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들의 종로이모 이야기 #3
: 前 물OOO 이모 정지윤님
세 번째 인터뷰 손님은 너무도 반가운 얼굴,
추억의 물○○○ 전 사장님입니다.
크게 다치시는 바람에 예기치 못한 이별을 맞은 이래
많은 분들이 이모를 그리워하고 궁금해 했는데요,
함께 오랜만에 불러 볼까요? 이모~!
▲이모님의 최근 모습
크리스 : 이모!!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후 그냥 제가 어찌나 이모 보고 싶던지… 못 참고 먼저 연락드렸어요. (웃음)
이모 : 아냐 괜찮아. 연락줘서 고마워.
순재 : 뭔가 지금 바뀐 곳은 잘 안 가게 되더라구요. 그냥 예전 그 가게 그 기억 속 그대로 남기고 싶고. 추억 위에 아무 것도 덧칠하고 싶지 않은 건가 봐요.
크리스 : 그만큼 우리한테 거기는 술집 이상이었던 거 같아요. 아무튼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게 되어 넘 좋아요 이모. 또 흔쾌히 저희들에게 이야기 들려주신다고 한 점도 감사드리구요. 그럼 한 번 시작해봐도 될까요?
이모 : 응~
# 거기선 내가 제일 성성해
크리스 : 물○○○ 오픈은 언제였나요?
이모 : 4월 달인데, 몇 년이었을까? 한... 지금 한 해는 그냥 가버렸잖아, 그치?
순재 : 네. 올해가 2016년이고 이모 다치신 게 작년 말.
이모 : 햇수로 거기서 장사한지 3년인가 4년 됐을 걸? 2012년인가? 얼추 그럴 거 같네.
순재 : 교통사고 당하신 게 작년 정확히 언제였죠?
이모 :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웃음). 24일 장사 끝나고 25일 새벽에. 그때 가게는 연말이라 아주 그냥 바쁠 때였는데...
순재 : 영업 종료하고 가게 넘어간 거는 그보다 한참 뒤였죠?
이모 : 올해 3월 20일.
크리스 : 그럼 한 3개월간 이모 없이 일하시던 분들끼리만 영업하고 계셨던 거군요.
순재 : 이모도 한 두 번인가는 가게 보러 나오셨던 거 같아요. 엄청 부은 얼굴로.
이모 : 맞아, 몸 안 좋은 상태에서. 내가 갈비뼈도 다쳤었고 흉추 쪽, 그 여자들 브라자 끈 닿는 데 있잖아. 그니까 앉아 있어도 힘들고 드러누워 있어도 힘들고 그랬었어. 저쪽 병원으로 가서는 아예 보조기를 하고 있었지.
순재 : 머리나 다른 중요한 곳은 괜찮으셨어요?
이모 : 머리는 안 다쳤지. 그니까 이렇게 너네들 만나지. 하반신은 이상이 없고 허리, 흉추, 팔, 어깨, 여기도 기브스 했었고, 여기 팔 수술. 간, 폐, 다 다쳤어.
순재 : 워메.
이모 : 갈비뼈에 찔렸어.
순재 : 잘 치료 됐어요, 안쪽은?
이모 :첨에 팔 수술을, 조각을 맞춰야 되는데 간하고 폐가 찔려서 안 좋으니까 마취를 못 시키는 거야, 호흡을 못하면 안 되잖아. 맨 첨에 숨도 못 쉬고 중환자실에 있다가 한 2박 3일만에 나왔어. 거기서 죽어서 나가는 사람도 보구. 중환자실에서 헤롱헤롱 이렇게 나는 드러누워만 있는 거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코에다 이렇게 끼우고, 드라마에서나 보던 (웃음) 그런 걸 다 껴 보고 산소 호흡기도 해 보구 별짓 다 해 봤어. 간병인을 4개월 썼어. 눕고 일어나지를 못하니까. 갈비뼈며 뭐 다 조각이 났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는... 그런 과정들이 다 지나간 거지.
순재 : 얼마나 아팠으까잉...
크리스 : 지금 이만큼이라도 나으신 게 천만 다행이네.
이모 : 다행이지. 지금 있는 병원에는 머리 다친 사람, 고장 난 사람, 아님 다리가 불구라든가 그런 사람이 많아. 왜냐면 시간이 오래 되면 병원에서 퇴출시키기 땜에... 그런 재활, 뭐 그런 병원에 내가 지금 있는 건데, 여긴 장애인들이 참 많아. 내 옆에는 치매 할머니가 있어. 귀여운 할머니야. 초등학생처럼 나한테 그랬어요, 이랬어요, 그러시거든.
순재 : 병실 사람들하곤 다 잘 지내세요?
이모 : 잘 지내지. 거기선 내가 제일 성성해. 다른 분들은 뇌졸중 뭐, 아니면 볼일도 그냥 막 봐 버리고. 그런 거 저런 거 다 지켜보면서 지내 요즘. 그 치매 할머니는 93세이신데 참... 정말 무서운 병이더라구. 음식의 맛도 모르고, 고통도 못 느끼시는 정도인데, 뇌의 기능이 그렇게까지 되더라고.
순재 : 많은 생각이 드시겠네, 거기 하루 종일 그 분들하고 계시면 이런 저런.
이모 : 응, 맞아. 정말.
순재 : 재밌는 일은 없었어요? 병원 생활이라고 해서 매일 어둡고 심각하지만은 않을 거 같은데.
이모 : 일단 요새는 그 옆에 할머니가 너무 천진난만하구, 귀엽구 사랑스럽게 좋아요, 좋아요, 이뻐요, 항상 이렇게 곱게 말씀하시는 게 재밌어.
순재 : 그 할머니가 제일 좋으시구나.
