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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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연애' #2]
우리 그냥 연애할 순 없을까 - LGBT의 연애 이야기
온 우주의 기운을 받아 이루어지는 사랑의 마음이 결실을 맺는 것, 바로 '연애'라고 하죠. 인간의 육체적 기초 위에 꽃피는 자연스런 애정이지만, 여전히 사전적 정의는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이라며 이성애의 그것만을 연애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소수자의 연애는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게 아닌 걸까요? 그래서 '우리 그냥 연애할 순 없을까'를 외치는 LGBT들이 모여 연애에 대한 썰을 풀었습니다. 달콤씁쓸한 연애 이야기의 향연을 지금, 공개합니다.
크리스 : 안녕하세요.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친구사이 소식지 팀장 크리스구요. 각자 짧게 자기소개하고 시작할게요^^
중기 : 저도 소식지팀 회원 중기라고 합니다.
정 : 날과 연애하는 ‘언니네트워크’ 회원 정이라고 합니다.
날 : 정과 연애하는, 역시 ‘언니네트워크’ 회원 날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휴식회원이구요. 작년부터 언니네트워크 회원으로 활동을 했는데, 서울시인권조례 사태 때 연대해서 많이 오시는 모습을 보고 ‘아 우리도 단체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후로 언니네트워크 활동을 하는 중이에요.
에디 : 저는 트랜스젠더인권단체 ‘조각보’랑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일을 하고 있고요. 글쎄요, 저는 무슨 사태를 얘기할까요. 대체 저를 ‘연애’ 관련 주제에 왜 섭외한지 모르겠지만, 섭외 실패하셨어요. 이번 생에는 틀린 것 같아요. (다들 웃음)
휘아 : 인기 사회지도층 정휘아라고 합니다. 오늘 좋은 말씀 드리려고 왔어요. 저는 바이섹슈얼이고 현재 소속되어 있는 곳은 없지만, 띵동의 후원회원이구요. 옷 입은 모습보다 벗은 모습이 더 유명하죠. 그래서 일베에 3년 연속 올라가고. 범국민적 쌍년으로 거듭나고 있어요. (다들 웃음)
킴 : 저는 친구사이 회원 킴이구요. 지금 연애 중이고 만난 지 2년 넘은 애인과 같이 살고 있어요. 같이 살게 된지는 한 세달 정도 됐어요.
크리스 : 반갑습니다. (짝짝짝) 이렇게 꿀 같은 토요일 저녁에 ‘연애’ 간담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LGBT 연애 이야기를 하려고 한자리에 모였는데, 성소수자들에게는 ‘연애’가 특히 핫이슈일 수밖에 없잖아요. 사람을 만나는 것, 사랑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고, 물론 즐겁기도 하고. 그조차도 차별과 혐오를 받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우선, 지금 연애 중이신지요?
킴 : (정과 날을 가리키며) 아, 두 분이 커플이시구나.
정 : 저희는 올해 10월쯤에 만난 지 2년이 돼요.
날 : 저희 둘은 처음부터 같이 살아서, 연애 좀 하다가 같이 살게 되는 커플들의 생활에 궁금증이 좀 있었어요. (웃음)
정 : 굳이 그러면 나중에 왜 같이 사는지 해서요. 정말 따로 사는 연애는 상상을 못하겠어서.
에디 : 전 연애는 안 하고 있구요. 스스로를 알아가고 있는 단계인 거 같아요. 아직 실천으로 옮기진 못했지만 함께 있고, 같이 지내는 동거는 너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람들을 만나면서 같이 있는 게 불편할 때가 있더라구요. 제가 트랜지션한지 4년 정도 됐거든요. 처음에는 ‘어떻게 동거 없이 살 수 있어~ 너 카드 내꺼. 내 카드도 내꺼 ㅋㅋㅋ’ 이런 마인드였는데, 지금은 제 공간이 너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제가 독신주의자인지 생각도 하구요.
그리고 전 되게 애틋하고 끈끈한 그런 게 아니라 되게 육적인 느낌을 추구하는? 아우 모르겠다 너무 불순하네요. (다들 웃음) 암튼 저는 같이 가는 것보다는, 보긴 보되 거리를 두고 가는 게 연애인 거 같아요. 자세한 얘기는 또 이따가 하겠지만.
휘아 : 전 4년 사귄 애인하고 두 달 전에 헤어졌어요. 그리고 저는 여러분들이 못해 본 그런 결혼생활도 짧게 해보기도 했었고. 동거 다 파탄 나고. 이건 좀 다른 얘기긴 한데, 동성애자들이 결혼 안했으면 좋겠어요. 결혼은 지옥입니다.
에디 : 자기만 안 하면 되지. (다들 웃음)
휘아 : 진짜 그 지옥에 들어갈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동거 같은 경우도 아까 에디님이 얘기한 자기만의 공간 같은 게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심지어는 최근에 헤어진 분하고는 같이 만나기만 했었고 같이 산 적은 없는데,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하더라도 저만의 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순수하게 한 두 시간이라더라도 내가 다른 걸 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리고 앞으로는 좀 농염한 사랑을 해보고 싶다? 이제 서른이 됐으니까. 근데 과연 될까요?
에디 : 농염한 사랑이 뭐예요?
휘아 : 아 왜 순수하다기보다는 알 거 다 알고... 그런 거 있잖아. 그 퓨어하지 않은.
