으로 "친구사이와 혼인평등 운동, 어떻게 만날 것인가?" 간담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올해 들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혼인평등 의제를 주요 운동적 과제로 설정하고,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네트워크가 혼인평등연대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동성혼을 포함한 가족구성권 3법(혼인평등법, 생활동반자법, 비혼출산지원법)이 국회에 동시 발의되었습니다. 이렇듯 성소수자인권운동 안팎으로 본격적인 혼인평등 운동이 진행되고 그에 따른 여러 목소리들이 나오는 시점에서, 이 날의 자리는 혼인평등 의제에 대해 친구사이를 비롯한 각 연대단체와 보다 구체적인 수준의 합의와 의견을 나누기 위한 자리로 읽혔습니다.
간담회는 먼저 희망을만드는법 류민희 변호사의 한국 혼인평등 운동 관련 발제와, 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의 커뮤니티 돌봄 및 관계 형성 관련 발제, 그리고 청중토론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이 행사의 참가자들에게는 의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기 위해, 7월 1일부로 배포 예정이었던 무지개행동·혼인평등연대의 『혼인평등의 여정에 함께 할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인쇄본이 사전 배부되었습니다.
▲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X 혼인평등연대, 『혼인평등의 여정에 함께 할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2023, 39쪽.
먼저 류민희 변호사는 "한국 혼인평등 운동의 역사와 세계적 흐름 변화"를 주제로 발제를 진행하였습니다. 혼인평등 의제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생애사적 맥락과 더불어,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이 법제화되기 전의 대만, 2022년 연방 전체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기 전의 미국에서, 이렇게 단기간에 동성결혼 운동이 성취를 거둘 것이라 예상하기 힘들었던 각 국가의 시간들과, 그 속에서 운동적 역량을 착실히 축적해나간 활동의 궤적에 대해 소개하였습니다. 또한 2014년에 친구사이에서 발간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주요결과보고서』를 비롯하여 여러 성소수자 당사자 관련 통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다음으로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동성결혼 법제화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점을 환기하고, 혼인평등 의제에 더 큰 운동적 힘이 실릴 수 있음을 전망하였습니다. 이에 현재는 동성혼 운동에 힘을 실어야 할 때이며, 이렇게 특정 의제의 대중운동을 통해 결집된 조직력이 다른 의제 관련 운동의 원동력으로 옮겨가는 그림을 구상해볼 수 있다고 천명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이종걸 사무국장은 "친구사이의 정체성과 운동적 맥락에서 짚어야 할 점들"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첨예한 논의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언급으로 운을 뗀 발제는, 친구사이 2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2015 담론팀 간담회 중 동성결혼 관련 논의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전신인 가족구성권 연구모임 시절부터 연대를 통해 축적해온 "퀴어가족정치" 의제에 대한 소개, 1:1 관계를 넘어 커뮤니티 속 개인이 맺는 관계와 돌봄에 주목해온 친구사이의 활동들, 혼인평등 운동과 친구사이가 관계맺을 때의 유의점 등을 빠르게 소개하였습니다.
▲ 「담론팀 기획토론 #3 : 동성결혼 제도화와 시민권」, 『친구사이 소식지』 58, 2015.4.28.
적지 않은 두께와 역사를 품은 두 편의 발제 끝에 청중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간담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동성혼 의제에 대해 원론적인 찬성의 입장을 보였습니다. 결혼에 대한 욕망이 있든 없든 일단 그것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져야 한다는 데에는 거기에 모인 모든 이들이 동의하였습니다. 더불어 게이커뮤니티의 현장 속에서 동성혼 의제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함께 공유되었습니다. 특히 오랜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게이 커플의 경우, 자신보다 짧은 결혼 관계를 가진 이성애 친척들이 제도적으로 내가 누리지 못하는 많은 혜택을 누리는 데 대한 박탈감, 유튜브 등에 게이 개인으로 나갈 때와 비교해 게이 커플로 나갈 때 상대적으로 훨씬 심각한 사회의 이물감과 거부감을 마주하게 되었던 경험 등이 나누어졌습니다. 또한 코로나를 거치면서 게이커뮤니티가 파편화되는 인상을 받고 있고, 서울의 경우 종로·이태원·신림을 거점으로 한 게이커뮤니티 활동 외에 뭔가 다른 의제 차원의 구심점이 필요하고, 그것들 중 하나가 동성혼 운동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언급도 주목되었습니다.
