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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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2004-06-20 18:41:46
+0 614
2000년에도 비가 몹시 왔고, 올해 역시 폭우가 쏟아졌다.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만큼 발전이 있었고 성과가 있었다는 표시일 게다.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 홍세화 씨 등이 참여했다. 현애자 의원은 그렇게 말했다. 퀴어문화축제에 자신이 처음으로 온 국회의원이 아니겠냐고.

우선 퍼레이드 꽃임을 자임하느라 노고한 마린보이, 비 추적거리는 아스팔트 거리 위에서 온몸으로 비를 방어하던 모습에 짠한 감동을 받았다. 또 젖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첫 해 맞는 퍼레이드 기갈을 부리느라 수고한 코러스 모임 성원들과 나 같은 처지의 '곱사리'들 역시 모두 수고했단 말을 개인적으로 전하고 싶다. 비는 많이 왔지만, 여전히 퍼레이드의 주인은 우리들 아니겠는가. 비록 이것이 누군가가 설핏 농담으로 말한 '이용대의 저주'일지라도, 우리는 무지개색 우산을 들고 나설만큼 발걸음이 가벼워진 게 또한 사실이다.

미국 게이 커뮤니티의 퍼레이드는 정치 부재의 상업적 행사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게이 인권의 네 단계인 '허용 Acceptance', 즉 동성간 결혼의 허용 문제 등이 서서히 입질을 끝내고 부단히 뭍에 오르면서 이제 종식을 고하는 게 아닌가 하는 파국론까지 제시하곤 한다. 사실 그들은 퍼레이드의 정치적 재배치에 관해 고민하고 있는 중이고, 몇몇 상업적 관성만 제거한다면 재배치할 공간이 여전히 많이 있는데도 단지 재배치에 기울일 노력에 값싼 입질만 해댈 뿐이다.

반면 한국에서의 동성애자 퍼레이드는 여전히 초기의 서툼과 정치적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삶 냄새 푹푹 곰삭은 맛이 난다. 여기서 정치적 열정이라함은 너무 소박하게도 몸을 아스팔트 위로 공개해 호모포빅한 상황에 전면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욕망과 끼의 전시일 뿐이다. 나중에 혹여나 퍼레이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다면, 전 역사의 성패를 발판 삼아 준엄하게 비판해야겠지만, 우리의 여전한 소박한 열정은 어제밤 공히 게이, 레즈비언의 즉석 '탈의실'로 변해버려 담빡에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린 열 평 남짓의 친구사이 사무실 공간이 웅변해주듯, 한 줌 소금처럼 소중하기만 하다, 삶 냄새 푹푹 곰삭은 맛이 난다.


코드

어제 퍼레이드를 하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길가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반가운 나머지 '악수'를 하러 다가갔는데 그는 안면색을 바꾸고는 갑자기 뒤로 물러서며 손을 젓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는 내가 함께 퍼레이드를 하자고 손을 잡으러 간 줄 알았던 모양이다. 뒤돌아서며, 적이 씁쓸해하고 말았다. 내가 그 정도 눈치도 없이 행진을 권유할 사람인 줄 안 걸까?

이렇듯 과잉된 코드들, 우리들 내면에 잠식된 호모포비아, 그리고 아스팔트 경계 너머의 시선들을 일상의 무관심 정도로 해체시켜낼 때까지 그렇게 퍼레이드의 임무 충전은 지속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제 우리 친구사이 회원들을 보며, 그리고 퍼레이드 참여한 많은 비 젖은 친구들을 보며 한 십 년은 늙어버린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만큼 많은 감흥, 생각, 희망을 주워섬기는 그런 버릇들이 삽시간에 머리를 휘젓고 지나간 듯한 느낌.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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