이모 : 해피바이러스야. 할아버지는 3층에 있고, 할머니는 4층에 있는데 할아버지는 파킨슨 그런 저기 장애가 있어.
순재 : 에구, 그 집 자녀분들은 속이 정말... 혹시 이모 친정어머니는 살아 계신가요?
이모 : 응. 걱정 많으시지. 우리 식구들도 다 걱정.
순재 : 그간 병실에 특별히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없었고?
이모 : 어. 다행히.
# 종로에서 해야지, 내가 어디 가
순재 : 우리가 작별인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잖아요, 이모랑. 다들 진짜 아쉬워했어요.
이모 : 그 즈음엔 내가 한 며칠은 나가 있으려고 그랬었어. 애들하고 마지막으로 얘기도 하고 앞으로 이렇게 될 거다, 그러고 싶었는데 몸이 못 버텨 주는 거야. 그날도 그래 가지고서 나왔다가 그냥 들어갔어.
순재 : 마지막날 지보이스가 가보니까 그 날씬한 이모 있잖아요, 김진숙 이모. 그날 우리 통성명도 했어요. (웃음) 그 진숙이 이모 혼자 계시더라고요. 우리가 시킨 그 많은 요리를 혼자 다 하셔야 되니까 원래도 그랬지만 서빙은 그냥 우리가 다 알아서 했죠. 다른 손님도 꽤 있었던 거 같은데, 그래서 제가 막 옆 테이블에도 술이며 안주며 배달하던 기억이 나요. 근데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며 보니까 그 이모가 막 우시는 거야, 일을 하다가! 주방에서 혼자, 우리 노래하는 거 들으면서 훌쩍훌쩍.
이모 : 정들어서 그랬구나.
순재 : 우리도 이제 마지막이라고 분위기에 젖어서 노래도 실컷 부르고, 그러다 나가면서 그 이모한테 과일이며 뭐 작은 선물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펑펑 우셨거든요. 우리도 막 취해가지구 몇 명이 따라 울고. (웃음) 근데 우리는 사실 솔직히 그 이모는 그 전까진 잘 몰랐죠. 항상 우리 사장님 이모만 보고 왔고, 주인공이셨고. 근데 그러고 보니 그 이모도 항상 우리 옆에 계셨더라고.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 기억의 풍경에 다 함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박수도 쳐 드리고, 한 명 한 명 안아 드리고 하니 내가 너네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내가 뭐라고, 고맙다며 참 많이 우셨어요. 언제 어디서 꼭 또 만나자... 왜들 그렇게 맘이 짠했을까? 나와서 단체사진 찍고 헤어지는데, 몇 번이고 돌아보니 우리 아무도 안 보일 때까지 손 흔들고 계시던 기억나요. 지보이스 단원들에게 그 장소는 정말 매주 셀 수 없이 많은 추억을 쌓았던 자리고, 나도 고작 7개월이었지만 쨌든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거기를 갔으니까. 저처럼 지보이스 활동의 시작을 물○○○랑 함께했던 애들이 특히 많이 울었던 거 같아요.
크리스 : 그냥 딱, 우리가 종로에서 뭘 하고 ‘뒤풀이 가자’ 그러면 너무 자연스럽게 물○○○야. 그냥 알아서 우르르 거기로 갔죠. 물어보고 할 것도 없이 당연히. 그 정도였어요.
이모 : 고마워.
▲前 물OOO 영업 마지막날, 김진숙 이모와 함께 한 지보이스 (원본사진: 오웬)
순재 : 요새도 앞을 지나갈 때마다 그냥 밖에서만 슥 보면 아, 여기서 와글와글 하던 시절이 그립고, 저 안에서 노래하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고. 간판이며 뭐며 다 그대로라 맘이 더 묘해요. 이모랑은 그런 충분한 인사도 못 나눴고, 어떻게 지내시는지 문득 궁금해도 어디 물을 길이 없고, 그래서 이모 섭외됐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몰라요. 아직은 몸 불편하신데 오늘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마음에 휑했던 빈자리가 달래지는 거 같아요.
크리스 : 퇴원하고 나서는 계획이 어떻게 되세요?
이모 : 9월 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태 봐서. 이왕 있는 거니까 충분히. 나 지금 거기서 운동을 많이 하고 있잖아, 오전 오후.
크리스 : 에어로빅 하신다고 들었어요.
이모 : 응. 오전에 에어로빅, 점심때는 물리치료, 뭐 그렇게 시스템이 잘 돼 있기 때문에 나와서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체력단련을 충분히 해야 돼. 지금 나는 운동만이 살 길이야. 얘(어깨)가 재활이 다 돼야지 나와도 뭐든 할 거 아냐. 근데 또, 맘이 급하다고 무리하니까 얘가 못 버텨서 통증이 막... 혓바늘이 돋고 몸살이 나더라고. 그니까 얘가 시간이 흘러야지, 여유 있게 해야지 되겠더라. 나와서도 그렇게 계속하고. 달래가면서 조금씩...
순재 : 언제든 퇴원하시고는 그럼, 다시 가게를 하실 생각이신 거죠?
이모 : 응, 가게를 해야지. 해야지, 당연히.
순재 : 우와, 어디서요?
이모 : 그거는 모르지, 아직. 좋은 장소와 좋은 때를 만나야지. 알아보고 있어.
순재 : 종로로 오시면 좋을 텐데.
이모 : 종로에서 해야지, 내가 어디 가. (웃음)
순재 : 와우!
크리스 : 제 개인적인 바람은, 전 사실 물○○○ 넘어가고 나서 가게가 싹 바뀔 줄 알았어요. 근데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있잖아요, 주인만 바뀌고. 그니까 이모가 다시 거기를 그 자리 그 이름 그대로 인수해서 다시 하시면 저는 너무, 솔직히 기쁠 거 같아요. 정말로. 근데 그럴 수는 없겠지. 상도가 있으니...