중기 :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크리스 : 솔직한 거 아닐까요? 순간순간에 솔직한 사랑?
휘아 : 그렇기도 하고요. 사실 제가 바이섹슈얼이라고 해도 동성연애, 동성섹스도 못해본 지 6년이나 됐어요.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젠 동성을 만나면 뭐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말도 못 붙이겠고. 그냥 어디 가면 갑자기 그냥 쭈그려 앉아 있고요. 혹시 모르죠, 이렇게 살다가 누가 날 망치러 올지도. (다들 웃음)
크리스 : 너무 재밌네요. 빵빵 터지고. 저만 해도 사람들과 가장 많이 얘기하는 주제가 ‘연애’인데. 가끔 얘기할 때 보면 대화의 전제가 ‘연애는 꼭 해야 하고, 많이 해보는 게 좋다’, ‘많이 하면 어떤 사람이 내 스타일인지 알 수 있다’ 이런 게 있는데요. 그런데 굳이 연애의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연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불편할 수 있잖아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요.
정 : 비연애 상태인 친구와 최근에 이런 대화를 했는데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대화의 화제가 주로 ‘연애’다 보니까 연애하는 상태가 어떤 권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 거예요. 사람들이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연애하지 않는 상태가 뭔가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간주하는 거죠. ‘연애 왜 안 해? 연애 해 봐~’라고 하는 거. 연애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항상 묻는다는 거죠. 연애하는 사람들한테는 연애 왜 하는지 안 묻잖아요. 그 친구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연애중심주의가 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어요. 비연애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많은 말들이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제가 성소수자로서 어느 자리에서건 애정행각을 벌이는 게 제가 적극적으로 누려야 하는 자유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좀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요? 더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내 자유를 막는 것들이 차별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또 다른 맥락에서는 내가 의도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차별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겠구나 하는. 물론 이성애 사회에서 통하는 얘기는 아니겠지만요.
날 : 저도 정한테서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좀 반성하게 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주변 지인들한테 연애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에 대한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많이 권유하는데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한동안 정과 저의 카톡 프로필 대화명이 같았거든요. ‘온 우주가 우리한테 준 두 가지의 선물이 있는데, 하나는 질문하는 능력이고 또 하나는 사랑하는 힘이다’라는. 전 그 말이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주가 준 선물을 마음껏 발휘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느꼈거든요. 내가 사랑할 수 있고 사랑 받기 위해서 어떤 태도나 그런 것들이 필요하겠구나. 꼭 물질적 능력이 아니더라도.
지금 정과 하는 연애가 세 번째 연애인데. 연애 그리고 사랑을 하면서 동시에 제가 성장하는 경험을 깊게 느끼거든요. 물론 전 연애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기 때문에 애인과 같이 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어떤 선택지가 아니라. 그래서 같이 사는 것, 같이 살면서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 그리고 연애 상대자가 가장 큰 영감을 주기도 하고. 그 영감이라고 하면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상대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도 커지고 제가 성장하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함께 하면서도 또 제가 주체적으로 성장한다는 느낌이 들구요. 그래서 전 이런 개인적 경험에서 주변에 사랑을 많이 해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휘아 : 어우~ 사랑 전도사시네요. (다들 웃음)
날 : 그래도 연애 지상적인 것에 대해서는 불편하게 느끼기도 해요. 연애가 권력으로 작동하는 현상들 특히 미디어에서 그런 걸 좀 부추기는 거랑, 마치 솔로인 게 ‘능력없음’으로 비춰지는 거죠. 특히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연애를 한다는 건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하잖아요. 우리 세대한테는, 특히 3포 세대, 5포 세대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에는 비판적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이 이렇게 힘든 세상에선 유효한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휘아 : 전 좀 다른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전 친구들과 만나면 ‘섹스’ 얘기를 참 많이 해요. 사람들이 보통 생각했을 때 ‘연애는 곧 섹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특히 주류사회라고 할 수 있는 이성애자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는 연애나 섹스 경험이 어떤 능력인 것처럼 되잖아요. 그래서 전 그걸 깨고자 오히려 제가 더 그런 말을 많이 해요. ‘나 누구 따 먹었다’, ‘내가 입이 있지 너네가 입이 있는 게 아니니까 니들이 누굴 따먹었다는 소리 함부로 하지 마’ 뭐 이런 거.
그리고 꼭 연애든 섹스든 간에 꼭 사랑이 있어야만 하는 걸까에 대해서 전 몇 년 전부터 생각을 좀 했었어요. 흔히들 얘기하는 로맨스라는 게 일상에서 많이 소비되고 있고, 이건 특히 가부장적 사회에서 만들어 낸 것 중의 하나인데. 로맨스가 없는 섹스나 연애에 대해서는 죄악시 하는 것들도 그렇고요. 그래서인지 모르겠는데 전 연애라는 게 자기 자존감의 확인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연애가 좋은 연애일 수도 있지만, 연애가 가끔 자기 삶을 파멸로 이끌고 가는 경우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한 번 원나잇을 했는데 갑자기 상대방이 협박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고.
