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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입은 성소수자, 부주의" 이런 황당한 기사를 봤나
[주장] '교복 입은 성소수자' 탓하는 <조선일보>의 교묘한 기사
[주장] '교복 입은 성소수자' 탓하는 <조선일보>의 교묘한 기사
18.01.08 18:00l최종 업데이트 18.01.08 18:00l 글: 김준수(deckey)
지난해 연말부터 방영된 EBS <까칠남녀> 성소수자편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일부 학부모들이 경기도 일산의 EBS 사옥 로비를 점거하며 방송에 항의하기도 했다. 일부 학부모는 5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성소수자들이 교육방송에 교복을 입고 나와 '동성욕'을 부추기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로비 점거를 벌이던 학부모들은 경찰의 퇴거 명령을 받고 해산했지만, 3일이 지난 8일 현재까지도 EBS 사옥 앞에서 항의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해당 학부모들은 28일까지 경찰에 EBS 앞 집회 신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까칠남녀> '성소수자편'을 둘러싼 논란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EBS 게시판에는 '프로그램 폐지'를 외치는 주장과 제작진 응원 글 등 상반된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 8일자 <조선일보> 온라인판 '조선닷컴' 연예면 기사 <교복 입고 등장한 性 소수자… EBS 적절성 논란>. 본문에서는 "성인인 성 소수자들이 교복을 입고 등장해 성 소수자를 미화했다"는 학부모 주장을 인용하며 EBS <까칠남녀> 성소수자편에 출연진이 교복을 착용한 점이 문제라는 식으로 지적했다. | |
ⓒ 조선일보 |
이미 불이 붙은 논란에 보수 언론이 기름을 부으면서 논란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8일 <조선일보>는 <교복 입고 등장한 性 소수자… EBS 적절성 논란>을 통해 <까칠남녀>에 쏟아지는 비난을 소개했다. 본문은 이어 "문제는 최근 두 차례에 걸쳐 방송된 '성 소수자'편에서 발생했다. 스튜디오에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4명의 성인이 학생 교복을 입고 출연한 탓"이라고 적었다.
제목에서도 '교복 입고 등장한 성소수자'를 거론한 것처럼, 기사는 성소수자의 출연뿐만 아니라 성소수자가 교복을 입은 행위 자체가 문제라는 식으로 지적한다. 기사는 "성 소수자들이 교복을 입고 등장해 성 소수자를 미화했다"는 학부모의 항의를 옮기는가 하면, 전문가의 의견이라며 "성 소수자의 차별과 어려움을 담았다는 건 의미 있지만 교복을 입고 등장한 건 부주의했다"고 덧붙인다.
'교복 입은 성소수자'를 거론하고 '적절성 논란'이라니
<조선일보>가 거론한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은 JTBC의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을 패러디한 형식이었다. 당시 <까칠남녀>는 방송의 부제목으로 '모르는 형님'을 붙였고, <아는 형님>에서 출연진이 교복을 입고 나온 것을 고스란히 따라서 방송했다. <아는 형님>에서 매회 새로 출연하는 게스트를 '학교에 새로 등교한 전학생'으로 묘사하며 소개하는 방식을 참고한 것이다.
이는시청자들이 미처 알지 못한 성소수자에 관한 정보를 '전학생'이 직접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EBS가 '교육방송'이란 점을 감안하면 참신한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회에서 소외받던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당사자들이 직접 소개하는 방식이니까 말이다.
▲ EBS <까칠남녀> 방송 중 한 장면. 성소수자들의 다양한 정체성 중 'LGBT'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
ⓒ EBS |
▲ EBS <까칠남녀> 방송 중 한 장면. 진행자 박미선이 "성소수자들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자체가 차별"이라고 말하고 있다. | |
ⓒ EBS |
하지만 이런 구성에 관해 <조선일보>의 반응은 꽤 달랐다. 기사는 제목에서 '교복 입고 등장한 성소수자'를 언급한 뒤 'EBS 적절성 논란'이라고 덧붙였다. 마치 성소수자가 교복을 입고 방송에 출연한 것 자체가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처럼 읽힐 우려가 있다.