한편 현재 동성혼 운동의 캠페인 차원에서 드러나는 아쉬움들이 지적되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1:1 관계의 동성 커플이 부각되는 캠페인이, 이성애 결혼제도를 포함한 기존 결혼에 균열을 내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추종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 그 지적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즉 현재의 캠페인이 있는 질서를 교란하는 존재가 아니라 썩 바람직하지 않은 기존 질서에 들어가는 느낌을 주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였습니다. 나아가 동성혼 의제에는 동성혼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지할 비성소수자 우군의 존재가 필수적인데, 그 우군은 이미 제도적 결혼 가운데 행복해하는 이성애자·시스젠더가 아니라, 그것을 결연히 거부하고 있는 비혼·비출산 당사자, 또는 생활동반자법에서 확인한 연대의 흐름대로 제도적 결혼으로부터 취약한 노인 등의 계층이 오히려 동성혼 의제가 손잡아나가야 할 존재들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제기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청중토론에 참가한 한 회원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성혼 의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족구성권 3법'의 동시발의의 구도로 의제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법과 의제들 사이에 우선순위나 우열을 설정하지 않은 이런 방식이야말로, 기존의 성소수자인권운동이 축적해온 논의의 결을 드러내는 운동적 성취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현재 동성혼 관련 캠페인을 통해 드러나고 있지 않은 점이 크게 아쉽습니다. 현재의 구도는 마치 동성혼, 생활동반자법, 비혼출산의 의제가 각기 분리된 형태로 추구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하지만 LGBT가 각기 서로 분리된 정체성이 아니라 성별 비순응, 이성애중심주의 구조 등의 연결고리를 갖는 것처럼, 저 3법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이 지금보다 한층 더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비혼출산지원법의 핵심은 지난날 '미혼모·사생아'에 쏟아진 낙인을 극복하자는 것이고, 거기에는 '정상가족'을 전제로 한 '결혼'의 강력한 규범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들 옆에서 동성커플이 "우리 결혼해서 행복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미혼모·사생아'를 괴롭히던 '결혼'과 우리의 결혼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가 널리 설득되고 또 성찰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현재의 혼인평등 캠페인은 있는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쪼개놓는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의 캠페인은 정말로 동성혼을 원하는 당사자에게만 유효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커뮤니티 안에는 동성혼을 원하는 사람과 원하지 않는 사람, 나아가 동성혼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의 '위계'가 존재합니다. 거기에는 계급, 동성애 커뮤니티 특유의 강제적 성애 문화, 독점적 관계에 대한 이상화 등이 깔려 있습니다. 더구나 결혼과 가족을 행복이 아니라 '감호'나 가정폭력·파트너폭력 등으로 경험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의 존재와 경험을 동성혼 의제가 '남'으로 취급하는 것은 큰 착각이고 오류이며, 반대로 이들의 존재는 '운동'을 자처하는 동성혼 의제가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커뮤니티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동성혼 캠페인은 동성혼을 원하지 않거나, 그것을 원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유효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방향이 재고되어야 합니다.
이 운동의 서사가 1:1 커플의 행복으로 끝나는 닫힌 결말로 마무리되어서는 안됩니다. 1:1 관계의 행복을 내세우더라도, 친구사이가 벌여온 여러 사업들처럼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나아가 그 1:1의 관계와 더불어 그들을 '둘러싼' 관계망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모델, 그리고 그 가운데 생활동반자 관계, 혹은 1인 가구, 비혼출산 가구 등이 포함되는 그림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즉 '대중성'을 근거로 실제 존재하는 대중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캠페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혼인평등은 정말로 이성애자·시스젠더가 현재 누리는 제도적 혼인의 결실을 우리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늬들과 달리 더 멋있게 결혼한다"는, 즉 헤테로들이 부러울 수 있을 만큼 기존의 결혼의 의미를 바꾸어내는 운동이라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혼인평등 캠페인은 여러모로 부족한 점들이 많습니다. |
그밖에 "모두의 결혼"이라는 캠페인 슬로건에 대한 이견도 잇따랐습니다. 성소수자든 아니든 결혼을 모두가 원하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모두의 결혼보다는 '다양한 결혼'이 좀더 커뮤니티의 욕망과 현실에 맞닿은 구호가 아닌가 하는 의견, '모두의 결혼'이라는 구호 때문에 마치 "모두가 결혼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메시지가 강조되는 듯한 아쉬움이 언급되었습니다. 이에 류민희 변호사는 전광판에 동성 커플이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광고 게재가 불허되는 일반 사회의 상황 속에서 일종의 전술로서 선택한 것이 '모두의 결혼'이라는 구호이며, 그 구호를 사용해 개최한 이태원의 퀴어 업소 '코끼리'에서의 '모두의 결혼 캠페인 런칭 파티'로부터 새로운 커뮤니티의 활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동성혼은 "이퀄하되 퀴어하고, 퀴어하면서 이퀄한" 의제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의제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더불어 운동적 전략·전술의 차원을 떠나, 오랜 사실혼 관계에 있는 커플들의 일상도 실제로는 늘 행복이나 판타지로만 구성된 것이 아닌 만큼, 실제 존재하는 관계의 구체적 돌봄과 역동에 대한 좀더 다양한 상들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또한 커뮤니티 레벨에서 성혼 축복식, 유언장 등 기존에 진행되었던 동성 사실혼 관련 행사 외에, 관계를 공시할 수 있는 보다 다양한 형태의 행사를 기획해보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기되었습니다. 게이커뮤니티의 관계맺음에 대한 욕망과 실천이 어느 한 지점으로 수렴될 수 없는 만큼, 그것들을 현실화하고 재구성해내는 과정은 "우리가 커뮤니티를 진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의 문"일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었습니다.
간담회를 지켜보면서, 이 이슈에 대해 사람들이 저마다 참으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래 운동은 서로의 차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그 차이에 직면하고 거기에 딸린 각자의 마음을 '다루는' 기술이었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성소수자인권운동과 그 연대체의 역사도 그러한 내부의 차이를 숙고하고 그것을 연결하는 말과 행동과 뜻을 지어내는 일의 연쇄였고, 오늘날 퀴어운동이 다른 운동 단체들 가운데 누리고 있는 성원권 역시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었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한국의 성소수자인권운동이 그래왔듯 동성혼 운동도 지금보다 한층 더 '퀴어'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방향으로 진행될 앞으로의 활동과 사건들을 기대해보겠습니다. 친구사이 또한 혼인평등 운동과 기꺼이 만나고 얽히면서, 더 깊고 확장된 형태의 가족구성권 운동을 관철할 것을 약속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