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짱 사회가 낳은 귀신 ‘빨간 마스크’ (2004-05-24)
'빨간 마스크' 괴담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최근 인터넷 괴담 '빨간 마스크'의 공포가 초등학생을 위주로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학생들 사이에는 늦은 밤에 밖에 나가는 일을 삼가고 일부에서는 '빨간 마스크'가 무서워 한다는 엿을 가방에 넣고 다니거나 손에 빨간색으로 '개 견(犬)'자를 써서 부적처럼 가지고 다닌다고 합니다. 벌써 이런 괴담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을 보이는 몇몇 어린아이가 부모와 함께 정신과에 왔다는 이야기도 동료로부터 들었습니다.
이 '빨간 마스크'라고 불리는 여자 귀신은 괴담에 의하면 길거리에 만난 사람에게 '나 예뻐?'라고 물어본 다음에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살해 방법만 다를 뿐 무참히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이 괴담의 기원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은데 그 중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일본의 한 젊은 여인이 성형수술을 잘못해서 입을 크게 다친 뒤 따돌림을 당하다가 결국 자살한 후 귀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만으로도 너무 끔찍하지 않습니까?
사실 귀신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떠나 늘 인간사회와 함께 해왔습니다. 옛날로 올라갈수록 재난, 질병, 죽음 등 이해하기 어렵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은 그 두려움을 외부의 힘으로 돌려 영적 존재에 의지해 왔습니다. 그 중에 귀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한 불행도 있었습니다. 귀신은 다양한 의미로 쓰이지만 좁게 보면 억울하게 죽어 저승으로 올라가지 못한 원혼을 일컫습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 귀신은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고자 사람들에게 나타나곤 했을 뿐 아무나 해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처방법도 그 원한을 달래거나 풀어주는데 있었습니다. 드라큘라처럼 절대적인 악의 존재로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서양귀신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귀신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였습니다.
괴담 때문에 불안에 떠는 아이들의 경우 귀신의 존재여부가 최대의 관심사이겠지만 존재여부를 떠나 귀신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귀신이야기는 그 당시 사회적 억압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옛날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소복 입은 여자귀신은 봉건사회에서 이 땅의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억압과 고초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고괴담으로 대변되는 학교 내 귀신이야기는 입시경쟁으로 갈수록 황폐해지는 우리교육의 현주소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유행이 지나갔지만 한때 '만득이 시리즈'가 유행이었습니다. 이 유머에는 늘 만득이를 쫓아다니는 귀신이 등장하는데 이는 지나칠 정도로 자식들을 쫓아다니고 개입하는 이 시대의 부모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권위가 무너지는 부모상을 반영하듯 만득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귀신 역시 더 이상 무섭지가 않습니다.
예전부터 있었던 이야기가 다시 유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빨간 마스크' 이야기 역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 예뻐?'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다니는 빨간 마스크는 '얼짱' '몸짱' 등 신조어의 등장 이후 더욱 외모에 대해 만족하느냐고 쉴 새 없이 질문하는 이 사회의 단면일 수도 있습니다. 빨간 마스크를 쓰고 무차별적인 살인을 일삼는 여자 귀신은 심각한 외모 차별 속에 갇힌 우리들의 괴로움과 억압된 분노가 뒤틀려 표현된 극단적인 상징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한여름 밤, 귀신의 등장에 오들오들 떨며 죄짓고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어린 시절이 그리울 뿐입니다.
문요한 (태능성심정신과 원장)
답 : 영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