▲前 물OOO에서 일하시던 모습 (원본사진: 터울)
# 내 젊은 청춘이 다 이 길에
순재 : 물○○○ 전에 ㄱ@@ 포차는 몇 년도에 시작하셨나요?
이모 : 97년도.
순재 : 으아, 2000년대도 아니고! 지금 계시는 포장마차 이모들 중에 가장 오래되신 게 어디죠?
이모 : ㅂ◇◇. ㅂ□하고 ㅈ△△. 그 분들이 나보다 먼저 했지.
크리스 : 그러면 그 분들은 대체 얼마나... 우와, 97년만 해도 지금 20년 전이야.
이모 : 그렇게 됐어. (웃음) 내 젊은 청춘이 다 이 길에... 나 지금 60이야.
순재 : 아니 근데 피부가 어쩜 이렇게...
이모 : 그때 내 나이가 40대 초반인가, 원래 주부였지. 근데 당시에 보증 잘못 서고 그래서 돈을 많이 날려버렸어. 그런 저런 뭐, 슬픈 사연으로. 먼저는 파출부를 하게 됐어. 그러다 인사동 어디 큰 포차에서 아줌마로 일을 하다가 자리가 나서, 누가 소개를 해 줘서 이쪽으로 오게 됐지. 1년 뒤인가? 그때 여긴 지하철 5호선 막 생기느라 공사하고 있어서 사실 안 좋은 자리였어.
순재 : ㄱ@@ 지금 있는 위치가 그때부터 쭉?
이모 : 응, 중간쯤에 만○○ 있는 데. ㅎ♫♫ 맞은편.
순재 : 재밌는 게, 이모는 (구)ㄱ@@ 이모로서 물○○○ 하시다가 지금은 또 (구)물○(* 물○○○의 줄임말) 이모가 돼서 다음 가게를 준비하시고, 근데 두 곳이 다 지금도 그 이름 그대로 쓰면서 딴 분이 하고 계시다는 거죠. 자리도 안 바뀌고. 현재의 ㄱ@@ 이모랑 뭐 특별히 관계가 있어서, 예를 들면 원래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라 그대로 넘겨줬다거나, 그런 거예요?
이모 : 아니, 모르는 사이야. 그리고 그 사람하고 나 사이엔 또 다른 사람이 했었어.
순재 : 그 브랜드는 뭐랄까, 포차거리를 관할하는 사람들 소유인 건가? 이모들이 주인이 아니라.
이모 : 그리고 이태원으로 갔을 때 사실 그 이름 그대로 가져가려고 했는데 그렇게 안 됐지.
크리스 : 아, 그 포차 다음에 바로 물○○○가 아니라 사이에 이태원에서 또 다른 가게를 하셨어요?
이모 : 응, 잠깐. 어쨌든 그 이름을 쓰려고 했는데 그 이름은 글자에 ‘ㅆㄹ’이 들어가서 어차피 허가가 안 나더라고. 이름에 ‘ㅆㄹ’이 들어가면 안 된대. (웃음)
크리스 : 그럼 이태원 그 가게는 이름이 뭐였어요?
이모 : 뭐였지... (한참 생각하심) 기억이 잘...
순재 : 그때부터는 이제 포차가 아니라 실내로 들어오신 거죠? 부동산. 근데 이모, 그때 그렇게 옮기고 또 옮기고 하는 과정에 무슨 이유가 있었나요? 왜냐면 ㄱ@@ 엄청 인기 많았었다고 들었는데, 잘 하시다가...
이모 : (웃음) 내 아픈 과거를 또 이제...
순재 : 아, 안 좋은 이야기들이구나. 말씀 안 해 주셔도 돼요.
이모 : 여기서 거기로 간 거는 왜냐면 내가 큰, 너무나 마음이 힘든 일이 있었어. 그래서 피난, 도피처라 그럴까? 이태원에는 그래서 가게 된 거지. 그리고 거기 있다 보니까 내가 그랬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숨고 싶고 그랬었는데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뭐 그게 창피한 일도 아니고, 우리 식구들 그립고, 보고 싶고... 가 봐야겠다, 가고 싶다, 그래서 아픔이 다 지나가고서는 바로 내 고향 종로로 컴백하기로 한 거지. 우리 친구들이 어떻게 바라봐 줄까... 그런 마음에 어렵게, 큰 용기를 갖고서 다시 오게 된 거지. 그렇게 물○○○를 차린 거야.
순재 : 식구, 친구... 고향이라는 표현이 재밌네요. 이모는 이태원 계시면서도 계속 마음은 ㄱ@@에 있으셨나 봐요.
이모 : 이태원에는 일반이 더 많아. 거기도 이반이 있지만 아무래도 일반이 훨씬 많지.
순재 : 하긴, 여기엔 일요일~목요일에도 어느 정도 게이들이 충분히 있지만 거긴…
이모 : 나는 일반하고 보다는 살아온 세월이, 흐름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반들하고 이렇게 있는 시간이 더 편해. 일반 손님들하고는 좀 어색한 거 같애.
순재 : 그래서 금세 다시 종로로 오고 싶으셨나요?
이모 : 어. 취향이 안 맞어. 여기가 편하고 더 좋아.
순재 : 그 정도면 이모 다음에 오실 땐 아예 본격 게이술집을 하셔도 되겠다. 종업원도 다 이쪽으로만 두고.
이모 : 옛날에 포차 했을 때는 자리도 비좁지만, 일반은 아예 안 받을려고도 했었어. (웃음) 일반은 그냥 초저녁 손님으로만 만족하지.
크리스 : 물○○○란 이름은 어떻게 지은 거예요?
순재 : 정말, ㄱ@@이란 이름도 정말 히트지만 물○○○... 뭐랄까 되게 은근하고, 약간 에로에로한 느낌이야.