전 오히려 사람들이 사랑을 꿈꾸고 하는 것들이 자기 존재에 대해서 확인받고 싶어하고, 그 확인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서 받으려고 하는 욕구 때문에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전 연애라는 건 사람들에게 권하지만, 동시에 권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 하는 연애는 정말 말리고 싶거든요. 관계 자체가 평등하지 않을뿐더러, 그 사람한테 내가 의존적인 관계가 되는 결과가 되어버리고. 그래서 전 자존감의 확인 과정인 것 같아요. | 휘아
날 : 저 역시 너무 동의해요. 저 역시 정과 만나기 전에 그렇게 좋지 못한 연애를 했었는데요. 그래서 파국으로 가는 연애에 대해 정말 공감이 많이 돼요. 그런데 제가 늦게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개인적으로 극복이 많이 됐거든요. 그래서 전 연애를 하고 자기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연애를 하면서 페미니즘 공부를 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정 : 어떤 연애인지가 중요하잖아요. 가부장적 사회에서 소비되는 연애문화나 로맨스에 대한 환상은 저 역시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끼고, 특히 그런 문화가 재생산되는 것도 그렇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연애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되는 것 같아요. 더 좋은 연애는 뭐고, 나의 자존감을 타인으로부터 확인받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 나의 자존감을 높여 나가야 하는 건지 등에 대해서요. 그래서 저도 그냥 연애가 되어지는 게 아니고,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 둘은 많이 대화하고 문제점도 많이 해결하려고 노력하죠. 근데 연애에 대한 것이 공론화되지 않고 사적인 것으로 전락해 버리면 연애 속 문제들이 해결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둘이서만 얘기하는 거라면 어떤 한계에 부딪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주변에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휘아 : 굉장히 이상적인 모습인 것 같아요. 서로 공부하고 학습한다는 것 자체도. 사실 어느 정체성이나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연애라는 게 어느 순간에 권력이라는 게 생겨버리잖아요. 제 개인적으로 들어본 얘긴데. 레즈비언 같은 경우는 부치가 실제로 더 권력을 지니고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고, 게이들도 탑들이 그러거나 하는 경우도 들었어요. 저 역시도 권력 관계를 많이 겪기도 했고요. 데이트 폭력, 데이트 강간 같은? 이런 게 너무 만연한 건 연애에 대해 왜곡된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미디어에서 ‘청춘들의 연애는 이렇게 빛나고 어쩌고, 그늘에 있어도 아름답고’ 같은. 그래서 진보 지식인들도 가끔 위험한 발언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거든요.
또 주로 남성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연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여성들이 하는 연애나 섹스이야기에는 비판도 심하죠.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의 술자리에서도 남성이 여자 가슴 얘기하는 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여자가 남자 성기에 대해 얘기하는 건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래서 저 역시 끊임없이 연애와 섹스에 대해서 얘기를 할 거예요. 이 왜곡된 권력관계나 인식이 성소수자 내부에도 분명히 공고하게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얘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날 : 여성이 기본적으로 섹스, 연애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없긴 한 것 같아요. 성소수자들 같은 경우에도 게이보다 레즈비언의 섹스나 성들에 대해서 왜곡된 시선이 있죠. 정이 같은 경우도 남자 지인한테 커밍아웃을 했는데 ‘너희 그럼 섹스가 가능하냐’고 물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예 상상조차도 못한다는 걸 느끼기도 했고.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게이들의 성이 악의적으로 나쁘게 묘사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레즈비언에 비해서는 가시화되고 공론화된 부분이 있으니까. 그래서 끊임없이 성, 섹스에 대해서 얘기해야 하고, 또 어떤 권력관계가 존재하는지 얘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너무 동의해요!
킴 : (웃으면서) 사실 제가 생각한 연애의 권력관계는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휘아 : 어머 진짜 이래서 게이인가보다~ (다들 웃음)
킴 : 그래서 전 덜 좋아하는 사람이 갑이 되고, 더 좋아하는 사람이 을이 되는 관계만 생각해봤어요. 연애는 뭐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는 거고 없으면 안 하는 거고. 내가 외로워서 연애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에 외로워하는 친구들 있으면 연애하라고 만나보라고 권하기도 하고요. 결국에는 깨지겠지만. (웃음)
에디 : 근데 연애하면서도 외롭지 않나요?
킴 : 그건 연애랑 상관없는 거 같아요. 결국 인생은 나 혼자인 거죠. 하하하. (다들 웃음)
크리스 : 연애를 못해본 친구를 ‘연애고자’라고 표현하기도 하잖아요. 그 표현이 사실 불편한 부분도 있어요. 아직 좋아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안 할 수도 있는 건데.
정 : 모태솔로가 자기를 당당하게 모태솔로라고 드러내지 못하는 게 사실 보이지 않게 권력이 작용하는 거죠. 한 번도 연애해 보지 않은 것을 정상의 상태로 보지 않는 거.
에디 : 전 여러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많이 동떨어졌다고 느꼈어요. 특히 저 같은 트랜스젠더 이성애자들은 성별 이분법적인 문화에 오히려 순응하는 느낌도 있어요. ‘여자가 여자다워야지’처럼. 사회에서 차별로 작용하는 여성성의 어떤 부분들이 오히려 나의 여성성을 찾는 일에서는 중요한 부분이 되기도 하거든요. 다 그런 건 아니고 저나 저의 주변에서 느낀 건 그래요. ‘여자는 화장을 꼭 해야 되고 머리가 길어야 되고. 꼭 짧은 치마를 입어야 되고, 스타킹을 신어야 돼’ 같은 거죠. 오히려 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성애 문화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휘아 : 뭔가 생존방식 같은 거 아닌가? (다들 공감)
에디 : 그리고 MTF 트랜스젠더를 만나는 남성분들도 어떤 대등한 느낌이라기보다, 사회가 만들어 낸 어떤 기준에는 좀 미달하는 분들이 트랜스젠더를 만나는 건 되게 쉽게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서 느낀 경험이긴 한데... 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전 가부장적인 문화를 많이 느꼈어요. ‘화장 좀 해라’, ‘뭘 좀 해라’ 라고 요구하는 것들을 보면서. 근데 주변에서 당연히 느끼는 언니들도 많고요.