<아는 형님>에 출연한 방송인들에 관해 '교복을 입고 등장해 미화됐다'고 평가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가수, 배우, 모델 등의 인물이 교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더 나은 이미지를 얻었다'고 보는 건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가의 의견이라며 "차별과 어려움을 담았다는 건 의미 있지만 교복을 입고 등장한 건 부주의했다"라고 적은 부분은 어떤가. 만약 다문화 가정에서 자녀로 태어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당한 바 있는 혼혈 2세가 교복을 입었어도 '차별 알린 건 의미 있지만 교복을 입고 나온 건 부주의했다' 같은 말이 나왔을까?
만약 같은 논리의 문장에서 대상만 바꿨는데 말의 앞뒤가 뒤틀려 들어맞지 않는다면, 문장을 구성하는 논리가 '편견'이라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바꿔서 말하면, 이는 <조선일보>가 '적절성 논란'을 거론하며 기사로 다룬 내용과 논리야말로 부적절하다는 얘기가 된다.
'성소수자가 불편하다'는 이들, 그리고 <조선일보>에게
물론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교육방송'인 EBS가 맡은 역할의 '교육'에는 유아와 초·중·고등학생의 학업 성취를 돕는 것도 있지만,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를 아울러 존엄성과 기본권을 알리는 역할도 일정정도 있다고 본다.
EBS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방송편성규약'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건전한 여론형성을 통해 민주사회 발전과 국민화합, 민족통합, 문화창달 나아가 인류공영에 이바지"한다고 적혀 있다. 이를 반영해서 EBS 프로그램에는 젠더 이슈와 성소수자 문제를 다룬 <까칠남녀>를 포함해 가족 문제를 다룬 <엄마를 찾지 마>도 있고, 청소년 삶을 그들의 목소리로 들어본 <번 아웃 키즈> 등도 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EBS가 추구하는 가치는 '인간 존엄성 국민의 기본권 보호'다. 이를 감안하면 '성중립화장실'이나 '차별금지법' 등의 소재는 동떨어진 게 아니다. 인권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에서 최근 주요하게 논의되는 사안들이니 말이다. 시청자의 불편한 반응이 프로그램 제작 자체나 사회적 논의를 막는다면 사회의 발전을 위한 토론 자체까지도 불가능해지지 않을까.
<조선일보>는 기사에 "'트랜스젠더 직장인이 가장 많이 앓는 장애는 배뇨 장애', '성중립화장실이 필요하다'는 식의 방송 내용도 학부모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했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개인은 불편한 감정을 토로할 수 있어도, 매체는 개인보다 성숙해야 마땅하다. '인권보도준칙'이라는 것이 언론을 위해 존재하는 이유다. 이를 놓고 볼 때, 기사는 그저 '불편한 반응이 있다'라는 수준에서 머물지 말아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난 2011년에 발표한 인권보도준칙 제8장 성적 소수자 인권에는 "성적 소수자가 잘못되고 타락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담은 표현"으로 접근하지 말라고 돼 있다.
인권위가 아니라 기자들끼리 약속해서 만든 한국기자협회의 인권보도준칙도 있다. 해당 준칙 5항에서는 "언론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그들이 차별과 소외를 받지 않도록 감시하고 제도적 권리 보장을 촉구한다"고 나와 있다. '1등 신문'이라고 불리는 <조선일보>를 위해 더 친절하게 인권보도준칙을 덧붙이자면 "언론은 고정관념이나 사회적 편견 등에 의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용어 선택과 표현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조언한 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6항도 언급해야겠다.
<조선일보>의 기사 제목과 내용을 보면, <까칠남녀> 성소수자 편에 나온 '급훈'처럼 성소수자들도 '어디에나 있는' 존재라는 걸 혹시라도 미처 모르는 것 아닐까 우려될 정도다. 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2항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언론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을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적용한다."
▲ EBS <까칠남녀> 방송 중 한 장면. 방송분은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라는 말로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