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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호][칼럼] 남들 사이의 터울 #5 : 애널의 행정
2023-05-03 오후 16:5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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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4월 

 

남들 사이의 터울 #5

: 애널의 행정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남자가 딴 남자 항문에 박는다는 이유로, 심지어 남자가 딴 남자 성기를 자기 항문에 집어넣는다는 이유로 왜 이다지도 무시무시한 낙인에 시달리는지에 대해. 원래 그러라고 있는 구멍이 아니란 소리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그렇다고 딴 용도로 쓰지 못하란 법 없고 그렇게 쓰기 위한 방법들이 다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궁하면 방법을 찾게 돼있다.

애널 섹스는 꽤 테크니컬한 섹스다. 잘 준비하고 과정을 치르지 않으면 사고가 날 변수들이 여럿 있다. 헌데 그건 정도가 다를 수는 있어도 질삽입 섹스나 기타 섹스의 경우도 실은 마찬가지다. 다 큰 사람이 서로 옷벗고 물빨하는 상황이 당사자들에게 괜찮기 위해서는 당연히 필요한 고려들이 있다. 그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만들자는 것이 바로 미투 운동을 둘러싼 반성폭력 운동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일단 섹스 전 면밀한 합의와 친밀성의 구축이 있음을 전제로, 애널 섹스에 따라붙는 여러 행정들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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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 섹스를 테크니컬하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애널'에 있다. 항문과 직장을 성기 삽입에 적절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 그 행정의 첫번째 관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장기를 일반적인 목적 외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은 당사자의 자유고, 그 자유에는 적잖은 책임이 뒤따른다. 특히 대부분의 사회적 금기처럼 딱히 그 이유가 없는 채 유포되는 낙인이 그 행위에 도사리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아무튼 낙인은 낙인이고 섹스는 섹스이므로, 애널 섹스를 결심한 당신은 탑과 바텀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이고, 바텀의 경우 자신의 직장 속 이물질을 비우는 행위를 속칭 '센죠이'라 부른다. 세정(洗淨)의 일본말인 이 단어는 과거 교도소에서 배변 후 뒷물하는 행위를 뜻했다고 하고, 주로 샤워 헤드를 돌려빼 직수로 분사되는 물을 항문에 대고 직장에 적당량의 물을 채운 뒤 변기 속에 내뿜는 수차례의 행위를 일컫는다. 헤테로들 중 어떤 이들은 비위생적이라고도 하던데, 수압 때문에 직장 내 분비물이 샤워 호스에 혼입될 일은 거의 불가능하니 안심하셔도 된다.

진짜 문제는 다음의 경우인데, 수압을 너무 세게 해서 직장에 물이 과도하게 찼을 때다. 장액이 씻겨 건강에 해로운 것은 둘째치고, 직장과 대장 사이의 S결장에 걸려 속의 물이 덜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그걸 그대로 놔둔 채 섹스에 임하면 시쳇말로 섹스 중에 '똥물 같은 걸 끼얹는' 사태가 발생한다. 따라서 성기가 들어갈 정도의 깊이와 부피의 물을 가늠하는, 즉 섹스에 필요한 정도로 직장에 들어갈 물의 양과 수압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감은 경험이 좀 쌓여야 알 수 있다. 그러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수와 돌발 상황을 사려해줄 파트너를 만나는 일이고, 그래서 면밀한 합의가 중요하다고 한 것이다.

탑의 경우에도 어려움은 존재한다. 바텀이 센죠이를 마치고 나온 다음에는, 바텀의 직장을 삽입 섹스가 가능한 정도까지 확장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건 그런 작업이 전혀 안 필요한 사람에서부터 아무리 공들여 해도 적정 수준으로 늘어나지 않는 사람들까지 천차만별이다. 결정적으로 그 작업은 적잖은 경우 섹스의 흐름에서 그다지 섹시하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과정이 되기 쉽다. 바텀을 확장시키는 과업은 종종 탑에게 맡겨지는 때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탑의 손톱에 바텀의 항문 속이 긁혀 통증을 유발하거나, 도무지 지금 확장이 잘 되고 있는 건지 파악이 어려울 때도 있다. 결정적으로 그 모든 덜 섹시한 과정이 완수되기까지 탑의 발기가 유지돼 있어야 하는 과제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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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애널 섹스에 능숙하지 않은 경우라면, 바텀의 직장 건강이나 섹스의 흐름을 위해 바텀이 스스로 자기 손가락을 넣어 애널을 확장하고 탑의 성기 위에 천천히 올라타는 편이 가장 무난한 방법이기는 하다. 직장 속에 있는 여러 겹의 막들이 섹스하기 좋도록 충분히 벌어지기 위해서는 디테일한 조정이 필요한데, 그건 그 직장을 가진 당사자가 삽입 정도를 가늠하면서 조절하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물론 게이커뮤니티라고 해서 기존의 남성성·여성성 역할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무릉도원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나 체위가 탑으로 하여금 능력없게끔 보이거나 바텀을 너무 '난년'처럼 보이게 만들 가능성은 있다. 젠더 규범이야말로 한발 떨어져 보면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고, 이유가 없는데도 뻔히 작동하는 애물단지에 가까운 것이다.