제가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물론 저도 외로움을 당연히 느끼고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을 때가 있고 그런데, 주변에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많다 보니까 불편함을 많이 느꼈어요. 예를 들어 누가 밥을 사주면 내가 무조건 커피를 사야 되는 느낌이죠. 난 빚지는 게 싫었으니까, 누가 잘해주면 마치 자줘야 할 거 같은 느낌도 있고요. 근데 그러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그런 부분들이 처음엔 당연시하게 여겨지는 문화에 있다 보니까 연애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고개를 돌린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 후 인권단체 활동을 하고 나면서 많이 다른 문화에 적응하고 그런 거 같아요.
또 삶에서 외로움과 불완전함, 그리고 ‘내가 혼자일 수도 있겠다’라는 마음을 일찍 먹어서 그런지
혼자 있는 마음도 일찍 커버린 것 같아요. 난 이미 ‘혼자서도 괜찮아’라는 시간을 많이 보내서.
가끔 호감을 나타내는 상대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고.
그래서 여러분들의 연애가 너무 멋지긴 한데 저랑 거리가 있다고 느껴진 부분도 있어요. | 에디
휘아 : 아 너 되게 멋있다.
에디 : 그래서 최근엔 오픈 릴레이션쉽 관계도 해봤는데.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내 성취를 가져보자는 생각을 해서요. 쉽지 않더라고요. 연애면 연애, 사랑이면 사랑, 이런 정확한 관계를 암묵적으로 스스로한테 강요를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그냥 개나 키우고 있죠. (다들 웃음)
크리스 : 앞에서 날님이 연애를 통해 더 성장하게 된다고 말씀해 주신 것처럼 연애를 통해서 우리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한 것 같은데요. 좋은 영향도 있을 수 있지만 소모적인 경우도 있고 그렇잖아요.
킴 : 연애에 있어서 좋은 점은 저는 헤어지면서 많이 느꼈는데. (다들 웃음) 아니 연애할 때 좋은 거야 당연한 거니까. 되게 담배 같은 느낌? 내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나의 그 빈 시간들을 채워주는 느낌이 있어요. 헤어지고 나니까 내 삶에서 빈 공간들이 안 채워지는 걸 느낀 거죠. 지금은 예전보다는 더 성숙한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일희일비 하지 않고 나의 삶을 더 지키고.
에디 : 전 약해지는 게 싫었어요. 조금이라도 마음이 놓이면 의지하게 되더라구요. 그걸 제대로 표현하고 좀 균형을 맞출 줄 알았다면 서로 더 성장하고 좋은 연애를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날 : 저한테 정은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동기부여가 되거든요. 지금 가장 큰 장점은 아마 그 점일 거 같아요. 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더 절실하게 하진 않았을 거 같아요. 또 책임감도 생기고. 정과 같이 살면서 안정적인 관계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경제적인 부분들을 노력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분명히 생기고요. 제가 화가 되게 많은 성격이었는데, 저의 불편한 감정을 상대방에게 상처주지 않으면서 표현하는 방법도 배우고. 그래서 변화된 제 모습이 스스로가 마음에 들기도 해요. 계속해서 성장하는 경험이 너무 좋은 거 같아요.
정 : 전 제일 좋은 점은 날이를 만나면서 스스로를 성소수자라고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거? 나에 대해서 더 알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을 만난 거 같아요. ‘연대’라는 것도 전 정말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는 뭔지 알게 되고, 내가 모른 척 하거나 몰라왔던 것들에 대해서 불특정 다수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요. 나는 그냥 혼자 즐겁게 살아왔었는데, 누군가는 자기나 우리를 위해서 그 사람들의 몫을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고마움을 느끼고요. 그래서 단체 활동도 하게 되고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세계관도 확장되고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또 우리 관계에서 제일 좋게 생각하는 점은 여성주의를 둘 다 공부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에게 요구하는 많은 성역할들을 수행하지 않고 싶고, 우리 관계에서는 그게 강요받지 않으니까 너무 편안하죠. 그 전의 저라면 전 아마 이런 ‘연애’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도 못했을 거 같아요. 그렇지만 전 연애지상주의자는 아니에요. 친구랑 하는 사랑도 사랑이고, 그 과정에서도 성장할 수 있고. 중요한 건 어떤 사람과 사랑하느냐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를 성장할 수 있는 사람과.
에디 : 연애하면서 느낀 긍정적인 부분은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서로 힘이 되어주는 부분? 그런데 저는 약간 초반 연애의 알콩달콩 설레는 느낌보다는 1, 2년 후에 서로가 느끼는 신뢰감이 가장 중요한 감정인 거 같아요.