이모 : 그냥 지었어. (웃음) 이제 다음 상호는 또 뭘로 탄생할지 몰라.
순재 : 물○○앗간이라고 하면 그 우리 윗세대에서 조금 은밀한 만남의, 부적절한 공간 느낌 나지 않나?
크리스 : 소설에도 나오는 그런? 그런 뉘앙스였던 게 맞아요?
순재 : 유머도 있고, 이 이름이 곱씹으면 의외로 센스 있다? 힙해.
이모 : 그려, 그려.
순재 : 우리가 막 갖다 붙여. (웃음) 처음 나왔을 때 물○ 가자 하길래 형들한테 물어봤어요, 거기 혹시 게이술집들 중에 좀 중년, 노년들이 가는 가게 이름이냐고. 그랬더니 아니래. (웃음) 처음에 들을 땐 다마※※, △△나무, 그런 가게들하고 느낌이 비슷했어요.
▲2014년 5월, 어버이날 기념으로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후의 모습 (원본사진: 크리스)
# 게이 친구들 덕분에 대박 났지
이모 : 근데 있지, 나는 계속 이 종로구 일대에 살았어도 그 ㄱ@@ 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어. 그런 데가, 이런 저기가 있는 지를.
순재 : 그럼 게이를 처음 만나신 건?
이모 : 인사동에서 아줌마로 일을 했었다 그랬잖아, 근데 거기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한 손님이 있었는데 꼭... 그, 너무 수다스럽고 그랬었는데. (웃음) 재밌는 손님이 있었어.
순재 : 마음에 드셨어요? 저 손님 이상해, 징그러워, 이런 게 아니라 호감이?
이모 : 싫다기보다 너무 재미있는 거야. 이바구(주: ‘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를 많이 하니까. (웃음) 너무 재밌어. 그리고 항상, 우리는 새벽 2~3시면 끝났거든? 인사동은 샐러리맨 생태이기 때문에 술집들이 일찍 끝나. 그러니까 한 잔 먹구 낙원동으로 넘어간다는 거야. 자기네들 퇴근하구서 여기 들렀다가 그쪽으로 간다는 거. 어쨌든 그런 재밌는 손님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어. 근데 어느 날, 낙원동에서 이제 오픈을 했는데 그 손님을 만난 거야.
크리스 : 어머!
이모 : 인사동에서 보던 손님인데 이제 낙원동에서 만났어. 그 사람이 이모, 여기서 장사해 먹을려면 알아야 된다고 하면서 이반의 끼와 뭐 때짜, 마짜, 뭐 막 알려줘서... 나 이렇게 적었어. (일동 웃음)
순재 : 받아 적었어. 노트 정리!
이모 : 이런 사람들이 올 거야, 오면 음, 이렇게 애들이 막 그럴 거래. 그러면서 습성과 뭐 이런저런 거를 갖다가 막 알려주길래 난 또 막 적었어. (웃음) 그리고는 그걸 보면서 ‘이 사람이 이런가? 저런 사람이 그건가?’ 이렇게, 어쨌든 간에 내가 이런 걸 알고 있어야지 여기서 장사를 한대니까. 그때는 내가 아직 여길 잘 모르잖아. 돌아가는 시스템도. 어쨌든 그렇게 지내는데 그 담에 또 다른, 말도 재밌게 하고 그런 애가 있었어. 걔는 ‘이모, 나한테 잘 해, 잘 하면 내가 손님 많이 모시고 올게’, 막 이러는 거야. 그런가보다 해서 비위 잘 맞추고 잘 했어. (웃음) 근데 어느 날 얘가 다른 가게를 차리더니, 자기네 손님들을 모시고 왔어. 그리고 얘가 또 아는 사람이 있었을 거 아냐? 그래서 또 데리고 왔어. 친구의 친구가 또 와. 뭐, 그냥 그런가보다 했지. 근데 그러고 있는 사이에 끝날 때 보니까 우리 포차가 막 한가득 차 있는 거야.
순재 : 게이로 가득! 대박, 대박.
이모 : J랑 R이랑 또 누구랑 삼인방, 패밀리였어. 걔네들 한창 젊었을 때. 지금 나이 먹었지, 꽤나. 걔네도 한 오십 살 됐나?
순재 : 그 언니들이 복음을 전했군요.
이모 : 옆에 사람들이 막 놀랬지. 포차 이제 신출내긴데. 나는 그 시절만 해도 빚이 컸기 때문에 춥고 배고팠지, 또 아직 순박하고 뭣도 모르지, 하니까 열심히 그냥 무조건 잘 해주고 누구든 가리지 않았어. 너네들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고. 근데 내가 언젠가 초반에, 그래도 잘 모를 때니까, 나도 모르게 어떤 혼자 온 손님한테 (한참 망설이시다) 호모라는 말이 나왔어, 내 입에서. (한숨) 감각이 없고 느낌을 모르니까. 그랬더니 걔가 있잖아, 술을 먹다가 확 가 버렸어. 그래서 이제, 다음 또 그 비슷한 애가 왔길래 ‘있잖아, 내가 이렇게이렇게 했는데 걔가 화가 나서 갔어. 어떻게 해야 돼?’ 그랬더니 이제 가르쳐주더라구. ‘이모, 그렇게 말하면 안 되고 일반, 이반, 이렇게 하면 돼.’ 아, 그래서 걔가 그렇게 화가 나서 그랬구나, 그땐 정말 몰라서... 그런 일도 있었어.
순재 : 에고.