특히 애널 섹스에 따른 금기와 공포는 박는 자보다 박히는 자에게 유독 집중되는데, 원만한 섹스란 그런 위계를 포함한 여러 위험들이 상호 합의에 의해 잘 조율되고 보정된 경우를 말한다. 그런 고려가 따라야만 상대의 직장 속으로 내 성기가 들어가거나 내 직장 속으로 상대의 성기가 들어오는 상황이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받아들인 성적 흥분으로 올바르게 도달할 수 있다. 말하자면 애널 섹스의 행정은 남들이 욕하는 섹스를 보란듯이 해보인다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면한 상황 속에서 이 섹스를 좀더 기분좋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합의의 기술을 상대방과 구체적으로 맞추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완성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도달 가능한 애널 섹스의 기쁨은 분명 존재한다. 삽입 섹스가 섹스의 유일한 쾌락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애널의 성기 삽입을 통해 서로가 즐길 수 있는 쾌락의 지분이 분명히 있다. 탑은 성기가 감싸지는 쾌감을 통해, 바텀은 직장 앞쪽의 전립선이 뒤로부터 긁히는 자극에 의한 쾌감을 통해, 애널 섹스가 가져다주는 육체적 쾌락의 범주가 있다. 무엇보다 제대로 준비되고 수행된 애널 섹스는 절대로 바텀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못견디게 아프다면 그 섹스는 어딘가 잘못된 것이다. 애널 섹스는 바텀이 안 아프거나 덜 아파야 정상이고, 그건 탑이 그저 아무 준비 없이 항문에다 쑤셔박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진실로 '항문섹스는 인권'이다. 애널 섹스가 인권인 이유는,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섹스를 수행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그동안 그 섹스에 대해 헤테로들보다 더 많이 논쟁하고, 헤테로의 오해를 넘어서는 관계와 건강과 쾌락의 기술들을 그들보다 더 많이 발명해왔기 때문이다. 모든 소수자 인권운동의 핵심은 그들을 억압해온 사회적 규범을 해체하는 동시에 그 규범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새로 구성하는 것이다. '호모'에 대한 개쌍욕을 먹어가면서, 그들 소원대로 '더러운' 애널 섹스를 포기하지 않는 대신 그 섹스를 덜 더럽고 안 위험하게 즐기기 위해 노력해온 게이커뮤니티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는 누가 뭐래도 인권의 이름에 값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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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궁금해진다. 이러한 애널의 행정을 과연 헤테로들은 얼마나 알고 또 실천하고 있을까. 애널 섹스는 남성 동성애자뿐 아니라 헤테로들도 꽤 한다고는 들었는데, 헤테로들이 게이들 센죠이할 때 샤워 호스에 똥가루 묻을까 걱정하는 건 들어봤어도 헤테로들이 애널 섹스할 때 센죠이했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설마 안하고 그냥들 하는 건가. 물론 장이 건강한 사람은 직장에 일반적으로 뭐가 껴있지 않아서 무방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 늘상 그런 건 아니기 때문에 안하고 하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다. 케이트 밀렛의 페미니스트 고전인 『성 정치학』은 어떤 백인 남성 노예주가 흑인 여성 노예의 '냄새나는' 항문에 강제로 성기를 삽입하는 에피소드로부터 시작한다. 애널 섹스 이전에 성폭력임이 분명한 상황 가운데, 애널의 행정을 거치지 않은 그 여성은 아마도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을 것이다. 혹시나 헤테로들이 아직도 그런 성폭력에 가까운 관계를 애널 섹스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주위에 커밍아웃한 한 동료 게이의 이야기다. 가까운 여성 후배가 있는데, 남자친구가 자꾸 나한테 애널 섹스를 요구한다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자기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센죠이 방법이라도 가르쳐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는 후배에게 남친과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조심스레 조언했다. 물론 합의 하에 남녀가 애널 섹스를 하는 일도 가능하기는 하겠으나, 앞서 말했듯이 젠더는 그 이유가 딱히 없는데도 작동하기 때문에 젠더이고, 박는 자에 비해 박히는 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의 위계를 보정하고 오롯한 개인 간의 쾌락을 나누는 데까지 도달하는 것이 애널의 행정이자 진정한 의미의 성적 합의다. 세간에 떠도는 말을 잠깐 빌리면,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남자는 절대로 여자를 헛갈리게 하지 않는다. 게이커뮤니티가 논쟁하고 축적해온 섹스의 무게와 비교해, 온갖 유서깊은 지배에 물든 헤테로 사회의 섹스에도 서광이 비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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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애널 섹스를 둘러싼 새로운 성매개 감염병이 돌고 있다. 병명은 낯설지만, 그와 관련된 위험과 낙인은 새로울 것이 없기도 하다. 앞에서 보았듯이 게이커뮤니티에게 섹스란 애초부터 위험에 대한 협상이었고,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한 관계 기술의 발명이었다. 이 커뮤니티 속 많은 사람들은 새롭지도 않은 그 위험에 대한 나름의 당사자이자 전문가들이다. 또한 그 위험을 대처함에 있어 덮어놓고 "섹스를 하지 말라"는 것이 얼마나 대책없고 무책임한 일인지도 잘 안다.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그룹의 존재와 행위와 욕망을 외부의 소원대로 삭제하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대책없고 무책임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과 섹스를 삭제하지 않은 채로 우리의 건강과 안전과 존엄을 지키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우리는 반드시 답을 찾을 것이다.

 

 

* 미국 백인 남성 노예주의 흑인 여성 노예 대상 성폭행을 다룬 소설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의 『미국의 꿈(An American Dream)』(1965)의 내용은 케이트 밀렛의 다음 대목에서 따왔다. 

: 케이트 밀렛, 김유경 옮김, 『성 정치학』, 쌤앤파커스, 2020[1969], 4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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