크리스 : 성소수자 연애가 어렵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의 가장 큰 게 숨어서 하는 연애, 드러낼 수 없는 연애를 하는 게 있어서인데요. 그래서 관계를 속이기도 하는 상황도 있고요. 이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킴 : 저는 이게 게이들에게 있어서 제일 어려운 부분인 거 같아요.
정 : 맞아요. 게이들을 향한 시선이 제일 따가워요.
* 출처: 보성(지_보이스)
저 같은 경우는 같이 카페가고 이런 것도 처음엔 사람들이 우릴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부분을 많이 신경 썼거든요. 예전에는 극장 가서 불 꺼지면 손잡이 올려서 손잡고 영화보고, 불 켜지면 다시 손잡이 내려놓고 이런 불편함도 있었는데. 사실 오늘도 영화관 다녀왔는데 요즘은 손잡이 내려놓고 영화 보는 게 훨씬 편해서 그냥 내려놓고 봐요. 요즘 날씨도 더워서 옆에 좀 기대면 머리카락 닿는다고 뭐라 하고. (다들 웃음) 아 그리고 버스에서도 여자들은 서로 ‘사랑해 자기~ 잘 가~’ 이런 거 많이 하지 않나요? | 킴
에디 : 여자들은 그런 문화가 있잖아요. 학교에서도 여자들은 ‘화장실 같이 갈래?’ 이러고. 근데 남자들이 ‘화장실 같이 갈래?’ 그러면… 아 물론 그럴 수는 있지만. (다들 웃음) 제가 띵동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게 보이쉬한 여성들의 문화는 상위 문화라고 느낄 때가 많아요. 거리 청소년 사이에서도 무리 내에 레즈비언들도 꽤 있고. 근데 그게 이상한 취급받지 않고 자기들 무리 안에서 잘 융화가 되는 거예요. 근데 이런 상황에서도 게이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 것 같아요. 게이 애들은 커밍아웃을 잘 안하는 거죠. 사회적으로 남성성을 더 쳐주는(인정해주는) 그런 문화 때문인 거 같고요. 남자애들이 가진 여성성 이런 건 되게 금기시 되는 부분도 있어요.
날 : 저 같은 경우는 거리에서 손도 잡고 뽀뽀도 하고, 하고 싶은 대로 잘 하거든요. 근데 제가 만약 머리가 짧거나 그런 ‘티나는 부치’라면 사람들 시선을 신경쓰면서 그러지 않았을 거 같은 생각도 들고요. 오히려 근데 우리 둘 다 머리가 길고 그래서 위장이 가능하니까요. 근데 또 재밌는 지점은 우리가 애정행위를 하는데도 굳이 우리를 친밀한 관계로만 보는 시선들이 불편하기도 해요. 엄청 편하면서도 우리를 친구 관계로 보는 관계가.
휘아 : 친구 사이에 뽀뽀도 해요? (다들 웃음)
날 : 그러니까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의 가치관 속에 ‘동성애’는 존재하지 않는 거죠. 그런 부분이 저한테는 좀 이중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킴 : 그래도 저 연애 하면서 되게 좋았던 점도 있어요. 작년에 3주 동안 동남아 여행을 다녀왔는데 우리는 화장실도 같이 가는 거예요. 그런 부분이 편한 것도 있고.
날 : 저는 또 좋은 점이 저희 둘 다 여자니까 동거가 가능하다는 거죠. 만약 정이 남자였으면 동거가 불가능했을 거예요.
킴 : 근데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남남커플이 동거하는 거나 여여 커플이 동거하는 건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데, 남녀 이성애자 커플이 동거한다고 하면 무게감이 다르게 다가오지 않아요? ‘어휴, 어휴’ 이렇게 걱정하면서. (다들 웃음) 이런 사고가 잘못된 건 아는데 우리가 이런 사회에서 자라오다 보니까요.
날 : 그렇죠. 전 그게 이성애적 결합은 결속력이 더 단단한 걸로 보고, 동성애 결합은 결속력이 더 떨어지는 걸로 보는 거 같기도 해서 불편한 부분도 있어요.
중기 : 그리고 이건 여성들한테 ‘순결함’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기도 한 거 같아요. 제 주변 경험만 보더라도 주변에 동거했던 이성애자 커플이 있었는데 겉으로 아무런 티를 내려고 하진 않아도 ‘쟤네 헤어지면 여자애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더라구요. 이게 사회적으로 엄청 강한 거 같아요.
정 : 맞아요. 여여 커플들에게는 ‘순결함’과 관련된 고정적인 여성성이 강요되진 않으니까. 이런 류의 사회적 시선이 참 안 좋은 거 같아요. 순결 강요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수많은 것들. 그래서 전 오히려 평일에는 화장을 잘 안 해요. 내가 무조건 화장을 해야 하는 존재로 읽혀지는 게 싫고.
에디 : 죄송하네요. 전 절 위해서 화장하지 않아요. 상대방을 위해서 화장하지. 저의 성별을 알아봐야 하니까요. (다들 웃음)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자료.
"현재 연애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전체의 45.3%이고, 평균 연애기간은 30개월이다."라는 부분이 눈에 띤다.
크리스 : 이번에는 정체성별로 구체적인 질문을 해보려고 해요.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서 나온 부분들을 참고하려고 하는데요. 우선 게이들은 연애를 시작하는 부분도 그렇지만 사회적인 시선들이 연애에 있어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라 느낀다고 답변했거든요. 그래서 주로 어플리케이션을 사람을 만나는 데 가장 많이 쓰긴 하는데요. 어플리케이션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있었던 거 같나요?