이모 : 그때만 해도 인터넷이 이렇게 많이 발달이 되지 않았어. 그래서 가라오케가 많이 활성화 돼 있었지. 어디 딴 데서 만날 수가 없는 거야, 이반 식구들을. 그래서 가라오케에서 애들을 만나거나 이렇게 눈 마주치거나 하면서 다녔다고 들었어. 그리고 옆에 사람이 들을까, 자기 본색이 들어날까 해서 말도 굉장히 조심조심하구. 그때 당시만 해도 은둔형이 대부분이라 옆 사람들 눈치 보면서, 굉장히.
그러다 뭐 시간이 이렇게 흐르다 보니까 인터넷이라는 게 확산이 되고, 번개라는 게 탄생이 되고, (웃음) 애들이 막 우르르 몰려서 다니고 그러면서 많은 변화가 막 일어나는 거야, 빠르게. 가라오케에서만 만나고 했던, 눈 마주치고 해서 겨우 만나던 게 번개라는 걸 하면서 애들이 또 이렇게 만나게 되고. 시간이 흘러 지금까지 온 거지. 지금은 뭐 어플도 있고, 일대일로 쉽게 찾아 만나고, 조촐(번개)도 있고, 또 이런저런 모임도 있고. 많지, 뭐 수영, 노래, 볼링, 테니스, 이렇게 많이 활성화가 됐고, 옛날보다는 이렇게 좀 젊고 저기한 사람들이, 뭐라 그럴까, 옛날하구는 좀 많이 변했다는 거지. 이제 종로 사회가 활짝, 크게 오픈이 되어 버리다 보니까 일반화가 돼서 그냥 이제는 당당하고, 대차고, 자기주장 강하게 하고. 옛날에 비해서 지금은 그런 거 같애.
크리스 : 거의 산 증인이시네, 종로바닥의.
순재 : ㄱ@@이 게이들로 꽉 차기 전까진 다른 포차들에선 그런 분위기 보기가 어려웠나요? 거리에 게이들이 있어도 항상 숨죽여서 얘기하고, 길에서는 절대 끼 안 부리고. 이모 오시기 전까지는.
이모 : 아냐, ㅂ◇◇나 뭐 이런 데는 내가 왔었을 때 이미 그런 게 활성화가 돼 있었지. 이반들 많았어. 그 분들이 먼저야.
순재 : 처음은 아니라 쳐도 분명 몇 군데 없었던 거네요. 20년 지나 완전 점령을 해 버린 (웃음) 지금만큼은요. 게이들이 포차는 많이 가지도 않던 시절인데, 갓 입문하신 이모에게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이끌렸다는 게 분명 이유가 있을 거 같아요. 스스로 생각하시기엔 어떤 거 같으세요?
이모 : 나는 ‘넌 이러니까 이렇구 너는 이러니까 이렇구’ 하는 거부감이 없었어. 그냥 손님이라면 무조건 이렇게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했지. (웃음) 또 나는 항상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라고 물어봤어. 모르니까. 자꾸 그러면 이렇게 애들이 가르쳐 줘서 내 거를 또 하나 만들고.
순재 : 이모가 먼저 막 그렇게 물어오고 하는 게 믿음을 많이 줬을 거 같아요, 그 언니들한테.
이모 : 응. 물어보고, 다가가고. 그리고 지켜보고. 그러니까 이제 내가 걔네들 지켜봤을 때 사람 사는 거는 비슷하다, 사랑하는 상대가 다를 뿐이지 다 똑같은 느낌으로 한다라고 생각하니까, 음... 뭐 남자라고 해서 다 남자 좋아하는 거 아니잖아. 여자라 그래서 여자 다 좋아하는 거 아니고 하듯이. 다 뭐, 뚱뚱한 사람, 날씬한 사람, 이렇게 다 있듯이. 우리 일반이나 이반이나 똑같은 느낌으로 간다, 다 똑같이 살고 있다라고 내가 느끼고 생각을 하니까 똑같이 그냥, 별 부담 없고, 같이 교류하고, 같이 아파해 주고, 힘들어하는 걸 들어 주고. 그때만 해도 이렇게 많이 바쁘지도 않았고 그니까 많이 들어 주고, 얘기 같이 하고, 그런 시간들이 충분히 많았지. 그리고 그러면서 나도 하나씩 하나씩 배워 가면서, 깨달아 가면서 같이 인생을 살아 온 거지. 그렇게 세월이 또 많이 흐르다 보니까 그때 20대가 30대 되구, 30대가 40대 되구, 같이 이제 지금 늙어 가는 편이야. 그러다 보니까 지금 난 즐거워 여러분 만나는 일이. 행복해. 여러분 만나고, 매일 똑같은 사람만 만나는 것도 아니지. 이렇게 바뀌면서 또 새로운 사람이 찾아들고, 잊었던 사람들이 또 오랜만에 돌아오고. 그 속에서 이렇게 나이를 같이 먹어 가며 흘러흘러 사는 게 행복하게 됐어.
▲前 물OOO에서 친구사이 회원들이 놀던 모습
# 다들 열심히 사는 거 같애
순재 : 각별히 기억하고 계시는 게이들이 또 있을까요? 혹시 친구사이 중엔?
이모 : 그 사무국장을 가장 잘 알지.
순재 : 종걸이 형은 ㄱ@@ 때부터 이모랑 친했다던데.
이모 : 그리구 그 왜 콘돔 돌리는 친구 있잖아.
크리스 : 아, 아이샵 김현구 소장님. 병문안도 갔었다고 들었어요.
이모 : 응. 또 크게 남는 건... 그래, 얼굴 떠오르는 사람이야 많은데 그 이름은 내가 다 기억할 수가 없어. 가게 닫고 지금 또 오래 못 보고 있으니까.
순재 : 지보이스 공연은 언제부터 와 주셨어요?
이모 : 작년이지 뭐. 두 번인가, 이태원에서 할 때도 갔었고.
