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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향해 쏴라
꽃사슴 2003-11-12 12:39:06
+0 1559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http://www.benhur.net/pop/pop-song/r/RainDropsKeepFallingOnMyHead_BJThomas.ra

울적한 마음을 달랠 땐 전 옛날로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음악이며 영화를 생각합니다.

어제부턴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를 듣고 있습니다.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 이 영화 참 엽기적이었어요. 중학교 시절, 홀로 된 어머니마저 교통사고를 당해 허리가 작살난 상황인데도, 전 500원을 받아 이리(지금의 익산시) 시내의 허접한 동시상영관에서 영화 두 편 볼 생각에, 토요일마다 학교가 끝난 후 부리나케 시외버스를 타고 어머니가 있던, 그 프로말린 냄새 진동하던 병원에 찾아왔으니까요.

간장에 밥 비벼 먹고 500원을 받아쥔 채 동시상영관으로 달려가던 제 모습이 얼마나 철이 없었을까요? 그래도 아스팔트조차 구경할 수 없었던, 그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골 촌놈의 눈에 영화관 스크린은 전혀 딴세상이자, 눈 뒤집어질 정도의 마력의 만화경이었습니다. 포스터만 보고 야한 줄 알고 보았던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퍼블릭 우먼' 같은 걸작들 앞에서 충격을 곱씹던 까까머리 그 시절이 다시 생각나네요.

어쨌거나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병원에서 와서는 빨간 전기 냄비에, 그래도 일주일만에 아들이 왔다고 어머니가 정성스레 비벼놓은 김치볶음밥을 배 터지게 먹고는 들입다 잠 속으로 직행하곤 했습니다.

헌데 어느 날이었어요. 잠자다 말고 목이 갈증나 잠시 눈을 떴는데, 텔레비젼에서 이상한 장면이 나오더군요.

남자가 총을 들고 있었어요. 맞은 편에는 집으로 방금 들어온 왠 여자가 어둠 속에 서 있습니다. 남자가 총을 겨눈 채 말했지요.

"옷 벗어."

그러자 이 여자, 겁에 질린 듯한 표정도 없이 빤히 남자를 바라보며 옷을 벗는 게 아니겠어요. 헌데 더 가관인 것은 다음 장면이었습니다. 아침이었어요. 간밤의 총 겨눈 남자가 자전거를 몰고, 부끄럼도 없이 옷을 벗던 그 여자가 깔깔거리며 자전거 뒤에 타고 있지 뭡니까? 이 미친 남녀는 깔깔거리면서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어요. 그때 흘러나오던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전 다시 눈을 감으며 속으로 생각했지요.

참 이상한 년놈들을 다 보겠네! 세상은 정말 알 수가 없군.

그리고 10여 년 정도가 흘러 비디오가게를 털어버려야겠단 심사로 몰아쳐서 영화를 보던 시절, 뉴 아메리칸 시네마 중에서도 가장 커머셜하면서 가장 멋진 조지 로이 힐의 이 영화를 결국 비디오 가게 맨 윗칸에서 먼지를 털어내면서 뽑게 되었습니다.

그랬어요. 그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해했지요. 총을 겨눈 남자는 사실은 '부끄럼도 없이 옷 벗던 여자'의 남편이었던 겁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남편이 총을 겨눈 채 유머스럽게 사랑을 표현했던 거지요. 그제서야 이해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벌어졌던, 이 미친 남녀의 깔깔거림과 자전거와 그 노래의 의미를.

울적한 마음을 달랠 땐 전 옛날로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음악이며 영화를 생각합니다. 김치볶음밥이 담겨 있던 빨간 냄비와 한없이 쏟아지던 잠, 지겨운 가난과 500원짜리 동시상영관, 참 세상은 아리송하군! 하고 외쳤던 까까머리 중삐리의 속다짐과 20대 초반의 그 웃음.

쿨하지 못하거든 차라리 낭만을 가장하라는 제 신조를 다시금다시금 독려하는 그 옛날의 영화와 노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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