킴 :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는 어플 없이도 우연히 사람을 만나고, 또 학교 모임이 있기도 했었어요. 생각해보면 어플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보려고 하기 보다는 대화를 더 많이 하려고 하고 했다면, 스마트폰 나오면서는 뭔가 외모를 더 많이 보고 그런 변화는 있는 거 같아요.
크리스 : 그러면서 연애에 대한 관점도 바뀌었다?
킴 : 연애에 대한 관점까지는 아니고. 애들 말로는 어플이 생기면서 더 쉽게 만나고 더 쉽게 헤어지는 거 같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전 잘 모르겠어요.
에디 : 어플은 좀 더 가벼운 느낌이고. 스스로도 온라인 만남은 좀 별로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요. 어플을 어떻게 쓰고, 또 온라인에서 자기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거 같아요.
킴 : 확실히 어플이 생기고 나서는 사람 만나는 게 더 쉬워졌으니까. 연애하는 사람도 더 많아졌겠죠? 어쨌든 확실한 건 어플에서 만나고 헤어진 친구는 또 어플에서 마주치더라구요. (다들 웃음)
크리스 : 트랜스젠더의 연애관계에서는 연애상대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 관계의 발전에서 터닝 포인트가 된다고 나와 있기도 해요. 그래서 트랜스젠더의 연인이 상대방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연애관계를 유지하고 만족스럽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요. 동의하시나요 에디님?
에디 : 저는 에너지 소비가 싫어서 웬만해서는 다 알리고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편이에요. 이력서에도 다 공개하고. 왜냐면 첫 번째로 저는 되게 어렵게 이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게 뭐 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두 번째는 말하지 않은 게 속인 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제가 크게 겪은 일은 아니고.
저 같은 경우 고민이 있다면 시스젠더 남성인 상대방이 미래를 그렇게 진지하게 보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 같더라구요. 아무래도 남성 사이에서는 결혼, 출산 같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트랜스젠더를 만나는 남성들은 ‘그건 좀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조금은 있는 거 같고요.
크리스 : 그런데 내가 트랜스젠더이고 뭐고를 떠나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거니까 그걸 굳이 밝히지 않고도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에디 : 그런데 그렇게 이해해주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거 같아요.
휘아 : 저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저는 바이섹슈얼이라고는 하지만 6년 가까이 동성연애를 못 해봤기 때문에 뭐. 잠깐잠깐 만나기는 했지만요. 사실은 친한 친구들이 아닌, 저를 그냥 바이섹슈얼로만 아는 사람들은 ‘우리가 봤을 때 너는 그냥 남성만 만나는 것 같은데?’라고 얘기를 한단 말이죠. 저는 굳이 제 사적인 부분을 안 친한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굳이 내가 바이섹슈얼인 걸 인정받기 위해서 여성을 만나는 걸 보여줘야 하는 건지에 대한 생각도 있어요. 바이섹슈얼이기 때문에 요구되는 것들이 또 있단 말이죠.
동성이랑 만날 때 내가 바이섹슈얼임을 확인받아야 하는 상황도 참 그렇죠. 그런 얘기 되게 많이 들어요. 별로 안 친한 사람들이 “정휘아씨 진짜 바이섹슈얼 맞아요? 괜히 관심 받으려고 하는 거 아니예요?” 이러면 황당하죠. 아니 관심 받으려면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뭐 이쯤 얘기하지 누가 바이섹슈얼이라고 하겠어요. (다들 웃음) 어떤 남성이랑 만났을 때는 상대방이 ‘너 여자 만나고 다녔다면서?’ 뭐 이렇게 따진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일이 커져서 커뮤니티에 완전 나쁜 사람처럼 소문이 난 적도 있고요.
크리스 : 그렇군요. 휘아님 통해 바이섹슈얼의 연애에 대한 고충도 자연스럽게 듣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레즈비언과 관련해서는, 주로 레즈비언들은 여성들만의 공간에서의 경험을 회고하며 여성에 대한 사랑, 성적 경험과 연애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요. 정체화하기 전에도 레즈비언으로 알려진 다른 동료들을 관찰하거나, 어울릴 수 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더라구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 중에 ‘동거 아닌 연애’를 상상하기 어렵다고도 하셨는데, 레즈비언들이 보통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거든요.
정 : 아, 모든 레즈비언들이 그렇지는 않아요.
날 : 저는 아마도 여고, 여대를 나오면서 연애하기에 더 편했던 거는 있었던 거 같아요.
휘아 : 아~ 그래서 레즈비언들이 그렇게 여고랑 여대를 그렇게 많이 가는 건가? 제 주변에서는 여대를 무조건 가려고 하는 경우도 봤어요. 레즈비언 선배들이ㅎㅎ
에디 : 그럼 남자들은 군대? (다들 웃음)
날 : 저는 대학 들어갈 때는 제 스스로 정체화하기 전이라서 대학 선택에 큰 영향을 줬던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남녀 공학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좀 더 강하고, 여대여서 제가 연애를 더 편하게 했었던 거는 사실이기도 하고요. 정이랑 만났을 때도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그런 경험도 좋았죠.