크리스 : 친구와 노래를! 후원의 밤에도 오셨구나. 혹시 그거 말고도 친구사이 활동이나 행사에 참여해 주셨던 적 있을까요? 퀴어퍼레이드라든가.
이모 : 그런 적은 없지. 소식이야 다 듣고 알고는 있지만 그런 거 잘 가지는 않아.
크리스 : 후원은 정말 많이 해 주셨어.
순재 : 다른 게이손님들하곤 어때요? 혹시 영업시간 외에, 가게 밖에서도 자주 만나는 그런 관계는?
이모 : 없어. (웃음)
크리스 : 맞아, 내가 보면 이모는 그렇더라고. 뭐랄까, 약간 그냥 대모 격의 분위기?
순재 : 그런 스타일이셨구나. 그러면 두 번이나 지보이스 공연을 와 주신 게 되게 이모에겐 흔치 않은 일이고 크게 감사할 만한 날이었네요. 하여간 지보이스는 이모 정말 잘 모셔야 돼. (웃음) 앞에 인터뷰했던 이모들이나 또 다른 분들에게선 손님들이랑 어울리고, 단짝친구, 넘어서 가족처럼 그런 사이로 지내기도 한다는 얘길 듣기도 해요. 근데 이모는 딱히 손님들하고 그렇게까지 친밀해지려고는 안 하시는 타입인가 봐요.
이모 : 물론 옛날에 포차했을 때는 술 먹으러도 가고, 또 나 밥 먹으러 가는 길에 그냥 마주치면 이렇게 (동행)하지 뭐 일부러 그런 적은 별로 없어. 포차 했을 때랑 실내 하는 거는 또 분위기가 달라. 포차는 그냥 ‘야, 그만 먹어. 우리 빨리 문 닫고 같이 가서 밥 먹게.’ 이렇게, 아니면 ‘얘, 한잔 먹으러 가자’ 할 수 있는데 실내 식당은 달라. 포차 할 때야 따라 나가봤자 이미 마지막 분위기였던 거고. 왜, 실내에서 먹고 포차로 옮기잖아. 우리는 포차보다 더 일찍 끝나는데 그러면 내가 나갔을 때, 가면 무조건 술을 더 많이 먹게 돼. 포차 문 닫고 어울리던 때보다. 시간적으로 길어지잖아, 그러다 보면 또 술이 술을 먹는다고 계속 또 어디 갈 수도 있고, 분위기가. 한창 때고. 그러다 보니까 좀 부담스러워지고, 스스로 자제하고 조심하려고도 하고. 그러다 보면서 손님들하고 따로 만나거나 하는 게 줄어든 거 같애.
순재 : 친구사이 회원들이랑 다른 게이손님들에서 느껴지는 차이 같은 게 혹시 있었을까요? 특징.
이모 : 좋아, 매너들이.
순재 : 엥? 아닐 거 같았는데. (웃음) 다른 팀은 우리보다 더 요란하다는 거예요?
이모 : 아니, 노는 스타일이야 뭐, 왁자지껄 그런 분위기는 별개고. 매너가 참 좋아, 바르고.
순재 : 하긴 빡세게 노는 것도 아마 지보이스나 그랬겠네요. 우리 어마어마하게 먹었지, 거기서. 무조건 노래 한 곡씩은 부르고. 거의 6~7시간 동안 내리 마신 날도 있는 거 같애, 낮부터. 대만 갔다 온 다음날인가? 누구는 비행기서 내리자마자 와 가지구~ (웃음)
크리스 : 그런다고 우리가 어디 가서 막 깽판 치고 그러진 않잖아.
이모 : 바르게 살고 있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가? 좋아. 일반이든 이반이든 흐트러지거나 막 거친 손님들이 있거든. 근데 친구사이는 반듯하고, 이모들한테 예쁘게 하고, 사는 것도, 열심히들 활동을 하는 거 같애. 내가 바라보는, 느껴지는 분위기는 그래.
순재 : 얼마 전에 지보이스가 ㅂ◇◇에서 놀던 날, 몇 명이 담배 피우면서 따로 떨어져 있다가 ‘너 호모새끼냐?’며 시비를 거는 취객한테 난데없이 폭행을 당한 적이 있어요. 소리 듣고 깜짝 놀라 우르르 가서는 도망가려는 그놈들 잡아 경찰에 신고하고 야밤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저도 현장에 같이 있었는데, 전 그런 혐오범죄를 목격한 게 처음이었어요. 더구나 종로 포차에서, 우리가 다 같이 있는데. 그 씩씩하고 명랑한 형한테. 차라리 내가 맞았으면 모를까... ㅂ◇◇ 이모는 우리가 하도 안 오니까 걱정 돼서 어디 사장님 불러다 가게 맡겨 놓고는 택시 타고 버선발로 종로경찰서까지 따라 오셨어요. 언니들은 공연하다 똥물까지 맞은 적도 있어서 그래도 좀 의연할 수 있었겠지만 그날 저 말고도 그런 경험 처음인 다른 친구들이 많았고, 우리 같은 초짜들은 한동안 많이 힘들었네요. 혹시 이모도 그런 모습을 직접 보시거나 아님 소문으로라도 그런 사고를 들은 기억 있으실까요? 사소한 시비라도요.
이모 : 이태원에서 있었어. 나는 일반들이 이반 무시하고 함부로 하고 그런 꼬락서니를 못 보거든? 그들 인생은 그들 인생이다, 함부로 하지 마라, 그런 거지.
크리스 :그럼 그 일반들이 그냥 알았다고 하고 갔어요?
이모 : 알았다고 하고 가지는 않지. 끝내 싸우지. 그러면 당신 가라고. 그런 거를, 불의를, 너네가 당하고 사는 거를 내가 너무 잘 아니까, 그 사람들이 함부로 하는 게 너무 속상하고 마음 아프니까 못 보는 거 같아, 함부로 하거나 이러면. 난 그게 용서가 안 되더라고.