크리스 : 그리고 욕구조사에서 레즈비언의 ‘오래 함께 사는 관계’에 대한 열망이 90.9%였대요. 게이는 82%고. (다들 놀람)
정 : 이건 좀 모집단의 한계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날 : 그런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좀 어려울 거 같아요. 학내 여성주의 모임에서 느낀 것도 그렇고, 저희 모임에서도 그렇고. 비혼주의자들도 많으니까요.
크리스 :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저희 친구사이 같은 커뮤니티의 고민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연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라는 것들이에요. 물론 이런 노력에 대해 개개인마다 느끼는 건 다르겠지만요. 여러분들은 커뮤니티 안에서의 연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커뮤니티 안에서 연애를 하다가 관계가 어긋나서 커뮤니티 활동을 안 하게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에디 : 커뮤니티 안에서 다 친구들이 있잖아요. 분명히 약자가 존재하게 되는 거 같아요. 계파처럼 뭔가 갈라진다거나, 갈등이 생기거나. 물론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데 커뮤니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 같아요.
휘아 : 자기들이 잘 알아서 해야 되는 부분인데 이게 커뮤티니 안으로 들어와 버리면...
에디 : 커뮤니티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둘만의 관계가 좀 정리가 되어야 되는 부분인 거죠.
휘아 : 맞아요.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헤어진 일을 그 커뮤니티 전체의 문제로 삼고 뒤에서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커뮤니티 안에 여러 피곤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정 : 맞아요. 이건 사실 어떤 집단이든 나오는 얘기인 거 같아요. 학내 동아리도 그렇고 동호회도 그렇고. 근데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는 연애 이후가 더 중요하고, 주의를 기울어야 하는 이유가 우리 같은 커뮤니티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인적 네트워크잖아요. 어떤 연애의 끝으로 인해 어떤 사람을 잃게 된다는 부분은 확실히 좀 큰 손실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누군가가 정체성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터놓을 수 있고, 안전하게 연애를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믿었던 곳이 뭔가 불편한 지점이 생겨서 사람이 떠나게 되면 커뮤니티 입장에서는 너무 큰 손실인거죠.
저 역시도 이런 얘기를 하면서 느끼는 건 우리 커뮤니티가 우리가 안전하게 연애를 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도 또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는 동력이잖아요. 그래서 책임감도 느껴지고. 정과 저는 오래오래 만나겠지만, 혹은 나중에 만나지 않게 되더라도 우리의 관계와 커뮤니티의 관계에서 무엇이 바람직한지는 반드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 필요하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주변에 좋은 선례를 남긴 경우도 있고. 이 공간을 만들고 지켜온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 날
에디 : 멋있다. 대단하십니다~
크리스 : (킴을 가리키며) 할 말 있지 않아요?
킴 : 반성하겠습니다. (다들 웃음)
에디 : 그리고 전 그런 걸 다 떠나서라도 어떤 사람이 커뮤니티에 왔는데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안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불편함을 제공한 사람에게도 잘 말을 해서 관계 개선을 해야 되는 거죠.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게 하는 게 단체의 몫인 거 같아요. 잘못을 지적하는 거랑 혼내는 거랑 분명히 다르니까 이 둘이 섞이지 않게 잘 해야죠.
크리스 : 어려운 부분이에요. 거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자존감을 깎지 않는 방법이어야 한다는 거겠죠.
에디 : 네. 그리고 중요한 건 연애 이후의 일 때문에 커뮤니티에서 마치 떠밀려서 나가게 되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뭐 개인적으로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도 너무 힘들고 이래서 커뮤니티 활동을 포기하는 경우가 아니라. 연애 이후에 커뮤니티 안에 뭔가 사람들이 찢어져서 갈등하고 이런 과정에서 힘들어서 커뮤니티 활동을 포기하게 되는 건 전 떠밀리는 거라고 보거든요. 이런 갈등을 잘 조정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이걸 발견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크리스 : 혹시 연애 이후의 모습은 어떻게 상상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결혼을 꿈꿀 수도 있는 거고, 결혼은 아니더라도 평생 같이 사는 모습일 수도 있고요.
에디 : 전 결혼을 꿈꾸고 있는 거 같아요. 제도에 들어가는 결혼 관계를 꼭 말하는 건 아니고, 서로가 가지게 되는 신뢰 관계 같은 거 있잖아요. 원래는 이런 생각을 전혀 안했는데. 신뢰로 계속 지속하고 사랑하는 관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 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선 동거도 괜찮을 거 같고. 결혼 제도 자체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사실 뻥이고 뭐 중요하지. 죽으면 내 것이죠! (다들 웃음)
킴 : 저도 결혼 하고 싶은데. 저희는 제도적으로 저희 관계가 보호받았으면 좋겠어요. 애인이 아팠을 때 내가 보호자가 될 수 있고. 애인이 죽었을 때 애인의 보증금이 내 것이 될 수 있는? (다들 웃음)
정 : 중요하죠! 그리고 왜 우리가 솔로여서 세금 더 많이 내야 되는지도 억울하구요.
킴 : 어쨌든 전 지금 애인과 관계가 예전보다 더 가족 같은 관계가 됐다고 느끼거든요. 그래서 살면서 이 관계가 제도적으로도 보장받았으면 좋겠어요.
크리스 : 정님과 날님 두 분은 어떠세요?
정 : 음 저는 결혼도 싫고, 애기도 싫어요. (날을 가리키며) 얘는 애기가 좋대요. 예전부터.