순재 : 하긴 이모도 말씀하셨듯이 일반 업소인 이상 거긴 게이손님들이 소수인 편이었을 테니까, 생각보다 그런 일에 취약했을 수 있겠네요. 주말이라 할지라도 이태원은 클럽 때문에 일반남녀 또한 엄청 모일 거고. 평일에야 뭐, 게이는 거의 없고.
이모 : 그래도 거기도 이반들이 오랫동안, 긴 시간 있어 왔기 때문에 대부분은 다 이해를 해. 근데 이제 일부 정말 ‘아니꼽숑~’ 하고 이해하길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냥 넘어갈 일도. ㄱ@@ 장사하면서도 애들이 막 끼를 떨고 하니까 그 옆에 테이블에서 ‘쟤들 뭐예요?’ 막 이러는 거야. 그때는 어쨌든 그 사람들은 일반이고, 너네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이니까 그냥 나도 맘에 안 든다는 듯이, 당신이 이해 좀 해 달라는 듯이 말할 수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처음엔 가만히 있는 거 같더니만 두 병 세 병 먹고 나니까 이제 그게 거슬리나 봐. ‘아줌마, 나 가서 쟤네들 때려 주고 싶어요.’ 이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깜짝 놀라서 절대 안 된다고 했지. 처음에는 나도 그냥 눙치고 했어도 이게 술이 들어가니까 사람이, 폭력성이, 막 열을 받는지... 암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얘는 또 그냥 막 신나게 옆에서 그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우리 집에 오면 항상 편하고 기분이 좋은 애한테 가서 ‘야, 너 그만해. 지금 옆에서~’ 이럴 수도 없고. 그럼 애가 얼마나 놀라고 또 그게 상처가 되겠어. 그러니까 말도 못하고 나는 그 중간에서 있잖아, 그 사람은 계속 여기 막 째려보고 있는데 나는 끙끙. (웃음) 어우 너무 많이 힘들었어. 어쨌든 잘 조용히 잘 끝났어. 그때는 옛날이니까, 그런 것들 땜에 막 무지하게 힘든 시간들이 있었지.
순재 : 생각보다 많대요. 지금도 그런 일들이. 근데 대부분 사람들이 그냥 쉬쉬하는 거지. 왜냐면 그걸 가지고 경찰서 가고 하면 그 과정에서 커밍아웃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올까 봐 두렵고. 그래서 많이들 참고 숨기고 있지 의외로 꽤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모 같은 분들이 우리한테 더 소중한 거 같아요.
이모 : 이해하기 싫은 사람은 끝내 못하는 거걸랑...
순재 : 맞아요. 그게 몇 사람이 뭐, 말로 아무리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이모 : 안 돼. 안 되더라고. 시간이 필요한 거지. 그 못하는 사람들을, 막 그냥 대충 둘러대서 이렇게 해서 보내야지, 그 자리에서 ‘이해하십시오’라고는 강요를 할 수가 없더라고.
크리스 : 우리가 바라는 것도 뭐 강요가 아니야. 그냥 때리지나 말라는 거야.
이모 : 그래, 그냥 함부로 이렇게 무시하지는 말라는 거지. 나도 그거를 바래.
▲前 물OOO에서 이모가 키우시던 새와 함께한 모습
# 곧 돌아올게
순재 : 자제분들은 이모가 이렇게 게이 손님들과 가까이 지내는 걸 알고 계세요? 내켜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이모 주변 사람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생각하는 게 이모랑 다 같진 않을 거니까요. 어때요?
이모 : 우리 뭐, 다 알고 있지.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데 다 알고 있어.
크리스 : 가끔 놀러도 왔어요?
이모 : 그럼. 알바도 했었지.
순재 : 아! 나도 한 번 본 적 있는 거 같애. 이모 아플 때 아드님 한 번인가 두 번인가, 가게에서.
크리스 : 정말? 어땠어?? 잘생겼어?
이모 : 아니. (일동 웃음) 우리 아들은 말이 없어. 말이 없고 이렇게 막 사바사바하지를 않아.
순재 : 그럼 딱히 뭐 이 사람들 좋다, 싫다, 그런 얘기 한 기억 없으신가요?
이모 : 우리 딸은 적극적으로 이해를 하는데 아들은 잘 모르겠어. 아들이 처음 와서 이러는 거야. ‘엄마, 왜 이렇게 여기는 남자들만 많어?’
순재 : 이모의 실체를 잘 몰랐구나. (웃음)
이모 : 내가 일부러 ‘야 여기는~ 이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할 순 없잖냐, 내 입으로. 그건 또 예의가 아닌지도 모르고, 너네한테.
순재 : 맞어. 어차피 자연스럽게 만나다 보면... 그리고 첨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안 오려고 했을지도 몰라, 일하러. (웃음)
이모 : 자기도 자연스럽게 이제 보고 느끼고 받아들여야 되는 거지, 뭐. 그래서 이제 나는 그냥 ‘음... 글쎄?’ 그러고 걍 내버려 뒀어. (웃음) 지가 이제 일하다 보니까 아는 거지. 내 입으로는 얘기를 안 하고 자기가 느끼라고 걍 내버려 뒀어. 별 말은 않더라.
순재 : 혹시 이모 젊었을 때나 어릴 적 기억에도 게이가 있진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제 주변엔 간혹 ‘내가 너 같은 사람이 내 옆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널 알고 나니까 그제야 생각난다’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릴 때 동네에 여자 옷 입고 다니는 삼촌이 있었고, 지금 돌아보니까 군대 동기 중에도 있었다는, 그런 얘길 많이 들어서. 혹시 이모도 잊고 살았지만 기억 속에 성소수자가...