날 : 너가 생각하는 결혼은 뭔데?
정 : 음... 그러니까 제가 한국사회에서 바라보는 결혼이 우리의 관습적인 것들이 다 포함되다 보니까 그런 결혼을 떠올리면 전 그런 결혼 생활은 싫어요. 대리 효도같은 것도 싫고.
휘아 : 그치. 효도는 셀프지.
그리고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가 제도인 게 싫어요. 사랑이 끝나면 헤어져야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걸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증명 받아야 되고 또 내가 헤어지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확인받아야 되는 게 싫어요.
하지만 바라는 거는 우리 관계가 비결혼 상태이지만 비결혼이라고 해서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면 해요.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거, 서로에게 보호자가 될 수 없는 거. 이런 불이익은 해소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또 중요한 건 동성혼 법제화는 저의 이런 생각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거예요. 내가 결혼을 원하는가, 안 원하는가를 떠나서 동성혼이 가능하냐의 문제는 중요한 거니까. 그래서 당연히 동성혼 법제화는 이루어져야 하는 거죠. | 정
킴 : 정님은 둘의 관계에서 제도적으로 마치 수갑이 채워진다는 느낌이 싫은 거잖아요. 전 그런데 그런 제도적인 결합이 좋은 게, 결혼을 통해 계약이 이루어지면 그 계약이 끝났을 때 내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느낌? 그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어요.
휘아 : 근데 그렇게 하려면 혼인하고 5년 이상이 되어야 가능해요. (다들 놀람) 사안에 따라서 다르긴 한데. 내가 이 사람 때문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보상을 받아야겠다 이러려면.
에디 : 이 사람들 안 되겠네요. (다들 웃음)
날 : 저는 정이 생각에 동의하구요. 파트너십이냐, 동성결혼이냐 등 운동의 방향을 어떻게 정해야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성소수자 운동 내부에서도 많이 의견이 갈리는 지점일 거라고 보는데. 어쨌든 저는 동성결혼까지는 가야되고 그게 전략적으로 더 유효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봤는데 제가 만약에 원하는 일을 하게 되고 좀 안정적인 상황이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과 함께 축하하고 싶어요. 그게 결혼식의 형태일 수도 있고, 밥을 먹는 모습일 수도 있고. 그리고 각자의 부모님한테도 사회적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죠. 같이 만나는 동안에는 둘만 행복하지 말고 최대한 저희가 할 수 있는 몫을 하고 싶고. 벽돌 하나 정도는 올리고 싶어요. 그게 뭐가 되었든.
휘아 : 전 일단 제 팔자가 결혼을 세 번은 할 팔자래요. 그래서 앞으로 두 번 남았는데 하게 되면 하구요.
지금은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당분간은 쉬면서 연애도 하고 싶고 약간 몸보신 한다는 생각으로. 될 수 있으면 돈 많은 사람 만나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연애의 끝? 돈 많고 일찍 죽을 사람 만나는 거? (다들 웃음)
크리스 : 마지막으로 <라디오스타> 질문처럼, 여러분들이 각자 생각하는 ‘연애’란 어떤 건지 말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에디 : 같이 사는데 방은 따로 있는 느낌? 함께 있으면서도 또 따로 있는 거. 따로 또 같이. 이게 저한테는 연애인 거 같아요. 그리고... 파워섹스! 집에 침대 네 개 있고 막. (다들 웃음)
킴 : 제가 생각하는 연애는 SM? 서로 좋은데 참아야 하기도 하고, 힘들고 견뎌야 할 게 많은데 좋아요. 맞춰 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아프기도 한데 너무 좋은 거. 그게 연애인 거 같아요.
날 : 저한테 연애는 저를 더 성장시키는 원동력인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연애는 자기애를 바탕으로 시작하는 거 같아요.
정 : 저는 여성주의 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관계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좀 더 메타인지를 할 수 있는 건 여성주의 인식론이 반드시 필요한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관계를 바로 볼 수 있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잡을 수 있는 게 여성주의인 거 같아요.
날 : 저도 부연하면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는 게 여성주의인 거 같아요. 그래서 이런 인식론을 가지고 상대방과 만나면 당연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우리 둘의 관계에서도 그렇구요. 예전에 친한 친구가 정과 제가 잘 만나는 거에 대해서 그 원동력이 뭐냐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둘이 내린 결론이 이거였어요. 단순히 여성을 위한 학문이 아닌 거죠.
정 : 여성주의가 모든 연애를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연애를 완벽하게 만드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 거 같아요.
휘아 : 정휘아가 생각하는 연애는 ‘통장잔고’와 같다고 말하고 싶네요. 준비한 거 아닙니다. (다들 웃음) 없을 때는 없어서 짜증나고 힘든데, 조금이라도 또 숫자가 붙어있으면 이거 또 언제 나가나 혹은 이걸 붙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되잖아요.
크리스 : 멋진 마무리 멘트네요. 다들 꼭 써먹으세요. 덕분에 아주 유쾌한 얘기였습니다. 혹시 덧붙이실 말씀 있으신 분?
에디 : 아 오늘 얘기한 건 저희가 대표로 말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
크리스 : 네 그렇죠. 연애든 섹슈얼리티든 다분히 사적인 것이니까요. 이상 간담회를 마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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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안개마을 화이팅 ^^