이모 : 있어. 세 들어 사는 사람이었는데, 좀 복장이 남성 같은 막 그런 느낌.
순재 : 그 아가씨 그러는 거 가지고 혹시 주변에서 사람들이 막 흉보고 괴롭히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이모 : 그렇게까진 아니었을 거고 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가졌지만 뭐 편견을 갖거나 딱히 그렇진 않았어. 그리고 우리 딸도 학교 다닐 때 어떤 여자애가 엄청 쫓아다녀서 굉장히 힘들어했던 시간들이 있었어. 종이학을 접어서 병에다 담아 주고, 우리 딸이 학교 가면 꼭 그 시간에 맞춰서 따라 나오고, 교실에 있으면 이렇게 쳐다보고 있고, 쉬는 시간에도 꼼짝 않고, 어디 줄 서고 그러면 바로 옆에 따라붙어 서 있고, 그래서 애가 너무너무 힘들어 했지.
순재 : 안 좋은 기억이 있었구나.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괴롭히면 안 되는데...
이모 : 다행히 걔가 그러다가 전학을 갔어. 내가 한 번 만나 보려고 했었는데. 걔가 그렇게 나중엔 거의 스토커처럼 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전학을 갔어. 그래서 일단락 됐어.
순재 : 그랬다면 따님은 조금은 동성애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가 생겼을 수 있겠는데요? 그 당시엔.
이모 : 아냐, 딱히 그렇진 않더라고. 우리 딸은 그리고 지금 호주 가 있는데, ‘여기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엄마.’ 그랬어.
순재 : 선입견을 가질 만큼 심한 상처는 아니었나 봐요, 다행히.
이모 : 그리고 또, 우리 딸도 가게 와서 알바 한 적이 있걸랑? 얘는 근데 아들이랑 다르게 이반 애들이랑 얘기도 많이 하고, 서로 소통하고 그런 거는 나 같이 잘 하고 그래. 나쁘게 생각을 안 해, 어릴 때 일에 대해서도. 그냥 그 사람 자체가 문제였던 거지 그걸 가지고도 그렇게 오래 ‘으으~’ 하거나 그러지 않더라고.
순재 : 포차와 실내는 많이 달랐지요?
이모 : 그럼. 분위기 자체가 다르고 음식 내용물이 또 다르고. 많이 힘들었던 게, 포차 했을 때는 그냥 똑같은 메뉴, 다른 데하고 다 같아도 손님들이 그냥 있으니까, 끊임없이. 그냥 넘어가는데, 실내로 했을 때에는 메뉴개발도 해야 되고, 또 이렇게 길에 있을 때에는 분위기 같은 게 다 먹어주니까 특별히 그냥, 맛이 그다지 덜 해도 그냥 넘어가. 그 포차만의 그런 정취 때문에 묻혀 가는데 실내로 하게 되면 음식도 특별해야 되고... 포차 음식이랑 똑같이 하다가 굉장히 힘들었던 부분이 그거야.
순재 : 물○○○ 안주 되게 맛있었는데. 닭발이었나 오돌뼈였나, 형들이 엄청 좋아했는데.
크리스 : 난 그 주먹밥.
순재 : 맞아, 맞아, 그게 제일 꿀맛이야! (웃음)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에 서비스 딱!
이모 : 지금도 나는 제일 고민되는 게 앞으로 하면 어떻게 요리를 더 맛있게 할까? 유투브 검색도 하고, 병원에 있으니 시간이 많아. 평범한 제육볶음을 해도 어떻게 하면 좀 더 맛있어질까, 특별해질까... 레시피 막 보고 있어. 준비를 벌써 막 한다기보다도 아직 어깨가 이러니 그냥 어떤 메뉴를 어떻게 구성할까 생각 중이야. 근데 잘 되진 않아, 욕심만큼. 생각은 항상 많아.
순재 : 기대돼요!
이모 : 어떡해, 김칫국부터 준 거 아냐? (웃음) 음, 기존 메뉴 반은 가져가겠지만 나머지 반은 뭔가 옛날보다는 달라지고 나아져야 되지 않을까... 근데 너무 이제 막, 그 융숭한 음식, 막 럭셔리한, 아님 특이한, 요새 그렇게 하는 거는 또 나랑은 안 맞고. 단가도 그렇고.
크리스 : 너무 크게 부담 가지실 필욘 없을 거 같아요. 예전 그대로여도, 그만큼만 해 주시면 뭐 충분히... 사람들 입맛이 그새 쉽게, 크게 바뀐 것도 아니고.
순재 : 건강하실 때도 일하는 건 항상 힘드셨지요? 사실 식당/술집 일이 정말 체력도 크게 요하고, 시간도 많이 바쳐야 하고.
이모 : 그런 거야 뭐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면이지. 힘들단 말은 하고 싶지 않아.
순재 : 마지막으로 게이 손님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한 마디 부탁드려요. 이모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편지처럼.
이모 : 각자 일 열심히 하고, 주어진 상황 모두 다르지만 그 안에서 항상 최고로 힘내서 살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자기 조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을 가졌으면 좋겠어. ‘나는 이러니까...’라기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응? 이반으로 살아가는 걸 비관하지 말고 온 힘을 다해서 자기 삶을 꾸려갔으면 해. 이반이라고 해서 괴롭고 우울해야 한다는 법은 없는 거잖아. 월 화 수 목 그렇게 열심히 살고 주말에 봅시다, 종로에서.
크리스 : 감사해요, 이모. 고맙습니다.
이모 : 큰 얘기를 못 갖고 와서 미안해.
순재 : 오늘 해 주신 얘기 다 크고 멋져요. 이모, 꼭 돌아오세요. 빨리 돌아오세요.
이모 : 그래, 만나서 반가웠어. 나를 기억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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